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마곡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 여러 시대의 불교 유산이 있는 곳, 마곡사 *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801)·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802)· 영산전(보물 800)·사천왕문·해탈문(解脫門) 등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사보(寺寶)로는 5층 석탑(보물 799)·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62),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20)가 있고,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270)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이 있다.
금물이나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들이 지금도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후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이기도 하다.
이 절과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일대가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병화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마곡사: 심검당 벽위의 현판
* 마곡사의 역사 *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 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가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태화산마곡사: 심검당 벽위의 현판
.jpg) 해탈문 --> 천왕문 --> 대광보전 --> 대웅보전이 1자로 이어지는 구조
 마곡사는 정남향이 아닌 서쪽으로 약간 틀어진 남서향으로 앉은 절집이다



 5월21일 이동경로: 마곡사 -> 무령왕릉 -> 공산성 -> 황새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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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태화산마곡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
 마곡사는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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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문 가는 길 왼쪽의 흥성루

 마곡사의 불이문인 해탈문 - 팔작지붕이다
 해탈문을 지나 두번째 문인 천왕문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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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의 두번째 문인 천왕문을 지나면...
 극락교가 나온다
 마곡사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인 극락교
 극락교를 건너가면 바로 우측에 범종루가 있다
 범종루

.jpg) 범종루를 지나고...
.jpg) 왼쪽으로 들어서면 응진전과 백범당이 나온다
 왼쪽이 응진전, 소박한 건물이 백범당, 그리고 그 옆에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
 응진전
 마곡사는 백범 김구선생이 피신해 있었던 곳이다.
.jpg) 백범당 툇마루
 민족주의자였던 김구는 안두희의 흉탄에 암살되었다. 뒤에는 누가 있었을까?

 백범당 옆에 김구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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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찰 마곡사와 백범 김구와의 인연
1896년 2월 하순, 울분에 찬 21살 김구는 황해도 치하포에서 마주친 일본인 육군중위 츠치다 죠스케(土田讓亮)를 난도질, 잔인하게 죽였다. 그리고 그의 피를 움켜 마시고 시신은 강에 버렸다. 국모 민비 시해에 대한 ‘일본인 보복 살인’이었다.
도망은 커녕 “해주에 사는 김창수(김구의 옛이름)가 죽였노라” 방을 붙이고 집으로 돌아와 잡으러 오길 기다리다 석달만에 해주 옥에 갇혔다. 다시 두달 후 인천으로 이수돼 사형집행일을 받았다.
이제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김구, 이승에서의 마지막 초침이 ‘째깍째깍’거리던 순간 덕수궁에서 고종이 긴급 ‘사형집행정지’ 명령을 내린다.
운명의 여신은 김구 편에 섰다. 형장에 불려가기 직전 드라마 같은 두가지 운명의 여신이 그를 살렸다.
첫째는 고종의 사형 재가가 떨어진 직후 한 승지(承旨)가 기적 처럼 김구의 죄명이 단순 살인죄가 아닌 ‘국모보수(國母報讎ㆍ국모시해 앙갚음)’임을 발견하고 임금에게 다시 아뢰어 ‘사형집행 정지’ 결정이 내려진 것. 승지 눈에 이 네 글자가 안 띄었으면 그대로 이슬처럼 사라질 찰나였다.
둘째,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으므로 파발을 띄워도 한발 늦었을 법, 때마침 사흘 전에 개통된 서울~인천 간 전화가 그를 살렸다. 덕수궁에서 긴급전화로 ‘사형집행 정지’를 타전해 온 것.(백범일지)
그러나 사형만 면했지 풀려나진 못했다. 그렇다고 마냥 대책없이 감옥생활 할 김구가 아니었다. 바닥 마루를 뚫고 드디어 영화와 같은 ‘쇼생크 탈출’에 성공한다. 몰래 숨어 삼남지방을 정처없이 돌다 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에 몸을 맡겼다. 이곳은 숨어살기 좋은 곳으로 선조들이 지목했던 땅이기도 했다.
마곡사에 온 김구는 스님의 권유로 승려가 될 결심을 하고 ‘눈물의 삭발식’을 갖는다. 사찰을 안고 흐르는 태화천 옆 바위에 앉아 머리를 잘랐다. 상투가 잘려 나갈 때 자신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제(師第) 호덕삼(扈德三)이 머리털을 깎는 칼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에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고 술회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원종으로 불렸다. 불교에 귀의해 반년을 이곳에서 중 생활하다 스님께 금강산으로 들어가겠다며 떠났다.
그러나 그가 간 곳은 평양이었고, 절을 뿌리치고 나와 전국을 돌다 중국으로 건너가 조국 광복운동을 한다.
그리고 해방을 맞아 48년만(1946년)에 다시 마곡사를 찾은 김구, 대광보전 기둥에 적힌 주련(柱聯)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 물러나와 세상 일을 돌아보니, 모두가 마치 꿈 속의 일과 같다)’라는 글을 보고 옛 생각에 접어든다.
그는 “그때 무심히 보았던 이 글귀가 오늘 자세히 보니 나를 두고 이른 말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뜰에 무궁화와 향나무를 기념식수하고 떠난다. 이때 김구는 주석에 이어 비상국민회 총리 신분이었다.
천년고찰 마곡사와 백범 김구 선생과의 인연이다. 구한말,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스무살 청년의 애환을 지켜본 사찰이다.
마곡사는 이 보다 400년 앞서 또 한 사람이 숨어 들어왔다.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폐위하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은신했다. 세조가 벼슬을 내리며 설득했지만 응하지 않자 한양에서 가마를 타고 직접 찾아온다.
김시습은 황급히 부여 무량사로 피신했다. 세조는 여기까지 와서도 헛걸음을 하게 되자 한탄해 하며 “신하 하나 못 얻는 내가 어찌 가마를 타고 돌아가랴” 하고는 타고 온 가마를 두고 떠났다. 그 가마는 마곡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극락교 대신 징검다리를 이용해 내를 건널 수도 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주불전 대광보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

