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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시카 호쿠사이
후카쿠 36경(富嶽三十六景)

후지산의 <아침풍경(凱風快晴圖)>
호쿠사이의 <후지산삼십육경>가운데 후지산의 <아침풍경(凱風快晴圖)>은 1831년 그의 나이 일흔하나에 제작한 것으로 후지산의 여름부터 가을에 접어드는 아침 풍경을 그린 것이다.
아침에 뜨는 붉은 해가 후지산을 붉게 물 드린 풍경은 단순성과 명료함이 돋보이는 가장 일본다운 명작이다.
호쿠사이의 이 작품은 훗날 세잔의 <생빅트와르 산>그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세잔이 1890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06년 사이, 그는 집중적으로 액상프로방스의 생 빅트와르 산 그림을 그려 수십 여 점 남겼다.
세잔이 나름 호쿠사이의 후지산 풍경 그림을 보고 자극을 받아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불현듯 생각이 미친다. 왜냐하면 그 당시 프랑스 화단과 문화계는 온통 일본풍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가나가와의 파도
호쿠사이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가나가와의 파도>를 들 수 있다. <가나가와의 파도>에서의 후지산이 멀리보이는 바다의 거대한 물결이 작은 배를 향하여 할퀼 듯 덤벼드는 모습과 같은 스릴 넘치는 묘사를 보면 호쿠사이가 얼마나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낸 천재화가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이 두 장의 그림이 섬나라 일본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웅변한다. 대가의 무수한 작품 가운데 단 몇 점으로 그를 대변하니 불후의 명작은 이렇게 탄생하나 보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대량 복제 판화가 미국 문화의 중심에 서듯, 호쿠사이의 <후지산삼십육경>은 오늘의 일본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후지산 서른여섯 경치
후가쿠 36경(일본어: 富嶽三十六景 ふがくさんじゅうろっけい 후가쿠산주롯케이[*])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제작한 대표적인 풍경화 · 풍속화이다. 후가쿠는 후지 산에서 따왔으며, 각지에서 후지 산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초판은 1823년 무렵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1831년부터 1835년 무렵에 걸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표 당시의 호쿠사이는 72세와 말년기에 들어갈 때의 작품이다
호쿠사이가 나이 예순일곱 부터 그리기 시작한 <후지산삼십육경>은 그의 대표작일 뿐 만 아니라 그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다.
후지산은 일본 혼슈(本州)지방의 시즈오카현(靜岡縣) 북동부와 야마나시현(山梨縣) 남부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3776m의 일본 최고봉으로, 후지 화산대의 주봉이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원뿔형의 성층화산이다.
후지산은 일본 중심에 자리하여 바다에서든 내륙이든 간에 멀리 눈 덮인 풍경은 그야말로 신성 그 자체이다. 일본 국기의 붉은 해가 상징하는 강렬한 이미지는 한 봉우리로 마무리된 후지산의 신비와 맥을 같이한다.
호쿠사이는 <후지산삼십육경>에 자기가 배웠던 모든 화법을 독자적으로 표현하였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발한 구도, 간결하고도 선명한 채색법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적인 자연과 동적인 인간, 원근법과 과장법으로 예상을 뒤엎는 콘트라스트 등 호쿠사이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葛飾北斎, Katsushika Hokusai, 1760~1849]

1760년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출생하여 1849년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아호는 슌로(春郞), 소리(宗理), 다이토(戴斗), 가쿄진(畵狂人), 이이쓰(爲一), 만지([卍). 5세 즈음에 숙부인 나카지마 이세(中島伊勢)의 양자가 되었으나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15세 무렵부터 책대본가게에서 일하던 중 목판화 기술을 익히며 우키요에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1778년 그의 나이 19세에 우키요에의 대가인 가츠카와 순쇼(勝川春章)의 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인 회화 수업을 받았다. 당시 그는 고급 매춘부와 가부키 극의 배우를 그린 판화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호쿠사이는 30세가 넘어서면서 가츠카와파라는 우키요에 파벌의 범주를 넘어서서 다양한 회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여러 화파들을 섭렵해 나갔다. 가노파, 스미요시파, 린파, 셋슈파에서부터 중국화와 서양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기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로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파행은 보수적인 회화계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기에 결국 그는 가츠카와파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었다.
1798년 에도의 풍경을 연작으로 제작한 것을 계기로 풍경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연극적인 소재의 화려한 그림을 거부하고 풍경에 자신의 예술가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담아 표현하였다.
40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은 장편 전기소설인 요미혼의 삽화를 그리는데 전력하였다.
또한 50대 중반 무렵에는 《호쿠사이 만화》라는 소묘집을 통해 일상의 모습을 경쾌하게 그려냈다.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후가쿠 36경 富嶽三十六景》(후가쿠는 후지산을 일컬음))과 《후가쿠 100경 富嶽百景》은 그의 나이 70대에 그려진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93회의 이사와 30회 이상이나 자신의 호를 바꾼 기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있는 곳에 물들지 말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때로는 풍속화로, 때로는 화조화로, 또 육필화로 끝없는 변화를 모색한 그는 스스로가 칭한 그대로 가쿄진(畵狂人 그림에 미친 화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림에 미친 천재 그가 남긴 후지산 36景]
가츠시카 호쿠사이 [葛飾北斎, Katsushika Hokusai, 1760~1849]
일본 에도시대에 활약한 목판화가로 우키요에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을 그림에 담는 것이 목표였던 그는 일생동안 3만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연작인 《후가쿠 36경 富嶽三十六景》은 일본 풍경판화 역사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의 작품은 모네, 반 고흐 등 서양의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호쿠사이는 그림에 미친 천재 또는 화광(畵狂)으로 일본미술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 <후지산삼십육경(富嶽三十六景)>가운데 <가나가와의 파도(神奈川沖浪裏)>는 서양을 사로잡고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 교향곡 <바다>를 작곡하게 한 그림이다.
지난 2000년, 새로운 천년을 기약하며 미국의 시사주간지 <라이프>는 지난 천 년간 세계사를 만든 100대 인물을 발표했다. 거의 서양인들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중에 86번째 인물로 호쿠사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실로 대단한 영광이었다.
호쿠사이는 90년의 생애 가운데 30회 이상 자기의 이름을 바꾸었고, 백번 이상의 이사를 하였으며, 항상 새로운 예술을 생산하려고 노력하는 기행(奇行)과 기벽(奇癖)의 성격을 지녔었다.
평생 천여 장에 달하는 판화를 제작한 호쿠사이는 모든 판화 도안가 중에서 가장 작품을 많이 만든 판화가였으며, 재능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오랜 판화 경력을 통해 소설의 삽화를 그려주었고, 직인들을 위한 도안 지침서와 아마추어 미술가들을 위한 지침서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주요작품
《붉은 후지산 Red Fuji》(c. 1825),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The Great Wave of Kanagawa》(c. 1825), 《고이시가와의 아침 설경 Snowy Morning at Koishikawa》(c. 1830), 《어부 아내의 꿈 The Dream of the Fisherman's Wife》(c. 1820),

위쪽의 그림은 판화의 전체를 찍은 것이며 아래쪽 그림은 원본크기의 부분도이다. 그림마다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원본크기 부분도]













 [원본크기 부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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