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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이 얽힌 재미난 이야기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이 얽힌 재미난 이야기
 

민대식(1882~?)은 휘문고 설립자인 민영휘(1852~1935)의 서자로서 차남으로 기록돼 있으나,
민영휘의 첫번째 부인이 아들이 없어 들였던 양자인 민형식(1875~1947)을 제외하면
사실상 민영휘의 첫째 아들이라고 볼 수 있다.

민대식의 모친은 민영휘의 다섯째 첩인 안유풍으로 민영휘가 만으로 30세 되던 해에 낳은 아들이다.
30
세에 이미 첩을 다섯씩이나 두었던 민영휘.

민대식은 나중에 애비인 민영휘가 가렴주구로 모은 돈으로 세운 동일은행의 두취(은행장)가 된다.
동일은행은 조흥은행이 되고 수년 전에 신한은행과 합병하였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잠시 스쳐 보게된 KBS역사저널 그날이라는 프로에서
일제강점기 모던보이 모던걸이라는 주제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봉자의 노래라는 당대 최고의 가수였다는 채규엽이 부른 노래가 소개되었다.

검색해 보니 카페여급과 의사간의 애절한 사랑 얘기였다.
결국 두 사람은 이승에서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한강에 하루사이로 투신자살한 사건.
당시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사 사건이었다고 한다.

김봉자를 뒤따라간 의사인 노병운의 아내가 카페 여급이었던 김봉자를
용산경찰서에 간통으로 조사를 해달라고 한지 며칠만의 일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이 사건에 대한 검색을 하다 보니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이란 전자책이 검색되었고,
거기에 민대식이 아주 짧게 언급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얘기라고 생각이 되어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짧은 인용글이지만 즐독하기 바란다.

김봉자는 노모와 딸을 데리고 경성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경성으로 온 김봉자는 처음에는 모 병원의 간호부로 취직했으나,
신입 간호부가 받는 낮은 월급으로는 세 식구의 생계를 꾸려가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갸름한 얼굴에 매력적인 큰 눈을 가진 김봉자는
여급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게 됐다.
시골에서 평범하게 자란 여성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내볼 일이었다.

하지만 생활은 쪼들려가고 간호부일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하던 그녀는
 마침내 내 마음 하나이지 직업이 무슨 상관이야하는 마음으로 여급생활에 뛰어들게 됐다.

처음에는 스타라는 카페에 들어갔다가 곧 태평양카페로 옮겼는데
처음 경험해 보는 낯선 세계에서의 생활이 익숙할 리 없었다.

 

-      중략

 

시간이 지나 여급 생활에 익숙해 졌을 무렵, 태평양카페가 문을 닫자 옮겨간 곳이 카페 엔젤이었다.
종로2가에 위치한 유명한 카페 중 하나였던 엔젤은 1,2층은 홀로 사용했고
 3층은 15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연회장을 갖춘 대형 카페였다.

커다란 규모에 걸맞게 여급만 해도 70~80명이 있었으며
동일은행의 은행장 민대식의 일본인 아내가 운영한다 하여 화제가 된 카페였다.

김봉자는 이곳에서 일하던 중 1933년 봄 이곳으로 놀러온 청년의사 노병윤을 만나게 된다.

 

-      후략

 

민대식(1882~?)은 휘문고 이사장이었던 민병도(1916~2006)의 생부이다.
민병도는 제일은행과 한국은행 총재를 했다.

위에 인용한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의 내용이 맞다면,
민병도의 어미가 일본인이라는 말이 된다.
아니라면 카페 엔젤을 운영한 민대식의 일본인 아내는
민병도의 어미가 아닌 또 다른 일본인 첩이라는 얘기가 된다.

어찌됐든 공식적으로 ~~마마라는 호칭을 가진 첩실을 다섯씩이나 두었던 민영휘이고 보면
일본인 아내라는 카페 엔젤의 주인은 민대식의 일본인 첩실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민영휘의 애비였던 민대식의 할애비 때부터 가렴주구로 농민들의 농토를 탈취하여
1930년대 조선최고의 갑부로 등극한 민영휘 집안의 실질적인 장자였던 민대식.
그는 나중에 민영휘가 죽고 나자 민영휘가 양자로 들였던 선비풍의 민형식과
재산다툼을 벌이게 되고 결국 재산을 다 움켜쥐게 된다.

이런저런 전후사정으로 보아 카페 엔젤의 여주인이었던 일본인 아내라는 사람은
민대식의 일본인 첩실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누가 자신의 본처를 내세워 물장사를 시키겠는가?
민대식이 동일은행의 은행장이었는데 가당찮은 일이다.

