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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 지주 문재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1924년 3월 중순이 지났지만 소작료 협상은 진척이 없었다. 21일 소작인회는 다시 정기총회를 열었다. 문씨 측이 계속 버티면 문재철의 아버지 '문태현 송덕비'를 뽑아버리자고 결의했다.
송덕비는 1916년 면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었다. 농민들 등골을 빼먹는 지주에게 송덕비라니…. 여기에는 애처러운 '을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문 지주가 자신의 송덕비를 보고 마음이 흐뭇해져 소작료를 내려주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잘 보이라고 왕래가 많은 남강선착장 인근 신기리 길목에 주택담보대출시 필요서류 세웠다.
# "저 놈들 죽여라" 대낮에 몽둥이 초죽음
3월 27일 농민들은 면민대회를 열어 문씨 일가를 압박했다. 6~7할 소작료를 고집하면 송덕비를 진짜 때려 부수기로 했다. 문씨 일가에 비상이 걸렸다. 마름과 머슴 50여 명을 동원해 송덕비 지키기에 나섰다.
그 때 우연히 송덕비 근처를 지나는 일행 우리은행 수수료 면제 이 있었다. 문씨 일족은 이들을 냅다 몽둥이로 가격했다. "저놈들을 죽여라" 쏟아지는 몽둥이와 주먹, 발길에 금방 피투성이가 됐다. 소작인회 지도자 서태석 일행이었다. 지주 문씨의 대낮 테러였다.
서태석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농민들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테러사태 하루 뒤인 28일 소작인회 회원 400여 명은 송덕비를 뽑아 내 아파트 매매 절차 팽개쳤다.
송덕비 폭력사태는 엉뚱하게 흘러갔다. 보름이 지나 난데없이 4월 13일 목포경찰서는 서태석 일행에게 소요, 상해죄를 뒤집어 씌웠다. 구속영장까지 청구해 목포형무소에 가뒀다. 목포경찰은 지주와 한통속이 돼 서태석 일행을 구했던 소작인회 간부 서창석 등 13명도 체포했다.

보름이 지나도 간부들 할부회선 정리 은 풀릴 기미가 안보였다.
 




암태도 소작인회 회원들이 목포 원정투쟁을 위해 집단적으로 출발했던 암태도 남강항에 세워진 사적지 비.


#돛단배에 수백명 타고 목포 행
이자액6월3일 면민대회를 다시 열었다. 소작인회, 암태청년회, 암태부인회까지 대거 참여했다. 면민들은 4일부터 목포로 건너가 소작인회 간부 석방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그날 새벽 나루터에 원정 투쟁단이 모여들었다. 400여 명이 훌쩍 넘었다. 7척의 돛단배에 나눠 타고 목포로 향했다. 꼬박 하루가 걸려 저녁에야 도착했다. 주먹밥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초여름 맨 땅에 다들 몸을 눕혔다.
6월 5일 날이 밝자 목포경찰서로 달려갔다. "서태석을 석방하라" "간부들을 풀어달라" 구금된 13명 간부의 석방을 외치며 하루종일 시위를 벌였다. 목포경찰서는 발칵 뒤집어졌다. 해질 무렵 암태도에서 100명이 더 건너왔다.
해가 지자 경찰 경비소 건물에서 둘째 날 밤을 보냈다. 6일에는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7일 다시 법원으로 몰려가 간부들의 석방과 면회를 요구했다. 예심판사는 1주일 안에 예심을 마치겠다고 약속하며 면허를 허용했다.

암태도 소작인들의 목포 원정 투쟁의 중심에 한 노파가 존재했다. 69세 암태부인회 회장 고백화였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를 백목 수건으로 질끈 동여맸다. 주름 진 얼굴에 결기어린 낯빛이 넘쳤다.




서태석 등 소작인회 간부들이 체포 구금된 모습을 그린 암태도 서용선 미술관의 건물 외부 벽화.


#"안이 노히면 가티 죽겟슴니다"
"돈이 없는 우리는 이때것 밥도 못먹엇슴니다. 우리만 도라간대도 소작권을 다빼앗긴 몸으로 살수가 잇슴니까. 가친 간부들이 다 노이기 전에는 안이 갈 작뎡 이외다. 만일 안이 노히면 가티 죽겟슴니다. " (조선일보 1924.6.8일자)
고백화 회장은 소작권을 빼앗긴 몸으로 살 수가 없으며, 갇힌 소작인회 간부들이 다 석방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절규했다. 만일 정말로 석방 안된다면 같이 죽겠다고 했다. 소작인회 간부인 아들이 감옥에 갇힌 늙은 어머니이자, 투쟁의 맨 선두에 선 소작부인회 회장의 피끓는 투쟁사였다.
그녀는 암태도 주민을 대표하여 일본인 검사와 판사를 면담했다. "소작회 사람만 구속하고 지주 측 사람은 왜 아니 구속하였느냐" 강하게 따져 물었다.
농민들은 지쳤다. 가져온 비상 식량도 돈도 떨어졌다. 다행히 지주 천후빈과 협상이 성공해 소작료 4할에 돌아갈 배삯 60원을 받아냈다. 별 소득 없이 1차 목포 원정투쟁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암태도 소작인들의 3박 4일 목포 원정 투쟁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동아, 조선일보 등 전국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벌교, 평양 등 전국 각지에서 투쟁 후원금도 쏟아졌다. 조선노농총동맹 등 사회단체들도 조사단을 파견,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시켰다.




