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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三國志에 등장하는 인물연표 외...

三國志에 등장하는 인물연표

춘추전국시대를 빛낸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맹자(孟子)는 역사를 일러 ‘일치일란(一治一亂)의 반복’이라 정의했고, 나관중 또한 “여럿으로 쪼개진 것은 언젠가 하나로 합쳐지고, 그렇게 합쳐진 것은 언젠가 다시 여럿으로 쪼개진다(分久必合 合久必分)”라는 멋진 말로 ‘삼국지연의’를 시작했다.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는 맹자의 말처럼 진시황에 의해 수습되어 진(秦)이라는 사상 초유의 통일 제국이 탄생했다. 진은 단명했으나 곧 한(漢)이라는 거대 제국에 의해 400년 가까이 지속됐다. 그러던 것이 184년에 일어난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광대한 중국 천하를 놓고 군웅들이 다시 한번 쟁탈전을 벌이는 분열의 시대로 빠져들었다. 삼국지는 이때부터 약 1세기에 걸친 혼란의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삼국시대는 그러므로 분열의 시대였다. 사회를 움직이는 어떤 고정된 잣대나 가치,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선 난세이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높은 학식이나 지체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힘깨나 쓸 수가 있었지만, 기존의 가치체계가 송두리째 무너진 난세에선 그것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삼국시대는 야망의 시대였다. 기존의 틀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야심가들이 너도나도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힘 겨루기에 달려들었다. 심판도, 룰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라 하찮은 필부도 운만 좋으면 왕후장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야망의 시대, 자유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인재 또한 둑이 터진 듯 한꺼번에 콸콸 쏟아져 나왔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그 다양한 인물의 면면을 보라.


삼국의 한 축을 이루었던 조조(曹操)와 유비, 손권(孫權)을 비롯하여, 청류와 탁류가 싸우는 통에 어부지리로 얻은 권력을 오로지하다 그만 폭군의 대명사가 돼버린 동탁(董卓), 뛰어난 무예로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다 결국 주군 동탁까지 죽여버린 여포(呂布), 연환계(連環計)로 동탁과 여포를 동시에 괴멸시킨 후한의 사도(司徒) 왕윤(王允)과 그때 미끼가 되기로 자청한 미인 초선(貂蟬), 반(反)동탁군의 대장으로 한때 북방을 주름잡았던 원소, 원소와 자웅을 겨루고자 한 원소의 이복형제 원술(袁術), 유비와 동문수학하고 북방에서 원소와 패권을 다투다 쓰러진 공손찬(孔孫璨), 형주 자사로 한때 유비를 도와준 유표(劉表), 명의 화타(華陀) 등을 우선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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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등장인물 연표

《삼국지》의 총 등장인물의 수는 1,233명이다.

155년 - 조조 탄생. 
삼국지의 주인공들중 한명인 조조의 탄생. 아버지인 조숭이 중상시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조씨 성을 얻었기 때문에 본래의 성씨는 '하후'씨라고 하는 견해도 있으나,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모두가 조조의 사촌형제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조등과 조숭이 인척관계를 맺은것은 그보다 윗대의 일로 여겨진다.


156년 - 손견 탄생. 
삼국지의 주인공들중 한명인 손견의 탄생. 청소년 시절부터 집 근처의 강가를 수하들과 돌아다니면서 수적들을 없애는 등 자경단으로서 활약했다고 한다.


159년 - 환제가 양기를 모살 
양기는 당시 세력을 잡고 있었던 대장군이었다. 양기와 그 일족이 돈을 받고 벼슬을 파는등의 횡포가 너무나 심하여 가까이에 있던 환관들의 힘을 빌려 양기를 주살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이는 후일 '십상시의 난'을 불러오게 된다.


161년 - 유비 탄생. 
삼국지의 주인공들중 한명인 유비의 탄생. 후한 제3대 황제인 경제의 자손을 칭하였으나 유비의 할아버지대 부터 탁군에서 어렵게 살았다는 것을 볼때 황족이기는 했어도 기득권층에는 속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는 그 후손이 워낙 많아 이미 그때 당시에도 진위여부를 가리기는 어려운 편이었다.


162년 - 관우 탄생. 
후세에 이르기까지 민간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관성제군의 탄생. 본래는 하동현 해량 출신으로 고향에서는 소금밀매업자들의 뒤를 봐주며(당시 소금은 국가의 전매품이었다) 생활하다가 수배령이 내려지자 탁군으로 피신하여 유비와 교분을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정사상에 의형제였다는 기록은 없다.


