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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 에세이스트, 1인 출판사 대표까지 겸하는 노석미 작가는 23일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문학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강예진 기자


"개집을 뻥튀긴 모양이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노석미(54) 작가가 집을 짓기로 마음먹고 주문한 집 모양이다. 서울 출신인 그주식고급정보
는 스물여덟 살 때 경기 가평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전원 생활 10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결단을 내렸다. 양평군의 동쪽 끝자락에 터를 잡은 그는 "어떠한 치장도 지니지 않은 매우 단순한 창고 같은 집"을 지었다.
녹음이 짙어진 지난 23일, 산과 논과 밭을 지나 그의 집에 도착했다. 집의 내부는 침실과 화장실을 제외하곤 하나로 뻥 뚫려은투자
있다. 군더더기 없이 간소한 그의 작품과 꼭 닮은 공간이다. 그의 공간은 작품들로 가득하다. 구획 없는 공간의 제일 안쪽은 그의 서재다. 두서없이 이중 삼중 꽂혀 있는 책으로 빽빽하다. 맞은편 벽면에는 그가 그린 작품들과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캔버스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

'5m 층고' 작업실에서 읽고 그려
재테크정보
"저는 환경을 중요하게 여겨요.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제 작업의 원(源) 소스가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집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181.81㎡(55평) 규모의 정남향 집은 층고가 5m에 달한다. 높은 천장을 가진 스튜디오에 대한 로망을 실현했다. 그는 "신천지게임 다운로드
작품이 놓인 공간에 따라 보는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층고가) 중요하다"며 "천장이 높으면 그림 그릴 맛이 난다"고 했다. 작가는 이 집에서만 17년째 살고 있다.



노석미 작가가 17년째 살고 있는 경기 양평군 자택은 그의 일터이자 삶터다. 벽에는 그리다만 캔버스가 걸려추격매수
있고, 마룻바닥에는 물감이 어지럽게 튀어 있다. 강예진 기자


그는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기로 일찌감치 결단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후 마음맞는 친구와 서울 밖에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바닥에 물감도 튀고 짐도 많은데 서울에선 그럴 만한 공간을 구할 수 없었다. 예산 문제도 컸다. 그럼에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귀농·귀촌이란 말조차 낯설 때였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가평에 작업실을 구했다.
하지만 함께하기로 한 친구는 사정이 생겼다. 노 작가 홀로 가평에서 작업을 하게 됐다.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물들인 그를 동네에선 '배추 아가씨'라 불렀다. 그의 친구들은 "네 성격에 6개월도 못 버틴다"고 장담했지만 임대 계약이 만료돼 쫓겨날 때까지 2년을 버텼다.
시골 생활은 그를 성장시켰다. 그는 "적막한 시골에서 혼자만의 기나긴 시간을 갖게 되니 그림을 그려야 됐다"며 "작가라는 존재는 남이 보든 안 보든 혼자서 '쑥과 마늘의 시간'을 보내야 작업물이 나오는데, 돌이켜보면 저에겐 그때 그런 시간이 그냥 주어졌다"고 했다.

읽고, 쓰고, 그린다... 변주하는 삶
자연을 벗삼은 그의 삶은 언뜻 보면 한가로울 듯하다. 노 작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실제는 매일 바쁘다. 그는 "일 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고, 머릿속에서 계속 또 일을 꾸리는 편"이라고 했다. 그가 내놓는 결과물을 보면 수긍이 간다. 그림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은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창작, 에세이 집필로까지 사방팔방 뻗어나간다. "'내가 너무 문어발식으로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을 저도 해봤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다 같은 얘기인 거예요. 약간의 변주일 뿐이지 저한테는 다 같아요."



회화와 문학을 결합한 노석미 작가의 '텍스트 페인팅' 시리즈 한 점이 책꽂이에 세워져 있다.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여뀌 먹는 벌레'에서 따온 문구와 곰, 사람, 새를 단순화한 그림이 함께 배치된 화면이다. 강예진 기자


그의 창작열의 원천은 문학 사랑이다. "저는 문학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제 그림의 베이스에는 문학이 있어요." 그의 그림 역시 문학에 걸쳐 있다. 그의 대표작 '텍스트 페인팅' 시리즈가 그의 문학 사랑을 그대로 보여준다. 말 그대로 글자와 그림이 하나의 작품이다. 평소 단문 쓰기를 즐기는 그가 직접 쓴 문구나 평소 책을 읽으며 수집한 문장들을 그때그때 떠오른 이미지와 함께 배치한다. 비율을 따지면 그가 쓴 문장이 80%다. "문학이냐 그림이냐 헷갈려 하기도 하는데 제가 그냥 그런 식의 작업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는 특히 '시'에 비견했다. "특별하기보단 일상적으로 환기되는 문장을 따로 수집하고 이미지 형상은 단순화된 조각처럼 만들어요. 너무 구체적이면 의미가 명징해지면서 은유를 상실하게 되거든요. 시의 행과 행 사이 여백처럼 여백이 나 있기를 바라요. 그림이든 글이든요."



