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賞 斷想
4,349년 前 天帝의 孫子인 檀君왕검이 太白山 頂上, 神市에서 나라를 선포함을 기념하는 開天節을 기리는 세종문화회관의 청중들이 ‘이 나라 한아버님은 檀君이시니’를 齊唱할 때, 日本 列島는 ‘Autophagy(自家捕食)’라는 多少 생소한 분야에서 외롭게(?) 40여년을 穿鑿한 71세의 생명공학자, ‘오스미 요시노리’(도쿄 대)가 노벨 생의학상을 수상한 소식으로 뜨거워졌다. 작년에도 일본은 이 분야에서 다른 나라 과학자 두 사람과 더불어 노벨 생의학 賞을 受賞했다. 이로서 일본은 총 25명의 노벨상 受賞者를 내게 되었고,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을 제외한 22명이 科學賞을, 물리 11명, 화학 7명, 생의학 4명, 받아서 노벨상 수상국가 70여개 나라 중 여덟 번째 위치가 되었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 국가순위는, 2015년 기준, 미국(357명), 영국(118명), 독일(102명), 프랑스(67명), 스웨덴(31명), 러시아(27명), 스위스(26명), 일본(25명, 2016년), 중국(12명)으로 상식적으로 우리가 認知하는 국가의 종합적 순위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노벨과학상 배출 대학 순위를 보아도 10위안에 미국이 6개, 프랑스 2개, 영국 1개, 스위스 1개 로 미국의 압도적 우위는 분명하다.
그런데 노벨상은 과연 그 권위와 명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21세기 IT시대(지식정보), 分秒를 다투어 세계 곳곳에서 쏟아지는 可恐할 정보 홍수 시대, 이런 격변상황에서 노벨상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과연 무엇이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의 궁극적 행복에 기여되는 참 지식이며 정보인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런 시기, IT, 컴퓨터 전문용어가 사회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자연스레 대화의 벽이 만들어지고,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공로로 발표되는 연구 분야는 都示 무슨 이야기인지, 이게 무엇에 기여됨인지, 多衆들의 관심 밖 사안이고, 게다가 노벨상 수상자들은 여전히 60대 이상의 老年이니, 압도적인 노벨상 수상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시상기준, 평가에 대한 이의 제기와 더불어 권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있음이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의 세기를 넘는 역사에 따르는 영향력과 걸 맞는 수상금액 규모는 변함없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 명예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금년 5월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 소설가 ‘한 강’이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라는 맨부커상을 수상하여 매스컴에 오르내리긴 했지만, 모든 측면에서 노벨상과의 격차가 있음을 새삼 일깨운 바 있다.
노벨平和賞은 그야말로 정치적인 흥정(?)이라 봐야하고, 文學賞은 언어별, 지역별로 균등 배정되고 있으며, 經齊賞은 나중에 시작되기도 했고 주로 英美학자들이 수상하는 편파성이 있음이 사실이기에, 학문적 연구에 대한 제대로의 포상은 생의학, 물리, 화학 분야라고 보면, 22개의 과학상 수상을 기록한 일본의 기초과학은 명실공한 세계적 수준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와의 현실적인 엄청난 차이임을 일깨우는 명백한 徵表이다.
일본은 종전 직후라고 할 1949년 중간자 존재를 밝힌 유카와 히데끼(교토대)가 물리학상을 받아서 노벨상의 문을 열고, 1981년에는 ‘후쿠이 겐이치’(게이오 대)가 ‘화학반응 경로에 관한 이론’으로 화학상을 받았다. 그 이후, 꾸준히 수상실적을 유지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이 서양의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19세기 중엽 메이지 유신 무렵인데, 일본 ‘만엔권’ 지폐에 단골 肖像으로 오른 게이오 대학 창설자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가 특히 오늘 일본의 자연과학, 물리학을 發興시킨 泰斗이고, 최초의 일본 노벨상 수상자 ‘유까와 히데끼’는 그의 徒弟인 셈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死後 半世紀 경과되어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이다.
10월 이때쯤 으레 언론을 통해 전해오는 노벨상 이야기, 그저 그렇거니 지나치다가도 수상자가 일본학자라면 축구를 포함한 무엇을 해도 일본에게는 이겨야 한다는 情念으로 오랜 세월 젖어온 터이라 당연히 눈길이 감을 어쩔 수 없다. 開天節에 일본학자 오스미 요시노리의 노벨상 수상 뉴스를 들으니 왠지 푸념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듯해서 뇌까려보기로 한다.
