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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처럼 고요한 정거장 같은 인간 조각 7점, 지구와 내가 이렇게 가깝구나! 느껴보기 바랍니다.” (안토니 곰리)
거장들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다. 들뢰즈, 데리다 등 한국 미술계가 기대기 좋아하는 현대미술 이론가를 들먹이지도 않았다. 한국의 관람여의도증권가
객이 왜 자신의 작품을 보러 와야 하는지 쉽고 분명한 언어로 말하는데, 더 설득력이 있었다.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원로 현대 미술가 제임스 터렐(82)과 안토니 곰리(75)가 각각 서울과 원주에서 시작한 개인전을 다녀왔다. 둘 다 명상이라는 최종 정거장에 도착하지만 각기 사용하는 매체와 방법은 극과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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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곰리
현대 조각의 거장으로 불리는 곰리는 최근 제임스 터렐 상설관으로 유명한 강원도 원주의 사립미술관 뮤지엄산에 개인전의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딴 상설관을 새로 마련했다. ‘그라운드’라 명명된 전시 공간은 뮤지엄산을 설계한 일본 건축가 용의 눈 게임
안도 타다오(84)와 협업한 작품이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 신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판테온이 닫힌 공간인 것과 달리 그라운드는 반원 형태의 전시 공간 절반이 확 트이게 개방됐다.
“외부와 그리고 내부 간의 경계를 이제 완전히 허물고, 바깥에서의 새소리나 바람소리나 이런 자연이 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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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시장에 벽돌 형태로 추상화한 철로 된 인체 조각 7점을 놓았다.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거나 쪼그려 있거나 옆으로 누운 자세를 연상시키는 7점 ‘철인’ 조각에 대해 작가는 “일본 교토 료안지 정원의 바위처럼 고요하고 정지된 정거장 같은 역할을 하는 조각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천장의 창을 통해 비추는 햇살, 입구를 통해에스에이티 주식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나뭇잎 소리마저 작품 일부다. 녹 쓰는 철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붉게 부식되는) 철은 우리가 땅에서 왔다는 사실을 연상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부연했다. 지하 동굴 구조의 그라운드 전시장을 걸어 나와 밖에서 보면 고대 한국의 무덤이 반쯤 개방된 인상을 준다. 그래서 무덤 속 철인에 감정이입 됐던 관람객은 스피드의 세상에서 지친 심신을 이곳에서 위로받고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힘을 얻을 것 같다. 예술, 자연,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곰리 상설관 말고도 별도의 공간에서 기포를 연상시키는 인체 연작, 드로잉과 판화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190㎝에 가까운 자신의 거구를 캐스팅한 조각 작품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구상 조각을 벗어나 선과 면 등으로 인체를 추상화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한편, 작품이 놓은 공간을 관람객이 경험하는 작업을 지향해오고 있다.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 설치된 제임스 터렐의 연작 ‘웨지워크’. 페이스갤러리 제공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소재한 외국계 페이스갤러리에서는 터렐의 개인전 ‘회귀(The Return)’가 이달 중순 개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빛으로 빚은 조각’ 하나를 뚝 떼어 무한한 깊이감을 환영처럼 연출하는 ‘글래스워크’ 여러 점과 빛이 만들어내는 공간 자체를 빨려들듯 경험하게 하는 터렐 특유의 설치 작품 ‘웨지워크’ 1점을 선보이고 있다. 빛의 색이 변하는 웨지워크는 총 3점뿐이며 국내에서는 최초 공개됐다. ‘빛의 사제’로 불리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터렐은 한국에서도 기획전에 자주 초대됐지만, 개인전은 17년 만이다.
상업 갤러리 전시인 만큼 작품 크기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설치 작업 웨지워크를 통해 세상과 격리된 듯 고양된 경험을 할 수 있다. 깜깜한 공간을 더듬으며 들어간 공간에서 태초의 빛처럼 환한 빛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선이 아니라 면으로서, 공간으로서의 빛이다. 다양한 효과의 빛이 대각선으로 투사돼 실제 벽면과 겹치며 ‘빛의 벽’을 형성한다. 관람자는 어둠 속에서 실제 벽과 빛으로 이루어진 벽이 중첩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날카롭게 투사된 빛의 모서리에서 ‘웨지(쐐기라는 뜻)’라는 명칭이 나왔다. ‘빛의 사제’라는 별칭답게 작가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깊은 사유를 통한 철학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제임스 터렐
“미술의 역사에서 빛을 묘사한 작가들이 정말 많았지만 나는 빛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빛 자체를 다루는 예술을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에게 한 조각의 빛을 전달하는 것이고 빛 자체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공간과 빛이 갖는 관계에 주목해온 터렐은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자신이 보고 있다는 상태를 인식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몰입형 설치작품으로 유명하다. 일본 나오시마, 한국의 뮤지엄산에 있는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명상과 정신적 수련을 중시하는 퀘이커교도라는 점이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서울·원주=손영옥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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