"내 그림의 베이스는 문학"이라는 노석미 작가가 붓과 자신의 펴낸 책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 즐겨"
문학 사랑도 일찍이 시작됐다. 어릴 적 혼자 노는 게 익숙했던 그의 가장 큰 유희는 독서였다. 아무도 읽지 않던 거실 책장 속 세계문학전집에서 헤르만 헤세, 펄 벅의 소설을 꺼내 읽었다. 지금도 많이 읽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레드는 아예 책을 읽은 후 발췌한 문장만 올리는 용도로 쓴다. 그의 SNS에는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이 올라온다.
그의 독서도 집만큼 구획이 없다. 최근 김훈의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 고규홍의 나무 교양서 '도시의 나무 산책기', 록산 게이의 비평집 '나쁜 페미니스트', 노자의 '도덕경', 신용목의 시론 '비로 만든 사람' 등을 읽었다. 최근 구입한 '토마스 만 단편집'과 루이스 하이드의 인문서 '선물'도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정보를 얻거나 작품 활동을 위한 독서는 하지 않는다. 그는 "순수하게 독서의 즐거움을 즐긴다"고 말했다. 정보와 영감은 그저 따르는 것일 뿐. 최근 읽은 책 중 일본의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의 에세이는 "질투가 나 짜증날 정도로 재밌다"며 "최근 줌으로 한국 독자들과 북토크를 했는데 오죽했으면 저도 처음 신청해서 참여해봤다"고 추천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쓴 에세이도 챙겨 본다. 오르한 파묵의 '먼 산의 기억', 무라카미 하루키의 웬만한 에세이는 다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일본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다. 다소 거칠지만 생명력 넘치는 화풍의 일본 그림책 작가 가타야마 겐도 좋아한다. 일본에 갈 때마다 눈에 띄는 대로 책을 사모은다.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책은 원서를 사 와 잘 아는 엄혜숙 번역자에게 부탁해 우리말로 읽었을 정도다.



노석미 작가가 그동안 쓰고 그린 동화책, 에세이집이 펼쳐져 있다. 강예진 기자



적자 감수하면서 1인 출판사까지 차린 이유
그림보다 글이 먼저였다. 화가가 될 줄은 몰랐어도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생각했다. 책이라는 매체를 좋아한 그가 "책을 계속 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계기가 돼 에세이집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해'(2004)를 출간한 이후로 '그린다는 것', '매우 초록' 등 여러 권을 썼다. 특히 텃밭을 일궈 스스로를 먹이는 삶을 담은 '먹이는 간소하게', '안주는 화려하게'도 최근 펴냈다.
그의 왕성한 활동은 직접 책을 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1인 출판사 DBHBSSI(듭흡씨)도 2022년 차렸다. 28세 때 처음 키웠던 길고양이부터 지난해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까지 그와 함께했던 고양이 7마리의 이름 첫 자를 딴 사명이다. 'your art & your own literature'(당신의 미술, 나만의 문학)라는 기치 아래 미술과 문학 사이에 위치한 출판물을 매년 1권씩 내는 게 목표다.
아직은 자비 출판 단계다. 그가 2021년 1년 넘게 제주에 머물면서 바다를 그린 128점이 담긴 '바다의 앞모습'뿐 아니라 아트북 '아침에 눈을 뜨면', 10년 넘게 모은 단문을 엮은 '신선하고 뾰족한 가지' 등 듭흡씨가 출간한 모든 책은 노 작가가 썼다. 그가 쓴 단문과 개인전을 통해 공개한 그의 그림도 함께 담고 있다. 적자를 감수하고 낸 책들이다. "전시와 글쓰기를 연결시켜 움직이는 작업이 흥미롭습니다. 대중적이진 않지만 제 식의 출간물을 계속 선보이고 싶어요."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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