167년 - 장비 탄생. 
민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호걸 장비의 탄생. 본시 삼국지가 기전체 소설로 정형화 되기 전, 송·원대의 삼국지를 주제로 한 잡극에서 주인공은 항상 장비가 맡았을 정도이다. 유비와는 동향이지만 조상들의 영지인 '연'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해서 소설상에서는 '연인 장비'라고 자칭하는 장면이 많다.


175년 - 손책, 주유 탄생. 
181년 - 제갈량, 헌제 탄생. 
182년 - 손권 탄생. 
184년 - 황건적의 난 발발. 도원결의. 
점점 가속화 되어가는 매관매직, 가혹한 수탈과 십상시의 횡포로 인해 피폐해져 있던 백성들과, 그러한 백성들의 심리를 이용한 종교결사 '태평도'의 교주인 장각이 일으킨 것으로서, 규모로는 후한최대의 농민봉기라고 일컬어진다. 그 수는 약 50만명에 달하였으며 세력범위도 무려 6개주에 달하여 지방의 군 세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남으로서 중국대륙에서 은거하고 있던 영웅들이 일제히 일어나니, 이것은 바로 삼국지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189년 - 후한 영제의 사망. 십상시의 난. 
영제가 사망하고 장양을 필두로 한 십상시들에 의해, 조정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청류파 인사들과 대장군 하진이 숙청되거나 살해된다.


190년 - 반동탁 연합군 결성. 한 왕조, 동탁에 의해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 
황건적의 난 당시 서량에서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던 동탁이 십상시의 난으로 인해 혼란한 황도에 쳐들어와 권력을 잡고, 형주자사 정원을 살해한 다음 스스로 상국의 자리에 앉는다. 이때 동탁이 끌고온 양주군사들의 횡포와 동탁의 농권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또다시 도탄에 빠지자 원소를 필두로 한 18로 군벌들이 대항하여 반동탁 연합을 결성하여 대항하지만, 종국은 제후들끼리의 내분으로 어이없이 와해되고만다.


192년 - 연환지계. 여포, 동탁을 살해. 
동탁의 시녀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여포는 이를 동탁에게 들킬까봐 매우 두려워하였고, 동탁은 동탁대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여포에게 화극을 던지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 이에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던 두사람의 사이를 사도 왕윤이 이간질함으로서 여포는 동탁을 황궁에서 주살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200년 - 관도 대전. 
조조와 원소. 양웅이 맞붙게 된 삼국지 최초의 대규모 전투. 조조는 병력과 사기 양면에서 열세였으나 곽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원소를 창정에서 대파한다. 원소는 도주하던 도중 죽어버리고 후계자 선정에서 범한 실책으로 인하여 원씨 일족은 분열, 결국 하북도 조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207년 - 삼고초려. 
조조에게 쫒기고 쫒겨 신야성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는, 선복이란 이름을 쓰고 있던 서서에게 와룡 제갈량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초막을 세번 찾아간다. 완전히 수세에 몰려 있었던 유비는 특유의 인내심으로 제갈량의 마음을 움직여, 마침내 제갈량도 그를 따르게 된다. 유비의 휘하에 들어온 직후 제갈량은 조인과 하후돈의 군사를 대파하여 내심 자신을 시기하던 관우와 장비도 굴복시킨다.


208년 - 적벽 대전. 
드디어 천하통일의 기치를 걸고 85만 병력으로 남하를 개시하는 조조군. 이에 대항할 수단이 없던 유비는 휘하장수와 백성들을 데리고 피신하지만 당양 장판벌에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장비와 조운의 활약에 힘입어 간신히 몸을 피하던 도중 유기에게 군사를 빌려온 관우에게 구함을 받고, 제갈량은 유비를 위해 오나라로 가서 동맹을 체결한다. 적벽에서 벌어진 이 싸움은 오나라 총사령관 주유의 지략과 제갈량이 부른 남동풍으로 동맹군의 대승으로 끝나고, 조조는 도망치던 도중 화용도에서 관우와 조우하나, 조조는 지난날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갈때 일을 상기시켜 목숨을 건진다. 관우는 이 일로 인하여 제갈량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게 된다.


