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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여성정책을 발표했다.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교제폭력 처벌 강화 등을 담은 ‘안심 공약’, 여성 안전 취약가구에 CCTV 등 예방 장비 시설을 지원하는 ‘안전 공약’, 딥페이크 영상 등 디지털 성범죄 집중 모니터링을 약속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 공약’, 고용평등 임금 공시제 도입, 여성 과학인과 여성 농민 지원 등을 담은 ‘일하기 좋은 사회 공약’ 등이다.


여성정책이 발표된 시점이 절묘하다. 외환은행 대출 민주당은 5월12일 10대 대선 공약을 발표했다. 이 안에 ‘군복무 경력 호봉 반영’은 포함되어 있었지만 성평등 공약은 전무했다. 가뜩이나 민주당이 대선 국면에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여성·성평등 의제에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던 차였다. 지지자들이 항의 문자를 보내자 당시 이재명 캠프 김문수 유세본부 부본부장이 “여성에게는 출산 가산점이 있을 것”이라고 답변하 고금리 면서 역풍이 커졌다. 결국 이재명 후보까지 나섰다. “‘빛의 혁명’의 주역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둥인 그들(여성들)에게 이런 마음을 들게 했으니 사유와 과정을 불문하고 미안하다”라고 항의 문자에 직접 답장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문수 부본부장은 사과를 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나온 것이 앞서 설명한 네 갈래의 여성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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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를 마친 후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하는 시민들. ⓒ시사IN 신선영



민주당의 여성 공약에 대해 여성계는 ‘퇴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중도 보수를 서울시 중랑구 내세우는 민주당이 여성정책 역시 우클릭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재생산 권리 기본법, 임신중지 건강보험 보장 확대 등은 사라졌다. 민주당이 발표한 정책 중 여성 안전과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은 여성가족부가 이미 해오던 여성폭력 범죄 대응 분야의 사업들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정부 조직 축소를 1호 공약으로 내놓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 전문직대출신청 세우고 있는 만큼 여성가족부의 기능을 강화하는 차별화된 선언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지만 이때까지 이에 응답하는 공약이 나오지 않았다.


5월28일,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민주당에서 대선 정책 공약집을 발표했다. 전날 TV토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여성혐오적 발언을 한 다음날이기도 하다. 정책공약집에는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재명 후보는 SNS를 통해 성별·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내각을 구성하고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밝혔다. 하지만 비동의강간죄와 차별금지법, 임신중지 권리 보장 등 논쟁적이라 판단한 이슈에 대해서는 입장을 유보했다.


5월18일 여성주의 대안문화 그룹인 ‘또하나의문화’에서 개최한 월례 포럼 ‘페미니스트 정치개혁: 응원봉을 든 손이 의사봉을 들 수 있을 때까지’에 참여한 김정희원 애리조나 주립대학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공약한 민주당의 정책에 대해 “미국의 공화당도 내세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가해자라는 나쁜 개인을 처벌하는 데 그치고, 여성을 ‘피해자’와 ‘산업역군’으로 바라볼 뿐 근본적인 성차별 구조를 개혁하는 성평등 대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빛의 혁명’ 주역은 누구?

김정희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이미 안티페미니즘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특히 유럽연합 내 국가들은 남성들에게 반페미니즘 인식이 확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확산되지 않도록 예방과 대응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폭력을 막기 위한 포괄적인 입법을 추진하고, 인식 개선을 위한 연구도 지원한다. 이 같은 변화와 달리 한국에서는 정부 차원의 안티페미니즘 대응이 더디거나 없는 실정이다.


민주당의 여성 공약 이름은 ‘여성+모두 안전한 나라’다.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뉘앙스가 담긴 작명이다. 이재명 후보는 4월11일 비전 발표회 후 ‘2030 여성 유권자를 위한 비전은 무엇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빛의 혁명 과정에 모든 국민이 함께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2022년 3월2일 20대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는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하나”라고 발언했다.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던 윤석열 후보는 여성과 페미니즘을 지우기 위한 전략으로 여성이 아닌 모든 인간을 내세웠다. 당시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가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걸 다시 정의하자면 여성의 성차별과 불평등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 불평등과 차별을 시정해나가려는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대선 국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5월12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의 ‘수도권 집중유세 노동선대본 발대식’에 참여한 지지자들. ⓒ시사IN 신선영



5월20일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도 여성정책을 발표했다. 공약 자체만을 비교한다면, 민주당과 눈에 띄는 차이는 없다. 김문수 후보는 “‘아빠 운동화’가 없어도 걱정 없는 일상을 만들겠다”며 교제폭력·스토킹범죄·가정폭력 등 폭력 피해 보호 법체계 보완 및 예방제도 정비를 내세웠다. 여성·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부분 근로자 대표제’를 도입하고, 1인·비혼 가구를 위한 ‘지정돌봄인 등록제’ 도입 등도 정책에 담았다.


진보 진영 후보인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성평등을 모든 정책의 기조로 삼겠다며 여성 공약을 발표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비동의 강간죄·낙태죄 대체 입법을 추진하며 여성가족부를 부총리급 성평등부로 강화하여 젠더 폭력에 대응하는 전담부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성계의 요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담은 공약이다.




4월27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주최로 ‘2025 대선, 여성폭력 해결! 나중은 없다!’ 다이인(die-in)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이래 항상 여성정책을 발표해왔다. 자신을 여성주의자로 호명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부를 신설하고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 등을 도입했다. 뒤이어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고, 호주제 폐지와 성인지 예산제도 도입을 이끌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축소하려고 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부가 왜 생겼고, 여성가족부로 왜 확대됐는지, 그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봤나”라고 되물었다.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호명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모습은 민주당 정체성의 한 축을 맡아오던 성평등 유산과의 결별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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