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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태(48)가 몸통과 하체의 힘만으로 750m의 물길을 헤엄쳐 나오면 늘 마주하는 얼굴이 있다. 1분, 1초가 아까워서 초긴장한 표정으로 수영모를 벗기고 신발을 신기고 헬멧을 씌워주고 의수를 하게끔 도와준다. ‘핸들러’(경기 보조인)인 아내 김진희(47)씨다. 지난 17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때는 이 시간이 1분38초에 불과했다. 참가자 7명 중 가장 빠른 트랜지션 시간이었다.
김황태가 사이클(20㎞)을 타고 나가면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온다. 마냥 트랙 쪽을 바라보다가 남편이 보이면 마지막 달리기(5㎞)를 할 수 있게끔 해주기 스톡엔죠이
위한 준비를 한다. 의수를 빼고 신발을 갈아신기면 김황태는 이내 뛰쳐나간다. 김씨는 결승 지점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완주만 했으면” 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졸인다. 남편의 모습이 저멀리 보이면 비로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호흡’이란 말을 시각화하면 딱 김황태 부부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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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김황태가 두 팔을 모두 잃었을 때(2000년 8월)도, 전세계 최초로 두 팔 없이 파리패럴림픽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경기에 참가했을 때(2024년 9월)도 이들은 함께였다. 패럴림픽 완주 뒤 김황태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그래서 “내가 다치기 전부터, 다친 후에도,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제 팔이 되어주고 손이 되어주는 아내 김진희님께 존경바닥주
스럽다고,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였다. 이들의 결혼기념일은 12월24일. 가장 기억하기 쉬운 날을 골라 혼인 신고(2002년)를 했다.



장애인트라이애슬론 경기 때 김황태(왼쪽) 곁에서 핸들러 역할을 해주는 아내 김진희씨.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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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내심 남편이 파리패럴림픽 끝난 뒤 힘들고 고된 철인3종 경기를 그만두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직도 김황태는 물살을 가르고, 사이클을 타고, 도로를 달린다. 지난 13일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만난 김황태는 “작년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훈련량을 따라갈 수 있으니까, 아직은 할 수 있는 능력치가 있어서 계속한다”고알라딘게임랜드
했다. 그러면서도 아내에게 미안했는지 “내 욕심 때문에 계속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인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는 김황태 외에 한 명밖에 없다. 비장애인도 힘들어하는 종목이어서 선수 유입이 거의 없다. 3가지 종목을 연습해야 하니까 훈련 강도 또한 세서 중도에 그만두는 이도 꽤 있다. 김황태는 지금도 1주일 내내 하루 4~5시간씩 훈련한다. 남편의 훈련 스케줄에 김씨는 티브이(TV) 연속극은 일부러 안 본다. 훈련 내내 곁을 지켜야 해서 짬이 거의 없는데 뒷이야기가 궁금할까 봐서다. 그의 시간은 남편과 함께 흘러간다.



김황태(오른쪽)와 아내 김진희씨 뒷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수영, 사이클, 달리기 중 김황태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것은 사이클이다. “속도감도 있고, 평상시에 할 수 없는 것을 해서” 그렇다. 두 팔 없이 해야 하는 수영은 제일 어렵다. 유속이 센 곳에서는 자칫 떠밀려 갈 위험도 있다. 파리패럴림픽 때는 이 때문에 조직위에서 경기 때 힘들면 카약을 잡고 쉬어도 된다고 했었다. 물론, 그는 스스로 센강을 헤엄쳐 나왔다. 현재 세계순위 7위의 김황태는 수영을 제외한 다른 두 종목은 최상위권에 있다. 그래서 날씨 등의 이유로 수영이 취소되고 두 종목(사이클, 달리기)만 하게 되면 시상대에 오른다. 김황태는 “결승선을 통과하면 이제 안 뛰어도 된다는 안도감이 든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골인하는 순간 지친 내 몸에 휴식을 줄 수 있으니까 그 순간이 크게 와 닿는다”고 했다.
그는 지금 마라톤 ‘서브 스리’(마라톤 코스를 3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 2015년까지 17차례 했는데 이후 하지 못했다. 지난 3월 하프 마라톤에 두 차례 참가했는데, 내전근에 문제가 생겨서 이후 잘 뛰지 못했다. “요즘 햄스트링에 고관절 부상까지 왔다”는 그지만 ‘서브 스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김황태에게 트라이애슬론은 “물놀이 하다 보면 사이클 타서 바람 쐬고, 그다음에 뛰면 끝나는” 운동이다. 그래서 “안 아프고 오래도록 하고 싶다”. 김황태의 무한도전 덕에 대한장애인트라이애슬론연맹은 지난 2월 정가맹단체 승인도 받았다. 김씨는 “트라이애슬론은 남편에게 사명감을 안겨주고 평생 잊지 못할 일을 이뤄줬다”면서도 “다만 남편이 즐기면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겉으로는 “밖에서는 100점, 안에서는 0점인 남편이자 아빠”라고 말하지만 김씨는 인터뷰 내내 존경과 걱정의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김황태-김진희 부부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경남 창원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모범부부상을 받았다. 김황태는 “아내가 많은 희생을 하면서 살아왔다. 편안하게 살게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고 했다. 김씨는 “남편이 꾸준하게 자기관리 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여느 부부처럼 투닥거려도 그 밑바탕에는 끈끈한 신뢰가 있었다.



수영 종목을 하고 있는 김황태.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두 팔을 잃고 김황태의 삶은 달라졌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늘 아내 김씨가 있었다. 전세계 유일의 두 팔 없는 철인으로, 그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가족이 곁에 있어서다. 여전히 물 안에서, 물 밖에서 극한의 의지를 보여주는 김황태. 혼자가 아니기에 절대 외롭지는 않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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