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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 1894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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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놓고, 지금 우리가 처한 모습이 “임진왜란 직전과 비슷하다”, “6.25 한국전쟁 직전과 비슷하다”, “일본이 한국을 집어삼키기 직전 구한말과 비슷하다”는 등 여러 가지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 세 시기는 시간적으로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 내부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었고, 국가를 운영하는 원칙이 무너지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진영이 갈라져 있었고, 세계는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만 문을 닫고 변하지 않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4년 전인 지난 2012년 2월 말 출간돼, 요즘 ‘헬 조선’(‘지옥 한국’)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조선 1894년 여름, 오스트리아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는 19세기 말 처참한 조선의 모습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의 원래 제목은 ‘1894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의 여름여행 이야기’(Eine Sommerreise nach dem Lande der Morgenruhe 1894)이다.  

1894년은 1월 ‘동학혁명’, 6월 ‘청일전쟁’, 7월 ‘갑오경장’으로 국사책에서 자주 접했던 시기다. 조선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왕인 26대 고종 황제 시절로, 고종이 12살에 즉위하면서 섭정을 해 온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고종의 아내 명성황후(민비)와 청나라, 일본 세력을 번갈아 끌어들이며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던 시기다. 명성황후는 다음해인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으로 일제가 사주한 자객의 칼에 숨진다.

작가 헤세-바르텍이 일본 나가사키 항을 출발한 것은 6월 말, 부산과 인천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바르텍은 7월 말 일본으로 다시 떠나기 까지 한 달 동안 조선에 머문다. 장마철에 조선을 여행한 셈이지만 장맛비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1894년 여름에는 조선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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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책에서 나가사키에서 쓰시마 섬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 조선에 대한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은 일본이었다고 쓰고 있다. 


'항구에서 보면 부산은 생각했던 것 보다 아주 괜찮고 더 예쁘며 친근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행자가 보게 되는 부산은 조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일본의 항구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이웃 쓰시마와 규슈에서 건너온 5천 명 가량의 갸름한 눈을 가진 작은 키의 남자와 여자들이 거주하고 있다.'(p17)

부산에서 한국 사람들의 삶을 접한 작가는 이내 놀란다. 남녀 할 것 없이 일본이나 중국 사람보다 키도 크고 잘 생긴 조선 사람들이지만, 생활수준은 너무 낮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산의 짐꾼들은 전부 조선인이며, 도시와 항구의 모든 짐 수송을 중개한다. 말과 소가 짐 수송에 이용되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는 여러모로 볼 때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당나귀조차도 초라하고 더러운 것이 잔뜩 묻었지만, 건장하고 힘센 장정들보다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헝클어진 적갈색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에 모자도 없고 맨발이며 근육질의 몸을 너덜너덜한 목면 웃옷과 누더기나 다름없는 바지로 가린 채 이들은 지게를 옆에 끼고 자신들의 유일한 거주지나 다름없는 세관 벽을 따라 쪼그리고 앉아 있다. 한 낮이면 이곳에서 햇볕을 쬐다가 밤이 되면 비가 오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잠을 청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몸을 눕힌다.'(p23)

부산을 떠나 제물포(인천)에 도착한 작가는 인천의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일을 하지 않는 조선의 남자들을 확인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유럽인 지구 바로 옆에 조선인 ‘시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사고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나 굶주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여기에서 구운 개고기나 날생선, 삶은 쌀, 껍질을 벗기지 않은 오이, 호박과 붉은 고추 등을 즐겨 먹는다. 원래는 하얗지만 먼지와 오물이 덮인 해진 옷을 두르고, 결혼 여부를 표시해주는 모자(갓)를 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입에 담배를 문 채, 지저분한 간이음식점과 싸구려 상점들 사이를 이리저리 배회한다. 또는 길거리 쪽으로 개방된 집에서 돗자리를 깔고 빈둥거리며 잠을 자거나 논다. 이들이 절대 하지 않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일’이다.'(p53)

제물포에서 서울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던 작가는 국가라고 할 수 없는 당시 조선의 낙후된 경제체제를 체험한다. 일부 특권층이 주조권을 독점하고 질이 형편없는 돈을 마구 찍어내 물가는 천정부지, 당시 미국 돈 1달러는 조선 돈 6천 냥이나 했다. 한양에 가려면 말의 무게와 같은 돈을 줘야 했다고 말한다.  

