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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짜리 곡을 쓰기 위해 3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3분이면 10시간짜리 음악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겠지요. 네,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 이야기입니다.
그의 작업 과정을 감히 몇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스케치북을 위에 다섯 줄을 긋고, 그 위에 음자리표와 음표를 그려 넣은 뒤 다시 배열하기를 수십, 아니 수백 번.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과 영감을 준 시, 연주에 필요한 박자와 음악 기호들을 색색의 펜으로 써 내려갑니다. 어떤 곡을 쓸 땐, 150권 넘는 책을 읽은 적도 있다지요. 1989년부터 지금까지 손으로 쓴 악보들. 그 일부는 아르떼 매거진 3월호 29쪽에서 사진으로 볼 수 있습 햇살론 문의 니다. 악보라기보다,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지요.



베를린에 거주하는 진은숙의 모습을 사진작가 페터 훈데르트가 담아냈다. 그는 "진은숙의 작업은 화사한 꽃, 우주의 섬광을 닮았다"고 했다. PETER HUNDERT


근로자저신용대출 이 곡들은 실제 연주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 채, 그 자리에 숨죽이고 있습니다. 그때까진 오직 그의 머릿속에서, 상상 속에서 연주됩니다. 완성한 지 1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곡도 수두룩합니다.
진은숙의 세계에 노크하기 위해 많은 곡을 들어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반했다고 하면 거짓일 테고, 전부 좋았다고 하 대출가능 면 위선이겠지요. 만약 당신도 진은숙의 음악을 처음 접한다면, 같은 초보자로서 이 곡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2019년 함부르크에서 초연한 ‘Frontispiece’. 어떤 책의 맨 앞에 들어가는 삽화를 뜻하는 곡의 제목처럼, 이 곡은 마치 ‘진은숙 월드’로 입장하는 서막처럼 다가옵니다. 8분이 채 안 되는 이 곡을 듣고 나니 마치 80분간 휴대폰 중고매입 우주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캄캄하고 서늘한 미지의 땅에 들어서려다 멈칫하는 순간,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며 경쾌하고 빠르게 달려갑니다. 질주하던 기차가 멈추고, 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햇살이 반짝이다 어느덧 무중력 상태에 던져지는 느낌. 그러다 또다시 거대한 다른 차원의 암흑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갑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주택청약예금 초현실적인 경험을 한 것이죠. 그것도 단 8분 만에.
이번 아르떼 매거진은 독자 여러분에게 느낌표보다 더 많은 물음표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사람, 예측 불가여서 다음 행보가 더 기대되는 예술가, 그리하여 더 많은 이와 진은숙의 세계를 오래도록 탐험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진은숙을 인터뷰하고, 그의 삶을 엿보며 확신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진은숙의 음악을 듣지 않으면, 죽고 나서 후회할 것 같아!” 



ⓒKlaus Rudolphjpegjpeg


우주 여전사처럼 당당한 포즈에 장난기 가득 머금은 표정, 환각적 배경에 선 여인. 위 사진 속 오묘한 앵글의 주인공은 작곡가 진은숙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짙은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로 잘 알려진 진은숙. 그 의외의 순간을 담아낸 작가는 독일의 사진가 페터 훈데르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배경에서 진은숙을 찍어보고 싶었어요. 그의 작곡 방식, 그에 따른 결과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연출 의도를 한국에서 알아봐줘서 기쁩니다.”
사진 한 장에 모든 걸 담아낼 순 없겠지만, 훈데르트가 맞았다. 작곡가로서의 진은숙은 하나의 색으로, 하나의 언어로, 하나의 규칙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더 나은 단어는 없을까’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색을 동원한다 해도 그가 가진 빛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마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주의 섬광이 존재한다면 이에 가까울까.
진은숙의 딜레마가 여기 있다. 사람들은 진은숙을 시사평론가 진중권의 누이, 음악계의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아시아인 여성 작곡가, 12년간 서울시향에 몸담았던 재독 작곡가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그의 음악을 들어본 이와 그의 음악을 깊이 있게 논하는 이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뉴욕 필·베를린 필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앞다퉈 곡을 의뢰하는 진은숙을, 작곡 분야에서 전 세계 모든 권위 있는 상이란 상은 다 휩쓴 그를, 정작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진은숙 작곡가의 삶의 궤적은 인간적이면서 비인간적이다. 어린 시절 가난했고, 독일 유학 시절 크게 좌절했고, 긴 슬럼프를 겪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독학만으로 삼수 끝에 서울대 작곡과를 간 것, 아직도 어떤 기술의 도움 없이 손으로 오선지를 그려 연필만으로 대편성의 곡을 쓴다는 것, 그리고 마흔 살 넘어서까지 (자발적) 무명으로 살았다는 것, 그가 쓴 모든 곡은 -연주자들이 연주하기 전까지 절대 피아노 건반으로조차도- 미리 연주해보지 않는다는 것, 벌써 두 번째 오페라를 쓰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인간적이다.
스물네 살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독히 싸워야 했던 그는 10년 넘게 침잠했다. 스스로 “격리되어 살았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무리 작곡을 해도 15년간 그의 곡이 연주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섭식 장애에 우울증까지 겹쳐 슬럼프를 겪어야 했던 상황. 물론 쉬운 해결책도 있었다. 한국의 국악기를 곡 안에 끼워 넣어 “역시 아시아 작곡가라 신선하다”는 평을 받는다거나, 1년에 여러 곡을 내놓아 단숨에 ‘스타 작곡가’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진은숙의 모습을 사진작가 페터 훈데르트가 담아냈다. 그는 "진은숙의 작업은 화사한 꽃, 우주의 섬광을 닮았다"고 했다. PETER HUNDERT