암태도 소작인회 회원들이 목포 원정 투쟁을 벌인 목포 시내로 현 목포 근대역사관 일대.


# 시위 작인들 탈진, 굶주림에도 죽 안먹어
농민들의 순진한 기대는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7월 13일, 소작인회 간부 13명 모두 소요, 상해, 주거침입 죄목으로 전원 기소됐다. 정작 가해자인 지주 측은 5명 중 2명만 기소, 나머지는 풀려났다. 작인들은 분하고 억울했다. 지주와 경찰, 법원이 모두 한 편이었다.
1924년 7월 7일 면민대회를 열었다. "만약 이번에 13명과 같이 돌아오지 못하면 법정 안에서 다 같이 굶어 죽어버리자" 1차 원정 보다 더 비장했다. 8일 단식투쟁도 불사할 2차 원정투쟁단 600명이 암태도를 출발했다. 이들 중 200명은 노인과 여자들이었다.
원정대는 곧장 목포지청 재판소로 몰려 갔다."간부 13명을 석방하라" "우리는모두 굶어 죽겠다" 법원 청사가 쩌렁 쩌렁 울렸다. 일부 소작인은 혈서를 쓰기도 했다. 일제 법원측은 김정순, 고백화 등 대표단을 불러 농성해제를 협박했다. 모두 정말 죽기를 각오한 듯 보였다.
해가 저물었다. 나카지마 겐즈 목포서장은 정비소 건물을 내어 줄테니 거기서 자라고 회유했다. 1차 원정 때 쓰던 곳이었다. 농민들은 그대로 맨 바닥 법원 마당에서 밤을 지샜다.
7월 9일에도 단식 농성은 이어졌다. 노약자들이 탈진했다. 목포 청년단체들이 죽을 가지고 왔지만, 누구도 입에 대지 않았다. 10일에는 목포서장, 무안군수와 대화를 나눴지만 결실은 없었다. 단식 사흘째, 하나 둘 쓰러져 갔다. 김병로 등 변호인단이 보석 청원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1일 오전에 광주지방법원장이 농성장에 와 으름장을 놓고 떠났다.
12일 단식농성 닷새째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조선노동총동맹에서 지주 문재철과 협상을 시도했다. 문 지주는 3가지 선결조건을 내걸었다. 자신의 명예훼손에 대한 신문 사과문 게재, 부친 송덕비 복원, 소작인회의 소작료 수납 책임 등 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비는 하염없이 쏟아졌다. 날이 어두워지고, 비바람도 거세졌다. 눈물과 빗물이 한데 엉켰다. 법원 마당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더 이상 법원에서 버티는 게 무리였다. 목포 항정에 있는 김길요의 면화 창고로 이동했다. 비에 젖은 600명이 서로 몸을 기댄 채 닷새 밤을 보냈다.




1930년대 당시 목포경찰서. 목포시 제공


#"창자야 끊어지든지 말든지 "
'대지로 요를 삼고, 창공으로 이불을 삼아, 입운 옷에 흙이 묻든지 말든지, 주려드는 창자야 끊어지든지 말든지…. 인정 없는 모기에 물려가면서 그날 밤을 자는 둥 마는 둥…' (동아일보 1924.7.13일자)
13일 아침 농민들이 다시 법원으로 몰려갔다. 일요일이라 문이 굳게 잠겼다. 다시 면화 창고로 돌아와 이런 저런 토론을 벌였다. 오후 4시쯤, 일부 농민들이 목포 북교동 문재철 집으로 몰려갔다. 경찰 50여 명도 출동했다. 나카지마 목포경찰서장은 해산을 강력 경고했다. 농민들은 더 강경하게 버텼다. "죽어도 물러가지 않겠다"
경찰은 단식으로 곧 쓰러질 듯한 농민들을 마구 체포하기 시작했다. 서광호와 김소녀 등 남녀 26명을 끌고 갔다. 소작인회 간부 13명에 이어 또다시 농민들이 투옥됐다. 엿새째….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런 밤을 보냈다.
7월14일, 소작인회 지도부는 6박 7일간의 질긴 아사(餓飼)투쟁을 마무리했다. 소작인들이 지칠대로 지쳤다. 시위 중 체포된 26명도 풀려났다.
아사투쟁으로 부터 45일이 지났다. 소작인들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강고한 대오를 유지했다.
마침내 1924년 8 월30일 목포경찰서장실. 지주 문재철과 소작인회 대표 박복영이 마주 앉았다. 전남도경, 목포경찰서장, 무안군수, 조선노농총동맹 상임집행위원도 배석했다.
"소작료 4할로 한다"
마침내 암태도 소작인들의 투쟁이 승리했다. 얼마나 질긴 투쟁이었나. 1차 3박4일 목포원정 투쟁, 2차 6박7일 목포 원정 단식투쟁….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위치: 전남 신안군 암태면 기동리 서용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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