219년 - 유비의 한중왕 등극. 관우의 사망. 
서촉 41주를 취한 뒤, 조조와의 한중쟁탈전에서 위장 하후연을 쓰러뜨리는 등 선전한 유비는 마침내 신하 120여명의 주창으로 한중왕에 등극하고, 이에 발끈한 조조는 대군을 일으키려 하나 사마의의 만류로 오와 동맹을 맺는다. 주유와 노숙의 뒤를 이은 명장 여몽은 형주를 수비하던 관우와 일진일퇴를 벌이면서 기습을 성공시키고, 마침내 맥성에서 관우 부자를 붙잡아 참수시킨다. 분노한 유비는 관우의 복수전을 벌이려 하지만 제갈량과 조운의 만류로 단념하고 정세를 살피는데 주력한다.


220년 - 조조의 사망. 후한의 멸망. 위나라의 성립.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불렸던 조조도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장무 3년 4월. 천하를 종횡하며 제후들의 중심에 있었던 조조는 끝내 사망하고, 장남인 조비가 유지를 이어 조조의 뒤를 잇는다. 조비는 선양의 형식으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고 위황제에 즉위, 고조 유방으로부터 400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한나라는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221년 - 촉한 성립. 
쓰러져가는 한왕조를 재건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한다. 오랫동안 유비를 지배해 왔던 이념의 주체인 한나라가 멸망하자, 유비는 관우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더불어 격심한 허탈감에 빠진다. 실의에 빠져있던 유비에게 제갈량은 '이제 한왕조의 정통을 이을자는 오직 주공만이 계실뿐'이라 주장하고, 마침내 유비는 마음을 굳혀 촉한의 초대황제에 등극한다. 누상촌의 돗자리 장수가 제위에 오름으로서, 하늘에 두개의 태양은 없다는 법칙이 깨어진 것이다.


222년 - 이릉 전투. 
승상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5만의 대병력을 일으켜 관우의 복수전을 개시하는 유비. 그러나 합류하기로 되어있던 장비가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범인인 장달과 범강이 장비의 목을 가지고 오나라로 도주하자 유비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관우와 장비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의 활약에 힘입어 초반 선전하는 유비군이었지만, 여몽의 사후 뒤를 이은 백면서생 육손의 화계에 의해 이릉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유비는 백제성으로 패주한다.


223년 - 유비의 사망. 제갈량의 남만 정벌. 
관우와 장비를 잃고, 그 복수전에서도 어이없게 패배한 유비. 아무것도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에게도 죽음은 찾아왔다. 유비는 백제성을 영안궁이라 이름짓고 그곳에 머물다가 제갈량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사망한다. 안팎으로 무거운 짐을 맡게 된 제갈량은 계속해서 난을 일으키고 있던 맹획을 정벌하기 위해 출진한다. 수많은 고초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며, 계책과 귀모를 다한 공명은 마침내 맹획을 일곱번 붙잡아 일곱번 놓아줌으로서 그의 진정한 항복을 받아내고 남만에서 귀환한다.


227년 - 출사표. 제갈량의 북벌 시작. 
유비의 사후 촉을 지탱하고 있던 공명에게 한가지 소식이 날아드니, 그것은 사마의가 자청해서 양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사마의의 군비증강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면 촉의 천하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제갈량은 마량의 동생 마속을 시켜서 사마의를 실각시키고, 촉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승상부에 틀어박혀 하나의 상소문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신 량 아뢰나이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출사표' 였다.

229년 - 손권이 황제가 됨. 오나라 성립. 
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이끄는 촉군과 조진이 이끄는 위군은 일진일퇴를 한 끝에 촉의 승리로 끝나지만, 국가적 존망의 위기를 감지한 위황제 조예는 사마의를 다시 불러들인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정면으로 대결하게 되자 양쪽이 혼란한 틈을 타서 손권도 대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황룡이라 하며 오를 세움으로서 완전한 삼국정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234년 - 오장원 전투. 제갈량의 사망.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견도 역사의 무대에서 죽거나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 234년, 제갈량은 오장원으로 진출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보낸 그의 건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마지막 수단으로 하늘에 기도하여 수명을 늘리는 술법을 행하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간다.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에서 촉을 지탱하던 거대한 대들보는 마침내 쓰러지고, 사마의는 최후의 순간에 승리를 거두고 위로 돌아간다.


263년 - 촉나라 멸망. 
근 50여년간에 걸쳐서 삼국으로 대립하고 있던 중국대륙에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위에서는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병권을 모두 장악함으로서 사마씨 일족의 시대가 도래했고 촉 역시 제갈량의 사후 강유 혼자서 겨우 지탱해 나가던 상태였다. 촉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안 사마의의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는 등애와 종회 두 장군을 보내어 촉을 토벌케하고, 일반적인 행군로를 벗어나 산악지대로 행군한 등애는 마침내 승리한다. 이로서 촉은 2대 황제 유선을 끝으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한왕조 부흥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65년 - 위나라 멸망. 진나라(서진)의 성립. 
역사는 되풀이된다. 일찌기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의 형식으로 제위를 물려받은 것처럼, 위의 마지막 황제 조방도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에게 제위를 선양하고 물러나니, 이것이 바로 신왕조 진나라의 탄생이었다.