우리가 서양 학문을 비교적 다수의 국민이 접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논의의 여지가 있으나, 日帝 强占期 및 6.25동란時期를 배제하고 1955년을 시작시점으로 그로부터 반세기면 2005년경이고, 일본의 경우를 그대로 적용하면 바로 그 때 쯤엔 우리도 노벨과학상이 나올 수 있는 시기였다고, 사실 좀 많이 접어주어서, 計上된다. 금년이 2016년이니 벌써 10여년 이상 지나간 셈이다. 물리적 경과시간만으로 치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그 시절 우리나라 정책당국의 基調, 학교 및 연구기관 기초과학의 환경 및 수준이 그럴 수 있었느냐는 전혀 별개 사안이다.
우선 짚고 갈 바가 ‘기초과학’에 대한 우리의 국가적, 국민적 시각이다. ‘과학기술’, ‘기술과학’, ‘과학산업’, ‘산업과학’, ‘기술입국’, ‘산학협동’, 관공서, 국책 연구기관, 산업현장 등에서 흔히 목격하고 늘 생활에서 접했고, 여전히 접하는 용어이다.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과학, 공학에 국가의 ‘于先焦點’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端的인 증거이다. ‘순수과학’, ‘기초과학’은 뭔가 한가로워 보이고 대학교 어느 외진 구석에 조용히 세워져있는 그런 느낌을 어쩔 수 없다. ‘과학(기초)’과 ‘기술(공학)’은 분명 장르가 다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先後는 물론이고, 그 자체의 구분을, 예를 들어 창의성과 자율성이 바탕이 되는 ‘化學, Chemistry’과 응용성, 시장(경제)성, 효율성이 중시되는 ‘化工, Chemical Engineering’의 차별화적 구분을 의도적으로 무시, 경시하고 단기적 성과 달성에 정책적, 재정적 초점이 모아져 왔음이 엄연한 사실이며 현실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해당 분야에 대한 人的 인프라 정책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기에 기초과학 창달을 위한 인재의 개발 및 확보는 필수인데, 사회 전체의 흐름에서 이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바로 대학입시에서 우수 인재들이 어느 학과를 선호하여 지원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1950년대를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의 화학공학, 기계공학, 건축공학 등의 공학계열학과 선호경향은 1980년대 전자공학 분야를 거쳐 컴퓨터, 제어계측분야까지 이어졌는데, 이는 산업현장의 수요에 따른 일련의 국가 시책의 영향에 기인한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1980년대 까지는 화학 및 물리학과 등 기초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도 못지않아서 공과대학 인기학과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1985년 이후의 흐름은 2016년 9월2일자 韓經에 실린 ‘30년 인기학과 변천사’에 잘 나타나 있는데, 수능 모의고사 성적순으로 1985학년∼1990학년 까지는 그래도 이공, 자연계가 고루 상위권 10위에 망라되었지만, 21세기, 2000년 들어서며 서울소재 대학 의예과가 상위권에 다수 포진되더니, 2005년도 이후부터 최근에는 서울 및 지방대학의 의예과가 상위 10위권을 모두 장악하고, 자연계 및 이공계는 그 이하로 밀려난 것이다. 즉, 자연계 상위권 학생은 모두 의사, Medical Doctor, 즉, 99% 다수가 Physician, Surgeon 또는 Specialist가 되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 분야의 순수한 연구를 위한 Medical Scientist, Medical Scholar의 길이 아니고, 대형병원 의사, 개업의가 되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자본주의의 克明한 한 斷面, 철저한 물질만능주의의 表出이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바가 인터넷 SNS가 폭발적으로 사회 네트워크로 형성되며 科學과 理性은 온데간데없이 반대되는 의견을 제대로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는 소수의 극단적 행동파들에 의해 만연 자행되는 ‘떼법’, 그런 비이성적, 비논리적 행위를 부채질하는 선정적 언론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사회분위가 바뀌어야한다는 것이다. ‘광우병’, ‘사드설치’ 등에 대한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우리사회의 집단 ‘괴담’ 신드롬이 횡행하는 곳에서 ‘자유’, ‘자율’, ‘존중‘을 바탕으로 ’창의, creativity’를 꽃 피우는 ‘순수과학(Pure Basic Science)’은 설 땅이 없는 것이다. 오스미 요시노리는 그의 수상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결과가 어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험(연구)을 진행하는 것, 그 자체로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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