진은숙은 타협하지 않았다. ‘아시아 여성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가진 기대치에 자신을 욱여 넣어 반짝 떴다간, 또 금방 시들어버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곡을 쓰다 벽을 마주하면 피아노로 바흐의 곡을 연주하며 마음을 다잡고, 과학 분야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책을 독파했다. 진은숙은 그들의 룰 안에서 ‘진은숙이라는 장르’를 만들기 위해 홀로 싸웠다. “나를 다 던져 쏟아부어도 99.999%는 실패한다. 0.0001%가 성공하는 것이다. 작곡가는 죽은 뒤에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었다.
“현대음악은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진은숙은 명료하게 말한다. “현대음악이라는 건 없다. 그저 음악만 있을 뿐이다”라고. 굳이 말하자면, 살아 있는 작곡가가 만든 음악일 뿐이라고. 진은숙이 정의하는 음악의 본질도 한 단어로 정의된다. ‘소통’이다. 그에게 작곡이란, 자신만의 사고 체계를 끝없이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평단은 그의 음악을 “한 음도 낭비하지 않는 정교함”이라고 표현한다. 실제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은 진은숙의 음악을 “따뜻하다”고 평가한다. 연필과 종이 악보를 지금도 고집하는 이유는 작곡에 혼을 담기 때문이라고. 음표 하나하나를 충분히 생각해 다음 음과의  연결을 떠올리며 손으로 써 내려가야만 비로소 나의 정신이 투영됐다 생각한단다. 그 악보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음악가들은 어쩌면 그가 수년 간 쏟아부은 혼을 온기로써 느끼는 지 모르겠다.   
물리학과 양자역학, 우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을까. 별이 홀로 빛날 수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진은숙은 자신의 명성을 후배 음악가들과 나누는 데 열정적이다.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2006~2018) 재임 시절 신진 작곡가 마스터클래스를 만들어 김택수·신동훈과 같은 후예를 키워냈고, ‘통영국제음악재단TIMF 아카데미’ 등을 통해 국내 신진 작곡가를 양성하는 일에도 힘쓴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미국 뉴욕 카네기홀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잇따라 작품을 발표하며 활약 중인 한국 출신 작곡가 김택수, 신동훈 등이 모두 그의 제자다. 공연 한 번, 값진 조언 한마디가 작곡가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 지 아는 그는 어린 예술가들을 위해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좋은 곡만 쓰면 무대는 언젠가 어디에나 있다"고 독려하는 그다. 
그는 3년 전부터 매년 벚꽃 피는 계절마다 통영을 찾아온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한국 땅, 혹은 그 땅끝 통영이 어디인지도 모르던 세계적 음악가들을 직접 초대한다. 일주일간 열리는 모든 공연의 리허설도 빠짐없이 직접 챙긴다. 올해는 임윤찬과 함께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동료 작곡가 대부분이 고국 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게 부러웠어요. 제가 그들을 부른다기보다 음악이 우리를 모이게 하는 거겠죠.”
진은숙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조건 새로워야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서 새로움이란 단순히 음악적 실험이 많다는 뜻이 아니었다. 파격적 시도가 없더라도 참신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새로운 음악이라고 했다. 
“예술가라면 자기만의 정체성이 강한 작품,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세계를 찾기 위해 더 깊게 내면을 파고들어야 해요. 남은 찾아줄 수 없어요. 스스로 고민하고 좌절하고 자신만의 섬에 고립돼 열중해야만 비로소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죠.”
김보라 기자 
※작곡가 진은숙의 더 깊은 이야기는 <아르떼 매거진 3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작곡계의 신성, 진은숙의 제자인 김택수 작곡가가 말하는 '나의 스승, 우리의 등대 진은숙' 기고글과 송주호 음악평론가가 다룬 '진은숙의 음악세계', 류태형 음악평론가의 '베를린필 진은숙 에디션의 음반 리뷰' 등이 함께 합니다. 아르떼 클래식 부문의 김수현 기자가 통영에서 나눈 진은숙 인터뷰도 미공개 사진들과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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