280년 - 오나라 멸망. 삼국 통일.






중국을 삼분


유방(고조)이 건립한 한()제국(기원전202)은 고조로부터 평제까지 총 11명의 황제( 211)를 거쳐 왕망에게 찬탈 당했는데(기원후 8) 이 시기를 역사상 서한 또는 전한이라 부른다. 왕망이 건립한 신()나라는 18년 후 한 종실인 유수(광무제)에 의해 멸망되고 다시 한실의 정권이 수립된다. 이를 역사상 동한 또는 후한이라 하며, 196년 동안 13명의 황제가 있었고, 헌제에 이르러 멸망하였다(기원후 220).


전한과 후한을 비교하면, 권력의 흥망성쇠 과정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한시대 전기는 중국 역사상 매우 강성했는데 특히 한 무제 때에 이르러 절정에 달해 멀리 돈황 지역까지 점령했다. 후한은 초창기에 일시적으로 강성함을 유지했지만 곧바로 통일정부의 쇠퇴기로 들어섰다.


후한 왕실의 쇠망 요인은 황제 자신과 그를 둘러싼 외척과 환관의 권력투쟁 때문이다. 후한의 황제들은 대체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요절하거나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 왕이 자손을 남기지 못해 자신의 직계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은 방계 혈족 내에서 황제를 옹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어린 나이의 가까운 황족이 황제로 추대되기 마련인데, 대체로 선황제의 황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황태후의 외척이 득세하고 여기에 환관이 가세하여 어린 황제로 하여금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어린 황제가 장성하여 태후의 수렴청정을 끝내고 친정할 때가 되면 환관들이 똘똘 뭉쳐 자신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기 일쑤였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후한의 황제들은 오직 외척과 환관 사이에서 자신의 안위에만 신경을 쓸 뿐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것이 후한 통일제국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이다.


정통 역사적 분류에 의하면 삼국시대는 조조(曹操, 155∼220)의 아들인 조비(曹丕, 187∼226)가 황제를 지칭할 때부터 진입한다. 즉 한의 헌제(獻帝, 181∼234) 건안 25, 곧 위 문제 황초원년(기원후 220)으로 그 다음해에 유비(劉備, 161∼223)가 황제에 올랐으며(221), 손권(孫權, 182∼252)이 정식적으로 황위에 오른 것은 더욱 늦다(229). 삼국시대의 법통은 이때부터라는 것이 옳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삼국지』는 후한 말기 영제(靈帝, 156∼189)가 등극하는 168년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환제가 환관에 의해 살해된 후 영제가 등극했을 때 외척 하진(何進, ?∼189)이 대장군이 되었는데 이 때 마침 황건적이 반란을 일으킨다. 외척 하진이 정치에 관여하는 환관들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환관에게 살해되면서 후한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고 만다. 이 혼란기에 원소(袁紹, ?∼202), 동탁(董卓, ?∼192)을 거쳐 조조, 유비, 손권이 중국 패권을 걸고 혈투를 벌인다. 결국 조조의 아들 조비, 유비, 손권이 후한을 세 나라로 분리하여 통치하면서 후한은 멸망하고 삼국시대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자들에 따라 삼국시대를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는 184, 또는 헌제 초평 원년(190)부터 진 무제 태강 원년(280)로 간주하기도 한다. 184년도 많이 인정되는데 이때는 조조의 나이 30, 손견(孫堅, 155∼192) 27, 유비 24세로 이들이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중국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이때를 출발로 삼았으므로 총 97년간의 일이다. 『삼국지』의 주제가 되는 삼국시대는 『삼국지』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삼국시대의 중심인물들의 발흥과 쇠망까지를 담고 있어 그 제목이 어울리는 것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① 촉나라

유비,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방통,

황충, 마초, 위연, 강유, 손건, 마속, 유봉, 유선, 관평, 관흥, 장포, 장소, 조광, 조통, 제갈첨, 마대,

간옹, 미축, 미방, 등지, 장완, 비위, 초주, 마양, 맹달, 법정,

양의, 엄안, 오반, 오의, 왕평, 요화, 주창, 이엄, 장익, 황권 등

 

