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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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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코 하루미(일본어: 都 はるみ1948 2월 22 ~ ) 일본 엔카 가수이다. 본명은 기타무라 하루미(北村春美).


 1948 일본 교토  교토 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기타무라 하루미(北村春美)이나, 일본의 저널리스트 아리타 요시후(有田芳生)는 자신의 저서 '〈歌屋 都はるみ〉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재일한국인이며, 그녀의 한국 이름은 이춘미(李春美)라고 적고 있다.


교토 시에 있는 라쿠요 종합 고등학교(洛陽合高等)를 다니다가 가수가 되고싶다는 이유로 중퇴하였다1964 《곤란해요 (困ることヨ)》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같은 해 발표한 《앙코동백은 사랑의 꽃(アンコ椿は》이 히트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일본 가요계를 대표하는 대 스타가 되었다.


1984 '보통의 아줌마가 되고싶다.(普通のおばさんになりたい。)'는 말을 남기고 NHK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은퇴하였으나1987 음악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1989 NHK 홍백가합전을 통해 가수로 복귀하여 지금에 이른다.


1984년 은퇴의 실제 이유가 일본 매스컴에 의한 조센징이라는 모욕을 받고 무대를 떠났다는 소문도 많았다고 한다.


NHK 홍백가합전에는 1965부터 1984까지1989부터 1997까지 총 29회 출연했다. 현재 레코드 회사는 콜롬비아 뮤직 엔터테인먼트.


그녀는 독특한 꺾기 창법을 잘 구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그녀의 독특한 꺾기는 여러 연예인에 의해 성대모사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주로 애수(哀愁)가 담긴 곡들을 많이 노래했으며, 이외에도 고향인 교토를 소재로 한 노래들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엔카 이외의 장르의 곡들도 자주 부르기도 한다.


1989에는 일본에서 데뷔한 김연자의 곡을 프로듀싱 하는 등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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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시구레 앨범자켓


 

대표곡인 오사카 시구레


https://www.youtube.com/watch?v=yc9b-fi_nDI


大阪しぐれ/♪(오사카 가을비)


<*>
ひとりで生きてくなんてできないと

히또리데 이끼데쿠난데 데끼나이또
혼자서는 살 수 없어 살아갈 수 없어서


泣いて すがれば ネオンが ネオンがしみる

나이데 스가레바 네온가 네온가 시미루
울면서 매달리니 네온도 네온도 비에 젖는구나.


北の 新地はおもいで ばかり 雨もよう

기타노 신찌와 오모이데 바까리 아메모요우
북쪽의 새로곳은 생각만 날뿐, 비가 오네


夢もぬれますああ大阪しぐれ

유메모누레마스 아아~ 오사카시구레
꿈도 젖는구나 아아 오사카 가을비


<**>
ひとつや ふたつじゃないの ふるきずは

히도쯔야 후다쯔쟈 나이노 후루기즈와
하나 둘이 아니야 오랜 마음의 상처는


うわさ惡木の 堂島堂島すずめ

우와사 나미끼노 도지마 도지마 스즈메
우와사 가로수의 도지마(지명) 도지마 수다꾼


こんなわたしで いいならあげる 何もかも

곤나 와타시데 이이나라 아게루 나니모까모
이런 나이기에 좋다면 드리지요 모든것을


抱いて下さいああ大阪しぐれ

다이떼 구다사이 아아~ 오사카 시구레
안아주세요 아아~ 오사카 시구레


<***>
しあわせ それとも今は 不しあわせ

시아와세 소레도모 이마와 후시아와세
행복해요 아니면 지금은 불행한가요


醉って あなたは曾根崎曾根崎あたり

욧~데 아나따와 소네자키 소네자키 아따리
취한 당신은 소네자끼(지명) 소네자끼 근처에


つくし 足りない わたしが 惡い あのひとを

쯔꾸시 다리나이 와타시가 와루이 아노히또오
잘 받들지 못한 내가 나빠요 그 사람을


雨よ口してああ大阪しぐれ

아메요 가에시떼 아아~ 오사카 시구레
비야 돌려다오 아아 오사카 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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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

2009 12 1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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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수는 이미 돌아가신 나의 외조부가 더 좋아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그녀의 테이프를 구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미소라 히바리가 아니라 미야코 하루미의 테이프, 라고 했을 때 다소 의아했다.


사실, 이 가수의 어디가 좋은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그야말로 영판 일본 노래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애교가 철철 넘치고 또 "오사카의 봄비"를 부를 때 아~,   ~앙으로 발음하는 부분에서는 교성(실례)을 연상하게 한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끊어질듯 이어지는, 그리고 잦아들다가 다시 서서히 일어서면서 감정을 폭발하는가 했더니 그대로 삼키는, 그야말로 애간장을 녹이는 음색과 창법이었다간드러지는, 감정이 섬세한 일본 대중 가요 특유의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일본 대중가요만이 감정이 풍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감정의 표현 방법이 다를 뿐그네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슬프고 기쁘고 또 분노한다.