.jpg)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은 해탈문, 천왕문을 거쳐 남북으로 거의 일직선상에 위치한다
.jpg) 앞쪽에 대광보전과 뒤쪽에 대웅보전이 아래 위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대광보전 앞에 남아있는 당간지주가 제법 크다.
 마곡사의 주불전인 대광보전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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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대광보전 현판...단청이 퇴색되었다
 대광보전 현판
 대광보전의 퇴색된 단청
.jpg) 대광보전의 처마장식
 고색창연한 마곡사 대광보전의 단청
 대광보전의 문창살
 대광보전 내부
 대광보전 대들보
 대들보 위의 천정에 그려진 연화문 단청이 아름답다
 비로자나불이 90도 틀어진 자세로 모셔져 있다. 동쪽을 향해 앉아있다.
 예불하는 스님과 신도들
 대광보전 바닥의 참나무 돗자리
 대광보전의 주불 비로자나불(법신불)
 대광보전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 -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
 대광보전의 후불탱화 - 영산회상도
 비로자나불 좌측 벽면의 탱화
 또 다른 벽면의 탱화
 불단에 그려진 무늬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대광보전 안의 또 다른 탱화 - 관세음보살도
.jpg) 비로자나불 맞은 편 벽에 그려진 불화들
 마당에는 오층석탑과 제법 큰 당간지주 2개가 서 있다
 대광보전 앞뜰...마주 보이는 건물이 요사채인 심검당
.jpg) 심검당이 바라다 보이는 쪽에서...
.jpg) 대광보전 전면에는 모두 6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마다 주련이 달려있다
 맨 오른쪽의 주련
 여섯개의 주련 내용
 마곡사 대광보전 정면도
 마곡사 대광보전 배면도
.jpg) 오층석탑 뒷쪽(동쪽)의 건물이 스님들 요사채인 심검당
 가을의 대광보전과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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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광보전 앞의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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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단의 가장자리가 깨져 나갔다
 5층석탑의 꼭대기 부분 장식
 마곡사 대광보전 앞의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양식의 날렵한 탑이다.
 대광보전 뒤쪽...견고하게 쌓은 축대 위로 대웅보전이 올려다 보인다
 대광보전 외부의 벽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협시불이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이다.
.jpg) 날렵한 모습의 대웅보전
 마곡사의 대표불전의 하나인 대웅보전: 중충구조로 지어졌다
 대웅전은 협시보살이 문수, 보현인데...대웅보전은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협시불이다!
 대웅보전의 바깥공포와 다소 빛바랜 처마의 단청...서까래와 부연이 날렵하다
 대웅보전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jpg) 다단계 축대 위에 중층으로 지어진 대웅보전...불전 안쪽은 단층이다.
 대웅보전 올라가는 길
 대광보전 뒤쪽 계단식 축대 위에 우뚝 솟아있는 대웅보전
 날아갈듯한 대웅보전의 자태
.jpg) 대광보전 처마 뒤로 보이는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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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의 대웅보전 모습
 중층의 대웅보전 전면에도 여섯개의 기둥마다 주련이 달려있다
 대웅보전 현판 -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대웅보전 안의 삼존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대웅전은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대웅보전은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이 협시불이다.
 소박한 모습의 대웅보전의 천정
 대웅보전 안의 대들보와 공포
 마곡사 대웅보전 안에는 싸리나무로 된 4개의 기둥이 서 있는데...
 이 기둥을 붙잡고 돌면 아들을 낳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한다고 한다. 기둥이 반질반질하다.
 부처님 믿으시는 분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쯤 붙잡고 돌아 보시기를...^^*
 아래쪽의 요사채에서 올려다 보이는 대웅보전

.jpg) 대광보전 뒤로 쌓은 단 위로 높게 올라앉은 대웅보전
[그 밖의 전각들]
.jpg) 영산전

 영산전의 귀공포
.jpg) 영산전 안에 설치된 불상들
 반대쪽에서 본 영산전 내부의 불상들
 정면에서 본 영산전 불상들
 명부전
 단풍이 흐드러진 명부전
 가을의 명부전 앞뜰...


.jpg) 스님들의 요사채인 심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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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검당 뒷편
 심검당 옆의 2층으로 된 창고인 고방
 고방으로 오르는 사다리...티베트의 사다리를 닮았다
 대웅보전 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고방과 심검당
 기왓장과 진흙으로 만든 굴뚝

[마곡사의 가을단풍]
마곡사는 원래 가을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을이면 전국에서 사진을 찍으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명부전
 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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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가을의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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