'그는 말이 매우 비싸다고 했다. “좋습니다. 얼마지요?” “2만 냥입니다!” 2만 냥! 나는 이 엄청난 숫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돈을 계산해 보고 나는 미국의 유머 소설가인 내 친구 마크 트웨인이 마데이라 섬에서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이 이곳 극동에서 나에게도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6천 냥이 1달러인 것이다. 나는 조선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화폐인 크고 둥글고 검은 동전들을 손에 넣었다. ---2만 냥! 그러니까 이는 대략 3달러 반에 해당한다. 그리고는 이 돈으로 말몰이꾼도 같이 가려 했다.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말의 무게와 돈의 무게가 서로 엇비슷한데도 불구하고 값어치로 따지면 그리 비싼 게 아니다.'
(p58)

말을 포기하고 작가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증기선을 타고 서울로 향한다. 하지만 믿었던 일본 증기선은 마냥 늦게 출발한 것도 모자라 강화도 인근에서 모래톱에 걸린다. 꼬박 이틀 동안 배를 타고 서울 용산에 도착한 작가는 황량한 수도 한양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나는 산 정상에서 이 큰 도시의 풍경을 맛보기 위해 도시의 성곽을 따라 가파르고 나무들이 우거진 남산에 올라갔다. ---서울의 집들은 단순하고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납작한 잿빛 오두막의 초가지붕 1만여 개가 마치 공동묘지의 회색 봉분처럼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도로도 없고, 눈에 띄는 건물이나 사원 또는 궁전도 없고, 나무들과 정원도 없다.

---나는 나중에 어떤 조선인이 그린 정치적 캐리커처를 보았는데, 조선을 기묘한 형태의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머리는 작고 대머리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며, 팔과 다리는 길고 가늘지만 몸통은 끔찍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조선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 보세요. 이게 가난한 우리나라의 그림입니다. 여기 위에 있는 머리는 임금이고, 팔과 다리는 착취당하고 억눌린 백성이지만, 피둥피둥 살찐 몸통은 귀족과 같은 의미를 갖는 이 나라의 관료 계층입니다.”'
(p78)

작가는 자연환경이 나쁘지 않은 조선이 가난한 이유를 남자들이 일을 하지 않고, 여성들을 존중하지 않는데서 찾는다. 그리고 근본적인 요인은 부패한 관료들에게 있다고 진단한다.

'이른 아침이나 오후 또는 저녁에 비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나는 남자들이 일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집안이나 집 앞에서 쪼그리고 않아 조그만 중국식 파이프를 입에 물고 빈둥거리거나, 골목길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거나 잠을 잤다. 반면에 작고 추하며 고생 때문에 여윈 여자들은 살림을 도맡으며 요리하고 빨래를 했다. 모든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다. ---조선의 여성들은 짐 싣는 동물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다. 남자들은 이른바 노예를 갖기 위해 여자와 결혼한다.

---조선 남자의 욕구는 그리 크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집을 지으며, 집 안 시설이나 가구 같은 것은 없고, 정말 필요한 살림 도구는 매우 소박한 것들이다. 아내가 그의 채소밭을 경작하고, 만약 담배나 약간의 고기를 살 돈이 필요하면, 들판에서 고용살이를 하거나 아내에게 며칠 동안 고용살이를 시킨다. 만일 그들이 정말 필요한 생계 유지비보다 더 많이 번다면 관리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이 관리들은 조선의 몰락과 이곳에 만연한 비참함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p87)

저자 헤세-바르텍은 더 나아가 조선의 부패한 관료 시스템은 청나라에 의해 보호 유지되며, 조선은 그 대가로 청나라에 공물을 보낸다고 쓰고 있다. 당시 청나라에 보내는 공물은 국가 예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났다고 한다.

'조선이 중국에 보내는 공물을 적어 보겠다. ---100온스(2.8kg)의 금과 1천 온스의 은, 쌀 1만 가마니, 비단 2천 필, 광목과 그 밖의 옷감 1만 필, 한지 전지 2만 장, 좋은 칼 2천 자루, 쇠뿔 1천 개, 짚 매트리스 40개, 염료재 200 파운드, 후추 열 부대, 호랑이 가죽 1백 장, 사슴가죽 1백 장, 비버 가죽 4백 장 등등.