② 위나라

조조, 순욱, 서서, 사마의, 조창, 조식, 조비, 조인, 조홍, 조진, 조예, 하후돈, 하후연,

하후패, 하후상, 하후은, 가후, 곽가, 방덕, 사마사, 사마소,

서황, 순유, 악진, 양수, 우금, 우금, 유엽, 이전, 장료, 장합,

전위, 허저, 정욱, 화흠, 신비, 손예, 문빙, 만총 등

 

③ 오나라

손권, 손책, 노숙, 주유, 여몽, 육손, 황개, 손견, 감영, 감택, 고옹, 능조, 능통, 서성, 장소, 정보, 정봉,

제갈근, 제갈각, 주태, 태사자, 한당, 조무, 장굉 등

 

④ 기타

동탁, 여포, 진궁, 왕윤, 원소, 원담, 원희, 원상, 전풍원술, 공손찬, 공융, 도겸, 동승, 마등, 문추, 안량, 심배,

유장, 유표, 이각, 장각, 장노, 저수, 등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삼국지, 그 오해와 진실

다른 나라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역사가 있다면? 바로 ‘삼국지’를 꼽을 수 있겠죠. 험난한 난세 속에서 펼쳐지는 위인들의 계략과 지모를 통해 현대사회에서도 통하는 많은 교훈들을 얻을 수 있어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도서’로 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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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블로그>

 

보통 ‘삼국지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물어본다면, 십중팔구로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중 무조건 한 명을 꼽아서 대답할 겁니다. 우리에게 ‘도원결의’와 ‘삼고초려’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죠. 아, 조조도 영화 ‘적벽대전’으로 알려지면서 이름이 몇 번 나오긴 하네요. 조조는 마지막으로 추가하도록 할게요.

 

이제 다 합하면 5명입니다. 그 중 4명은 ‘촉’의 황제와 장수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위’의 황제군요. 왜 촉나라의 장수들이 인기가 많은 걸까요?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오’의 무장들은 한 명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적벽대전에선 오나라가 주인공이거늘!! 아무튼, 전 ‘삼국지’를 정말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로써, 일반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고 있는 삼국지에 대한 생각들을 역사적인 근거를 토대로 확실하게 정리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의외로 ‘삼국지’가 100% 실제 역사라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삼국지는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의 소설가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입니다. 반대로, 진나라 학자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정사’가 제일 역사에 근접한 삼국지로 알려져 있죠. 물론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큰 틀은 삼국역사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소설이라는 특징상 긴장감과 재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작가의 재량이 포함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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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랬던 거였어?"

<출처: 네이버카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위, 촉, 오 삼국 중에서 유비가 군주인 촉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로 삼국을 통일한 것은 ‘진’으로 위나라의 장수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천이 형제들과 함께 모반을 일으켜 세운 국가였죠. 또한, 중국 역사 속에서 촉나라는 위와 오에 비해서 작은 변방국가와 다름 없었습니다.


작은 변방국가의 군주가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렇다면 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촉나라의 유비였을까요? 여러 역사학자들이 유추해본 결과, 첫째로 원나라가 망해가는 시점에서 황제인 테무르의 후계자가 없어서 몽골제국에서 후계자 쟁탈전을 합니다. 여기서 정치적 혼란을 빚게 되는데, 만약에 테무르의 후계자, 즉 원의 장손이 있었다면 정치적 혼란을 빚지 않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유비는 무너지는 ‘한’ 왕실의 핏줄이었기 때문에 혈통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유비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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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카페>

 

둘째로 위의 조조는 난세의 간웅으로 많은 인재와 넓은 땅을 거느렸던 성공가도를 달린 영웅이고, 오의 손권은 기반이 튼튼했던 손씨 가문의 대물림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삼국천하를 옹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유비는 여러 고초를 겪으며 고난 속에서 성공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유비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삼국지의 진실, 혹은 거짓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삼국지연의와 삼국지정사를 비교하면서 실제 역사 속에선 등장인물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볼까요?

 

1. 도원결의는 삼국지연의에서 만들어진 내용이다.

 

정사에선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도원결의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단, 장비는 젊었을 때부터 유비를 형님으로 지극히 모셨다고 하는데요. 장비보다 나이가 더 많은 관우가 등장하면서 장비는 마찬가지로 형으로 섬겼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토대로 연의에서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도원결의’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2. 초선은 가상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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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게임에서 등장하는 초선의 모습입니다.

