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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선생님을 꿈꾸던 착한 아이

아들은 1998년 4월 1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 한국신용불량자 렸을 때부터 늘 ‘올바름’을 강조했다. “불쌍한 친구들 보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 줘라. (넉넉하지 않아도) 그런 돈은 아빠가 얼마든지 줄 수가 있다”고 가르쳤다. 아들은 착하고 바르게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길에서 5000원짜리 지폐 하나를 주었다. “이거 주인 못 찾는다. 그 돈으로 우리 PC방 가자”는 친구 말을 따르지 않고, 주인을 찾아주 현대저축은행 땡큐론 려 했다. 경기도 평택으로 이주해 도곡중학교 2학년을 다닐 때 100달러짜리 지폐와 10만원짜리 수표 등 200만원 든 지갑을 주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참 그런 걸 보면 애가 참 올바르게 컸다. 남의 거 손 안 대고, 욕심도 안 내고….”



고 이선호씨가 시행기관 사망 3일 전인 2021년 4월 19일 평택항 항만물류회사 ‘동방’ 사업장 검역장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훈씨 제공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알아서 공부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현화고등학교 기숙사 배정을 받을 정도의 내신 성적을 냈다. 수학을 무척 좋아했다. 아들은 “수학 선생님도 못 공인인증서 대출 푼 문제를 풀었다”고 아버지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이 꿈이었다. 2017년 국립 강릉원주대 수학과로 진학했다. 교원 시험 준비 같은 인생 계획을 아버지와 상의하곤 했다.
아들은 아버지 뜻을 잘 따랐다. 1학년을 마칠 즈음 아버지가 “이왕 갈 건데 하루라도 빨리 갔다 오는 게 낫다”며 입대를 권유했다. 그 뜻에 따라 아들은 도투락 7급공무원라인 2018년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훈련소를 마칠 때 평택 2함대를 지원했다. 집과 가까웠다. 훈련소 평가 상위 30%에 들었다. 평택 2함대는 ‘빡센 곳’으로 알려져 훈련병들이 피하던 곳이라 뜻대로 배치됐다. 부대는 집과 걸어 10분 거리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외출이나 휴가를 나와 복귀할 때면 꼭 군화에 물광을 내며 닦아줬다.
아들은 2019년 12월 15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낼 원룸도 구했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터져 1년 치 원룸 월세만 날린 채 집으로 돌아와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아들이 아버지 권유로 평택항 부두에서 검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아버지는 아들이 노동으로 세상 물정을 알기를 바랐다. 아들은 아들대로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싶었다. 온라인 강의가 없는 시간 틈틈이 아버지를 따라 부두로 나갔다. 아들은 이곳에서도 착했다. 부두엔 이주 노동자들이 많았다. 아들은 동료 노동자들이 일하는 게 버거워 함께 하자고 부탁하면 언제든 들어줬다.
부자는 친구처럼 지냈다. 일을 마치면 함께 샤워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는 최신곡을 목청껏 부르곤 했다. 두 사람은 동네 목욕탕도 1주일에 한 번꼴로 가 서로 등을 밀어줬다. 퇴근 뒤 동네 곱창집에 가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내가 하던 가게였다.

안전모도 받지 못한채 동료 돕다…




고(故)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2021년 6월19일 오전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이씨의 시민장(葬)을 마친 뒤 아들과 함께 일하던 평택항 (주)동방 사무실 앞 철문을 붙잡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1년 4월 22일 평택항 항만물류회사 ‘동방’ 사업장에서 아들이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죽었다. 안전모도 받지 못했다. 자기 일도 아니었다. 동료 노동자 운반일을 도와주려다 죽음이 도사린 현장으로 가버렸다. 세상은 ‘평택항 대학생 사망 사고’로 아들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자 자전거를 타고 현장에 갔다가 컨테이너에 깔린 아들의 주검을 눈으로 확인했다.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아들의 일생이 한순간에 사그라지자 아버지의 억장도 무너졌다. 모든 순간순간이 회한으로 다가온다. 입대를 권유한 일도, 평택으로 이사 온 일도…. 가족 사랑으로 선택한 모든 일이 아들의 죽음과 연결된 것 같아 죄책감을 떨쳐낼 수 없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은 사실을 곱창집에서 일하던 아내에게로 가 알릴 때 무릎을 꿇었다. “아침에 같이 같이 밥 먹고 함께 일하러 나갔는데, 죽었다고, 어떻게 말을….” 아들이 차 사려 모은 돈 600만원 가량이 찍힌 계좌를 보고는 부두 일에 데리고 간 게 한탄스럽다.
사무치는 일도 많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린 시절 주운 5000원과 200만원 든 지갑을 학교에 맡겼다. 초등학교 때는 어린아이의 선행에 작은 상장 하나 줄 법했는데, 학교에서 아무 격려 없이 넘어간 일도 두고두고 원망스럽다.
아들이 죽고 4년이 지난 지금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생각과 마음의 감옥에 갇혀버렸다. 아들이 죽기 4일 전 일요일 늦잠을 자다 비명을 지른 일이 떠오른다. 아들은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는 꿈을 꿨다”고 한다. 모든 생각이 아들의 죽음과 결부된다. 평택에서 함께 일하다 2018년 사망한 부산 친구가 아들 죽던 날 새벽 꿈에 나왔다. 이 친구 빈소가 아들과 같은 병원 장례식장 같은 302호실이었다는 사실을 죽음 이후 상기했다. 수년 전 사들인 중고차 등록 일자가 아들 사망일인 4월 22일이라는 걸 보고는 주저앉아버렸다.