이 공물을 베이징으로 운반하는 사신단은 여행 내내 중국 영토 내부에서 황제의 손님으로 대접받으며, 베이징에서 아주 값나가는 선물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가장 좋은 선물은 이들과 이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관세 없이 자신들의 짐을 중국으로 반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편과 옷감, 생사, 그 밖의 물품들이 이런 방식으로 중국으로 밀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왕의 사신들은 대개 부자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다.'
(p98)

과거제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형식적인 것. 관직은 높고 낮고 할 것 없이 모두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왕도 고위 관료들에 볼모로 잡혀 힘을 쓸 수 없다며, 관료들이 백성과 왕을 갈라놓고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직은 제일 높은 값을 부르는 자에게 팔리고, 호의와 친척관계, 복수심이 여기에 한몫을 한다. 조정을 지배하는 민씨 가문은 왕의 주위에 단단한 사슬을 둘러 왕을 백성들로부터 격리시켜 놓고 있는데, 만일 왕이 이 사슬을 끊으려 한다면 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왕은 아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며, 그의 가족 중에서 좀 더 고분고분한 후계자가 왕위에 오를 것이다.'(p108)

이런 상황을 비집고 조선 땅으로 들어온 일제는 오히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저자도 이런 일제의 주장에 동조하는데, 이후 일제의 만행을 알지 못하고 쓴 것이겠지만 읽는 사람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현재 조선에서 활보하며 총검과 대포로 수도를 점령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이처럼 백성에게 참을 수 없이 되어버린 부실 경영이 오직 외세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옳은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관리가 군주와 백성들 사이를 중재한다. 조선에서는 관리들이 왕과 백성을 분리시키는 단단한 벽을 형성하고 있다.'(p153)

금권에 휘둘려 작동하지 않는 사법 시스템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디에도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는 백성들은 각종 단체를 만들어 스스로 권리 지키기에 나선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착취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데, 결국 백성들이 모든 것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고 법에 호소할 수도 없다. 그래봐야 더 큰 권력을 지녔거나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는 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개인이 관리에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서로 다른 업종의 소유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리가 높건 낮건 간에 공통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장(場)과 규칙 그리고 재산을 가진 협회나 조합을 결성해 손을 잡았다. 시골에서도 개별 마을 주민들이 연합했다.'(p167)

불과 1백여 년 전이지만 낙후된 사회문화제도는 마치 이슬람국가 같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아니 이슬람 국가보다 못한 것이 여성들은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지만 사회적인 역할은 할 수 없다. 남편이 죽으면 정절을 지켜야 하고, 다른 남자의 노비가 돼야한다. 정절을 잃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니, 이를 노린 나쁜 사람들의 범죄의 대상이 돼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다고 당시 상황을 적고 있다.  

'이처럼 비참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 일본은 몇 주 전에 조선의 왕에게 혼자 된 여인이 혼자 된 남자와 재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할 것을 권유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하층계급에서는 재혼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궁한 상황에서는 법도 소용없는 것이다. 자신을 먹여 살리던 남편을 잃은 가난한 과부에게 두 번째 남편을 얻는다는 것은 굶어 죽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p209)

현실과 괴리된 당시 교육제도도 비효율적이고 낭비요인이 많은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중국인들이 전혀 발음할 수도 없고 말해온 적도 없는, 왜곡되고 장식이 많으며 부자연스러운 문어를 쓴다. 그래서 이 글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읽어야 한다. 이처럼 전혀 불가능한 언어로 조선인들은 문집을 쓰고, 이 문집을 옛 현인들의 말과 역사적인 예들, 속담, 선례로 가득 채우는데,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험관조차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글일수록 사람들은 글을 쓴 사람을 대단하게 여긴다.’(p211)

1894년 7월 말, 작가 헤세-바르텍은 하루가 다르게 격화하던 청일 전쟁을 피해 자신이 싫어하던 조랑말을 타고 서울을 떠난다. 제물포를 거쳐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다.