<출처: 네이버카페>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인 '초선'은 마찬가지로 중국 최고의 무장 중 한 명에 속하는 여포를 ‘미인계’로 유혹하여 당대 최악의 군주이자 여포를 성장시켜준 동탁을 암살하도록 만듭니다. 정사에선 여포가 한 사소한 일로 동탁이 성급하게 행동했으며, 나중에 화해를 했으나 여포는 빈정이 상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초선으로 인해 여포의 마음이 움직였다’ 라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던 것으로 보아, 초선은 삼국지연의에서 여포의 마음을 돌리도록 하는 강력한 ‘매개체’였던 것입니다.

 

3. 제갈량은 병법에 있어선 조조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치 신이 인간세상에 내려온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정치와 병법 모두 대적할 자가 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었죠. 하지만 삼국지정사의 저자 진수가 제갈량을 평하길, ‘군대 통솔 방면에 능력은 있었지만 기발한 모략이 부족했고, 백성을 다스리는 재능이 오히려 용병 재간보다 우수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군사를 다루는 법과 민심을 살피는 정치에는 적군조차도 감복할 정도였지만, 실제로 제갈량이 전투에서 많은 공훈을 세운 것은 아닌 것이죠. 반대로 조조는 평생의 전투에서 승률이 8할 이상으로, 계략과 병법으로 대부분의 전투를 승리한 지략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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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의 모습

<출처: 네이버블로그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런 의미에서 적벽대전의 일등공신은 오나라의 명장이자 도독인 '주유'입니다. 제갈량은 단지 손권을 자신의 편으로 이끌었을 뿐, 연의의 내용처럼 적군으로 위장해서 활을 모아오고, 신단에 제사를 지내는 등의 전지적인 능력은 없었던 것이죠. 반대로, 살을 깎아 득을 취하는 ‘고육지책’과 배를 묶어 일제히 화공을 취하는 ‘연환계’ 모두 주유의 계략이었던 것이죠.

 

유비 사후, 제갈량은 승상의 자리에 오르면서 실질적인 정권을 장악했는데요. ‘칠종칠금’을 만들었던 남만정벌은 맹획과 일곱번씩 밀고 당기는 내용은 실제 역사에선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만족을 설득시켜 굴복하도록 만들었던 사실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출사표’를 던진 북벌원정의 내용에선 연의에선 5차례 북벌감행이라고 설명한 내용과는 다르게, 2번의 북벌을 감행했지요. 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연의와 정사와의 설명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4. 화웅의 목을 벤 것은 관우가 아닌 손견이다.

 

관우가 자신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칠 수 있던 계기는 화웅과의 일기토였죠. 당시 의용병이던 유비군은 공손찬 휘하에서 지내면서 동탁 토벌전에 참가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맹장 화웅을 베기 위해 관우는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라는 명언을 남기고 순식간에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오죠. 뭐.. 그렇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손견군은 동탁군을 대파하는 혁혁한 공을 세우며, 손견 본인은 직접 맹장 화웅의 목을 벤다고 전해집니다.

 

5. 여포는 무예만 출중한 것은 아니었다.

 

흔히들 삼국지 내에서 배신과 가장 어울리는 장수는 여포라고 많이 이야기하죠. 여포는 삼국지연의에선 당대 최고의 무장이라는 타이틀과 동시에 비운과 배신의 아이콘으로 비춰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예로는 당해낼 자가 없었으며, 병법에도 출중하여 가히 초한의 항우와 대적할 만 하다’라는 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죠.


삼국지, 한 번 읽어보세요

 

이외에도 연의에 익숙해진 모두를 놀라게 만들만한 사실들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와 정사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 수가 자그마치 1200명에 가깝다 보니.. 일일이 설명하려면 하루 24시간으론 부족할 것만 같아요. 물론 저도 많이 아는 건 아니기 때문인지라…. 아무튼, 아직까지도 여러 역사학자들이 삼국지에 대한 의견과 검증을 진행하는 걸로 보아,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난 고대 역사이지만, 그 속에서 재미는 물론이고 일상과 접목해서 배울 점이 많다는 뜻이겠죠.



위의 지략가


사마의 : 하내 출신으로 군략에 능했음.

조조가 사마의를 등용하고자 하지만 거부하다가 조조의

협박에 결국 억지로 조조의 신하가 되나 조조는 사마의를

중용하지 않고 조비(문제)때 와서부터 중용되었다.

한번은 마속의 유언비어에 조예(명제)가 파직하기도 하나

다시 복귀한다. 제갈량의 북벌을 막은 주요 인물이다.


순욱 : 조조의 초기 지략가.

조카 순유와 함께 조조의 지략가가 된다.