당시의 카페라는 곳이 요릿집이나 기생집에 비해
반값으로 에로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는데
일본인 첩실이 운영하는 에로서비스 카페가 잘 어울리지 않는가?

호색한이었던 민영휘의 다섯번째 첩실인 안유풍의 장자로 태어나
애비인 민영휘가 세우고 물려준 동일은행의 두취(은행장)를 하면서
일본인 아내인지 첩실을 앞장세워 에로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 엔젤을 운영했던 민대식.
재물 욕심이 많았고 호색한이었던 민영휘의 아들답다는 생각이 든다.
부전자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요즘으로 치면 신한은행 은행장이 일본인 세컨드를 앞장세워
클럽 버닝선을 운영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다.
1882년 생인 민대식이 카페 엔젤을 운영했던 이 때가 1933년이니
민대식의 나이 52세 때의 일이다.

조선 최고의 갑부집안이었던 민영휘 가문의 실질적인 장남이었던 민대식.
동일은행 은행장을 하면서 일본인 첩실을 내세워 카페 엔젤을 운영했다니...
참으로 남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카페의 여급이었던 김봉자가 의사였던 유부남 노병운과 불륜에 빠져
하루 사이에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한 정사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이미지


민대식

민대식(閔大植, 1882 ~ ?)은 일제 강점기의 은행가이다.

 

생애

유명한 갑부이며 조선귀족인 민영휘의 소생 중 맏아들로 경성부 출신이다.
본래 군인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20년 민영휘의 뒤를 이어 은행업에 뛰어든 뒤
조선 실업계의 거물로 활동했다.

민대식은 1931년에 호서은행을 합병하여 동일은행을 창설하고 은행장격인 두취가 되었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재계의 동향을 살펴 실무를 통제하는 일은
그의 독무대"였으며 "재계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가 나서서 조정역을 맡아
힘쓰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하여 민대식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 조선신탁회사, 조선맥주주식회사 취체역과
경성전기사회 감사역을 지냈고, 조선금융제도조사위원회 촉탁으로도 활동했다.
1930
년에는 경기도 도평의회에 관선 평의회원으로 들어갔고,
상공회의소 부대표로도 선출되었다.

1920년대부터 동민회, 조선불교단 등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조선공로자명감》에 실린 인물평에 따르면 소극적인 은행가가 아닌 용맹심을 갖춘
분투가, 정력가로 묘사되어 있어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아버지의 재산을 많이 물려받고도 장례를 초라하게 치러
손가락질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광복 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발효되었을 때 생존해 있어 반민특위의 조사 대상자였으나,
반민특위 활동이 방해를 받으면서 무혐의 판정이 내려져 처벌은 받지 않았다.

 

사후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경제 부문에 선정되었고, 곧이어 최종명단에도 등재되었다.
다만 요절한 동생인 민천식 및 민천식의 양자 민병도는 무혐의로 등재에서 제외되었다.
민병도는 가업을 이어 은행업에 종사하여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한편, 1937년에 강원도 춘천부 동면에서는 면민들이 성금을 모아 민형식과 민대식,
민규식 형제의 송덕비를 세웠으며, 2008년에 친일 행적 논란으로 비석이 철거되었다.

 

 

동일은행 조흥은행

조흥은행(朝興銀行, Chohung Bank) 1897 2월 한성은행(漢城銀行)으로 설립되어
2006
4월 신한은행과 합병하였다. 옛 조흥은행 삼각동 본점은
현재 신한은행 광교영업부로 이용 중이다.

대한민국 독립 이후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어 있다.
또한 코스피시장 제 1호 상장 기업으로 종목코드가 가장 빠른 000010번이었다.

 

연혁

1897: 한성은행 설립

1903: 본점을 종로구 안국동으로 이전

1905: 본점을 중구 다동으로 이전

1912: 본점을 삼각동으로 이전

1943: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이 합병하여 조흥은행 출범

1956: 증권거래소 상장

1966: 중구 삼각동 본점 신축

1979: 국내 최초 ATM 도입

1982: 신용카드 업무 개시

1985: 조흥은행 CIP 도입

1995: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인증서 수여

1997: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흥금융박물관 개관

1999 4: 충북은행 흡수합병

1999 9: 강원은행 흡수합병

2003 9: 신한금융지주회사 자회사 편입

2004 7: 증권거래소 상장폐지

2006 4: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이 합병하여 통합 신한은행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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