이재훈씨가 2021년 6월 19일 천안추모공원 화장터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들의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재훈씨 제공


아버지는 아들 번호를 “삶의 희망”이라고 적어 저장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이 번호를 가져갔다. 어느 날 아들 번호로 카카오톡 프로필이 떴다. “아기를 낳았다는 내용이 있더라. 선호가 아기로 환생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했다.
착하고 순했던 아들이 계속 생각난다. 친구도 많았던 걸 죽고 나서야 확인했다. 장례 기간 놀랐다. 초중고대학 친구와 군대 동기 100여 명이 조문했다. 고등학교 친구 둘은 번갈아 밤을 새워가며 59일 동안 빈소를 지켰다.
아들은 장애인인 큰 누나를 잘 챙겼다. 사고 즈음 큰딸은 암에 걸렸다. 항암 치료를 받았다. 부모는 충격을 받을까봐 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계속 숨길 수는 없었다. 발인 하루 전인 6월 18일 큰딸이 가장 좋아하는 숙모에게 사고 소식을 알려달라 부탁했다. 발인이 진상규명 촉구로 미뤄지는 사이 큰딸은 스마트폰 뉴스로 동생의 죽음을 확인했다. “엄마 아빠 걱정할까 싶어서 아무 말을 안 했다 하더라고요.” 큰딸은 지금도 종종 “선호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아내는 손녀라도 봐야 슬픔을 이겨내지 않을까 싶어 하동 작은 딸네 집에 갔다. 딸네가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따라갔다. 아버지도 평택에 더 머무를 수는 없었다. “골목골목에서 아빠하고 부르고 나올 것 같더라고요. 아들하고 너무 많은 추억이 새겨진 곳이라….” 지난해 9월 평택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갔다. 그해 친구 보온 단열재 제조 회사에 12월 취직해 다닌다. 지금은 이 회사에서 공장에서 물건을 옮기는 배송 일을 하고 있다.
부산으로 오기 전 평택에서 지내면서 사망 진상 규명 책임을 묻는 활동을 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 여러 재난 희생자 유족 집회나 모임에도 참여했다. 최근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권영국 공동 후원회장에 이름을 올렸다. 권영국은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법률 자문을 맡았다. “10원 하나 안 받고 우리를 도와줬다. 이번에 조건 없이 뭐라도 도와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폭염에 에어컨을 설치하다 숨진 고 양준혁의 어머니 신우정, 동국홀딩스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정비를 하다 사망한 고 이동우 아내 권금희, 방송계의 장시간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피디 고 이한빛 아버지 이용관이 함께 후원회장을 맡았다.

거대 정당,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외면

아들의 죽음은 그저 한 개인의 불운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다. 사회적인 죽음이자 지금 체제가 초래한 죽음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지게차 같은 장비가 작업할 때는 감독자, 수신호 담당자를 두게 돼 있다. 아들의 죽음 때는 한 사람도 두지 않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일당 10만 원만 주면은 한 사람을 세울 수가 있는데, 그 돈 10만 원 더 남기려다가 남의 집 자식 잡은 거죠.”
아들의 죽음 뒤에도, 여기저기 일터에서 사람들이 깔려 죽고, 떨어져 죽고, 끼여 죽었다. 정치인의 조문과 위로 따위로는 이 죽음의 연쇄를 끊어낼 수는 없다. 대선 정국에서 산재도, 고공농성도 뒷전으로 밀렸다. 누군가 죽으면 거대 두 정당 중 한 정당은 말로만 위안하고, 다른 정당은 못 본 척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겠다 같은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결국은 기업 편이다.
아버지는 지난 20일 추가 인터뷰를 하면서 전날인 19일 50대 여성 노동자가 에스피씨(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컨베이어와 구조물 사이에 끼여 사망한 일을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책임을 회사 대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징역형을 때려야 바뀔 겁니다. 그래야 대표들이 회사의 안전 관리자가 됩니다.” 아버지가 재차 말했다. “돈 조금 더 남겨 먹으려고, 누군가의 귀한 자식들,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빠, 엄마를 죽게 하거나 다치게 만드는 세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거죠. 사람들이 돈 몇 푼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을 왜 못 만듭니까?”


☞ 안창호에 구애한 여자가 아니라 제국·자본에 맞선 독립운동가[생사고투] ④ 최영숙
     https://www.khan.co.kr/article/202505020600041



[생사고투]는 세상에 덜 알려진 채로 또는 무명으로 묻힌 이들의 삶과 죽음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과거나 동시대 게시일 즈음 출생하거나 사망한 이들이 생전 겪은 고투를 전합니다. 지금 죽음에 맞서 싸우는 생존자들 이야기도 들려 드립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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