조조에게 여포와 유비를 가르는 두 계책을 말한적 있다.

구호탄랑지계 등등이며, 한나라가 매우 쇠약해졌을 때

여러 조조의 신하들이 황제에 오르도록 추천한다.

조조도 그렇게 하고 싶었으나 순욱, 순유가 반대한다.

조조도 그 말을 듣고 황제에 오르진 않았지만 순욱, 순유를

멀리한다. 나중에 적벽대전 직전에 순욱에게 빈 그릇을 주어

순욱이 그 그릇에 독약을 타서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


정욱 : 순욱.순유의 천거로 조조의 부하가 된다.

키가 매우 커서 예형이 조조의 부하들을 폄하할 때

정욱은 키가 크니 위압감 있어서 문지기나 하면 좋다고 할 정도.

정욱은 의외로 특별한 활약이 없는 듯 하다.


곽가 : 조조가 가장 아낀 인물. 자는 봉효.

조조가 원소를 치러 갈 때 풍토병에 걸리고 위기에 처한다.

그 즈음 원소가 병으로 죽고 원담도 조조가 토벌하여 원상, 원희가

요동의 공손강에게 의탁하러 도망쳤다는 소식이 왔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추격해서 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곽가가 생전에

쓴 서찰에는 추격하지 말라고 되있었다. 결국 조조는 추격하지

않았다. 공손강은 공손공의 계략을 받아들여 조조가 추격해오지

않으면 원상, 원희를 죽이기로 한 것을 시행하였고 원상, 원희를

죽여 목을 보내었으며 스스로 항복하였다. 또 적벽대전에서

대패하고 퇴각하면서 '봉효가 있었다면 피해는 덜했을텐데!'하며

한탄했을 정도라고 한다..



위의 무장


하후돈 : 조조의 고향친구였다. 의협시절 때부터 만났으며

조조가 거병하기 전부터 조조에게 있었고 조조의 제 1급의

무장이라 할 만 하다. 관우와 50합을 했을 정도의 무력이라고.

하후돈은 여포를 칠 때 조성에게 눈에 활을 맞았으나 부모님이

주신 몸이라며 함부로 할수 없다면서 활 맞은 눈을 삼켰다.

(물론 연의기준)


전위 : 조조의 무장하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

하후돈이 정찰 도중 만나서 조조에게 임관시켰다.

무력이 대단해서 조조가 총애하였는데, 장수를 토벌하려 하는데

장수가 의외로 항복하였고 조조는 군을 거의 완성 밖에 주둔시키고

전위와 몇몇의 군대만 이끌고 성 안에 와서 장제의 처이던 변씨와

눈이 맞는다. 그러나 장수는 장제의 처를 건드린걸 용서못해서

가후의 계책으로 난을 일으키고 조조가 위기에 처했는데 조조가

있는 곳 문 앞을 전위가 필사로 지켜냈고 조조는 그 틈을 타 도망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위는 온몸이 고슴도치 처럼 활을 맞고

선채로 죽었다. 그 전투에서 자신의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도

죽었지만 특히 전위를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고 한다.




촉의 지략가


제갈량 : 삼고초려는 가장 유명하여서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도

거의 알다시피 하다. 뭐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제갈량은

유비의 도망을 도왔고 조조를 몇번이나 격파했으며 북벌도 했고

남만을 토벌하였다. 오를 막아내기도 하였고 제갈량은 가장 유명

하다. 그러나 촉한정통론의 삼국지연의 저자 나관중으로 너무

과장되어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있는게 현황이다.

이건 기억해두자. '연의는 소설이고 정사는 역사서'라는 것을 ..


방통 : 비운의 지략가.

방통이 살았다면 제갈량 도와서 북벌 성공했을 거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제갈량이 형주 지키고 방통이 유비를

보좌하여 유장의 촉을 치는데 한 몫 한다. 고패, 유회의 유비

암살을 미리 눈치채고 손 썼으며 유장 암살을 하려 하나 유비의

만류로 그만두게 되고, 유비의 진군에 여러 활약을 한다.

낙성 전투에서 남쪽 길로 공격하려다 장임의 매복군에 죽는다.

연의의 허구일진 모르나 방통이 죽은곳은 낙봉파로, 방통의 호는

봉추이다....



촉의 무장



조운 : 일명 조자룡이라 불린다.

오호 대장군 중의 하나(연의 기준)로, 장판파에서 유비의 아들

유선(아두)를 조조의 100만대군 사이에서(연의 기준. 정사에서는

5천 선봉이라 함)구해낸다. 남만 평정전에 큰 힘이 되었고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하고자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제갈량과

함께 반대하였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초 : 자는 맹기로 서량 사람이다.