아무튼나는 미야코 하루미가 그런 구닥다리, 영감들이나 좋아하는 일제시대의 음악, 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82년 가을, 히타치제작소(티브이 생산)가 공장(치바, 였다고 기억한다)을 개방하는 날, 마침 미야코 하루미가 초대되어 왔다. 나는 그때 그녀가 차에서 내려 무대가 있는 체육관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20대 초반 쯤으로 보였다(그녀는 1948년 생이니 그 때 34세였다. 연예인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아맞히면, 당신은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도 알아맞힐 것이다).


집에서 입고 있을 것 같은 타월 질감의 빨간 원피스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목이 깊게 패어져 있어서, 차에서 내릴 때, 가슴 부근이 잠깐 보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그것 보다는 다음 순간이 더  극적이었다. 아주 잠깐, 거의 찰라와같은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의 교환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길이 내 눈에 멎었다가 지나갔다순간, 내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수의 노래를 눈앞에서 직접 듣는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그날 그녀의 노래에 그만 반해 버렸다. 나와 눈길을 교환했다는 것도 이유였을 것이지만정말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후, 티브이에 그녀가 출연하면 숟가락(일본에서는 젖가락)을 멈추고 교주의 성례를 받는 신자처럼 굳어진다. 그녀의 많은 노래 가운데에서도 특히 이 노래 "키타노 야도北の宿(추운 고장에서, 쯤으로 이해하면 어떨까)"는 정말 가슴을 찡하게 하는 노래였다.


北の宿 추운 고장에서

作詩:阿久悠 作曲:小林

https://www.youtube.com/watch?v=d0GnR7EZlvY


1)

あなた  変わりは  ないですか
아나타 카와리와 나이데스카
당신, 별고 없나요? 
       
日每  寒さが  つのります
히고토 사무사가 쯔노리마스
매일 추위가 점점 심해져
     
着ては  もらえぬ  
키테와 모라에누 세-타-오
입어주지도 않을 스웨터를
    
寒さ こらえて  編んでます
사무사 코라에테 안데마스
추위를 참으며 짜고 있어요
    
女ごころの  未練でしょう 
온나고코로노 미렌데쇼-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죠 
    
あなた  こいしい  北の宿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당신이 그리운 북녘의 숙소예요
     

  

2)

吹雪まじりに  汽車の音
후부키마지리니 키샤노오토
눈보라 속의 기차 소리
     
すすり泣くよに  きこえます
스스리나쿠요니 키코에마스
흐느껴 우는 듯이 들려오네요
   
お酒  ならべて  ただ  ひとり   
오사케 나라베테 타다 히토리    
술잔을 나란히 놓고 그저 홀로   
     
淚  唄など  歌います
나미다 우타나도 우타이마스
눈물의 노래나 부르고 있어요
     
女ごころの  未練でしょう
온나고코로노 미렌데쇼-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죠
   
あなた  こいしい  北の宿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당신이 그리운 북녘의 숙소예요

  

    

3)

あなた  死んでも  いいですか  
아나타 신데모 이이데스카  
당신, 내가 죽어도 좋은가요? 
     
胸が  しんしん  泣いてます
무네가 신신 나이테마스
가슴이 저리도록 울고 있어요
     
窓に うつして  寢化粧を   
마도니 우쯔시테 네게쇼-오   
창문에 보면서 밤 화장을
  
しても  心は  晴れません
시테모 코코로와 하레마셍
했는데도 마음은 밝아지지 않아요
     
女ごころの  未練でしょう
온나고코로노 미렌데쇼-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죠
  
あなた  こいしい  北の宿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당신이 그리운 북녘의 숙소예요



특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면서 "창 거울로 화장을 지워도 마음은 무겁습니다.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지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라고 노래할 때 그녀는 정말 아오모리, 홋카이도 같은 북쪽 고장에서 추운 겨울을 혼자 보내는 여자처럼 처연하게 보였다.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일본 생활에 약간 쓸쓸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내게도 이런 여자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 까. 나를 기다리는 여자, 이런 로맨틱한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을 잘 하는 탓에 그런 허망한 기대를 그녀에 노래에서 대리 만족을 했을 것이다.


1984년 그녀는 느닷없이 은퇴를 한다. "보통 아줌마로 되돌아가겠습니다"하고는 티브에서 사라졌다. 물론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 환영, 환영, 번복 따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 그녀의 노래는 약간 이상하다. 노래의 끝 무렵에 반음이 올라가는 샾, 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이 불안하다. 나이 탓인가그래도 괞찬다. 노래를 들려주는 것,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


참고로, 이 노래는 1976년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다. 그 때 일본에서는 아버지가 한국인인 미야코 하루미가 이 상을 받아서는 안된다, 일본인을 위한 레코드 대상이니까, 하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수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낙담한 그녀를 위로한 것이 유명한 미소라 히바리(그녀도 한국계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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