오호 대장군 중의 하나다. 마등의 장남으로 마등이 조조에게

죽자 조조를 원수로 삼고 조조를 공격하나 조조의 본대에게

격파당한다. 마초는 그래서 방덕 등을 데리고 한중의 장로에게

가게 되는데, 제갈량의 계략에 마초는 유비의 부하가 된다.

(어떻게 됬는지는 너무 길어서 생략) 제갈량이 남만을 평정하고

성도로 귀환하고 얼마 뒤 병으로 사망한다.


위연 : 자는 문장이며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모른다.

연의에선 위연이 반란을 일으키려다 마대에게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과 대립관계인 양의를

제거하려고 하였다가 오히려 된통당하고 반역자로 몰린다.

위연의 반골의 상이니 배반자이니 하는 것은 모두 '연의의 허구'다.

한현이 황충을 죽이려 할 때 위연이 살려주었고 둘 모두 유비의

부하가 된다. 제갈량의 북벌에 큰 공을 세우나 결국 역적으로 몰려

지금 세대에게 많이 욕을 먹는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은,
바로 연의만 읽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저도 사실 처음엔 위연을 반역자로 생각하고 욕했지만 나중에 알고나니 ...



오의 지략가



주유 : 삼국지를 조금이나마 안다면 거의 알 듯 하다.

제갈량에게 계속 농락당하다가 울분으로 죽는다고 나오지만

이 역시 '연의의 허구'다. 미인계는 쓰려고 손권에게 허락 맡으려

하지만 손권이 이를 거절하자 어쩔수 없이 하지 못했다.

제갈량 못지않은 당대의 명사. 오를 빛낸 인물 중 하나다.



육손 : 제법 유명한 사람.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고 75만을 일으켰을때(연의 기준)

화공으로 75만 모두 전멸시키고 유비의 장수를 거의 죽였다.

관우가 형주에 있을 때 육손이 계략으로 여몽을 도와서 여몽이

이긴걸로 나오지만(연의에선) 정사에서는 여몽이 자신 혼자서

형주를 쳐부수었다고 한다. 유비를 추격하다가 제갈량의

석병팔진(허구일 가능성도 있음)에 걸려 죽을 뻔 하다가 제갈량의

장인 황승언이 구해준다고 한다. 그 뒤로 바로 돌아가서 위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오의 무장



동습 : 그냥 보너스로 해보는 인물.

필자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것은 안다.

하비 전투에서 상륙하려다 큰 파도였던가.. 해일인가. 어쩃든

거기에 자신 군대도 다 익사하고 자신도 익사했다는 ... 암울.


황개 : 손견대 부터 손권대 까지 손씨를 보좌한 인물.

노장이지만 무용이 뛰어났다고 한다. 적벽대전에서

고육지계로(연의기준) 화공을 성공시킨다.

고육지계는 황개와 주유가 대립되어서 주유가 황개에게

곤장 100대를 치고 조조에게 거짓항복 하다가 불을 지르는

계략이었다. 물론 방통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


조무 : 위에는 전위가, 촉에는 제갈첨이 있다면 오에는 조무가 있다.

필자가 그냥 지어 본겁니다. 전위는 위에서 말했듯이 조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고 제갈첨은 유선이 촉의 황제일때에 면죽관에서

위군을 필사적으로 막다가 결국 전사하는 인물. 조무는 손견 때

부터였다. 손견이 사수관으로 쳐들어 가서 화웅의 부장 호진을

죽이고 호진군을 전멸시키고 대치하다가 원술의 군량이 안오게

된다. 그래서 병사들은 페닉상태에 빠지고 그틈을 탄 화웅이

야습을 감행하고. 황개, 정보, 한당 등은 모두 흩어져 있었다.

결국 탈출하고 추격되고 있는데 남은건 조무와 손견.

어두워서 화웅군은 손견이 쓰고있는 빨간 두건을 손견으로 보고

쳐들어 왔는데 게속 추격되는데 조무가 손견에게 빨간 두건을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결국 좀주가 빨간 두건을 쓰고 손견을

다른 곳으로 보내게 하고 자신은 계속 일직선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두건을 나뭇가지에 올려놔서 적군이 와서 보니 속은 것이다.

그 때 숲에 숨었던 조무가 공격을 하여서 시간을 끌지만 화웅에게

죽고 만다. 삼국지를 어느정도 알아도 이 인물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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