1894년, 세계는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부를 축적한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지각 변동이 이뤄지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대신들은 문을 굳게 닫은 채 기득권 싸움에만 열중해 있었다. 새로운 문물은 그것이 아무리 좋아도 당파 싸움에 밀렸다. 외부는 급변하는 데 내부는 변하지 않으니 조선이란 조직은 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소풍을 가면 왜 비가오지” 하면서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결과만 초래된다고 느끼는 현상을 우리는 흔히 ‘머피의 법칙‘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은 내가 재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이후 한반도 주변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에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세력이 정치경제적인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한반도 상황도 미국과 중국의 이런 지정학적인 헤게모니 다툼을 벗어날 수 없다.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 천문의 이로움은 형세의 이로움만 못하고, 형세의 이로움은 단합만 못하다),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소통하며 인화를 다지고, 주변 형세를 치열하게 살피지 않으면, 어떤 불행한 일이 또 벌어질 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다.

일제에 짓밟히기 전 1894년 조선의 여름은 우리에게 눈과 귀를 열어 세계를 보고, 발밑을 다질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사진= 도서 '조선 1894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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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스트리아 여행가인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이 1894년 여름에 조선을 다녀가 1895년 독일에서 출간한 여행기를 번역한 것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본 개항기 조선의 사회, 문화 보고서다. 저자는 일본 나가사키를 출발해 부산에 상륙한 다음, 배편으로 서해를 거쳐 제물포, 서울을 직접 발로 누볐다. 185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스위스 루체른 근교에서 타계한 저자 헤세-바르텍이 한반도 땅을 밟은 것은 공교롭게도 1894년이었다. 그해에 조선에서는 안팎으로 큼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1월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6월에는 갑오개혁이 실시되었으며, 8월에는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그러한 정황을 읽을 수 있는데, 호기심 많은 이 여행가는 조선의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저자 :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
저자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Ernst von Hesse-Wartegg)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여행가. 185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스위스 루체른 근교에서 타계했다. 튀니지, 캐나다, 멕시코, 미국, 중국, 일본, 태국, 인도 등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1872년 남유럽 여행에 나선 뒤로 1875년에는 서인도 제도와 중앙아메리카로 향했고, 이듬해에는 뉴멕시코와 로키산맥을 거쳐 미국 동부로 갔으며, 1878년에는 미시시피강을 탐사했다. 헤세-바르텍은 이후로도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와 미국 북서부, 아시아 등지를 쉬지 않고 여행했다. 귀족 출신으로 20여 종의 책을 냈다.

역자 : 정현규
역자 정현규는 서울대 독문과에서 독문학 학사, 석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괴테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베일 모티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대 독일언어문화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번역가와 돌아온 탕자: 타문화 수용과 자기이해라는 관점에서 본 괴테와 릴케의 동방여행>, <손님, 경계넘기의 현상 형식> 등이 있고, 저서로 《인터미디어와 탈경계 문화》(공저)가 있으며, 역서로 《젊은 베르터의 고통》 《생각하며 읽는 과학교양》 《생각하며 읽는 문화교양》 《웃는 암소들의 여름》 등이 있다.

감수 : 한철호
감수 한철호는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고려대 사학과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고, 한림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개화기(1887~1894) 주일 조선공사의 파견과 외교활동> <개항기 일본의 치외법권 적용 논리와 한국의 대응> 등이 있고, 저서로 《친미개화파연구》 《한국근대사강의》(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 《역사적 사고와 역사교육》 《동아시아 속의 한일 2천년사》 《미국의 대한 정책, 1834-1950》 《동아시아 근현대사》(공역) 등이 있다.

 

 

머리말
1. 조선으로/ 2. 부산/ 3. 지방 도시/ 4. 황해를 지나/ 5. 제물포/ 6. 한강에서
7. 강화에서 서울로/ 8. 수도 서울/ 9. 왕과 조정/ 10. 왕비와 왕실/ 11. 조선 왕의 장례식
12. 중국 황제의 사신단/ 13. 규율 없는 군대/ 14. 정치사회적 상황/ 15. 조선인의 오락
16. 조선의 경축일/ 17. 서울 산책/ 18. 여성들의 삶/ 19. 교육제도와 지리인식/ 20. 종교관
21. 조선의 치료약과 병자 간호/ 22. 장례의식과 조상숭배/ 23. 재판절차, 감옥 그리고 고문
24. 조선의 독특한 점들/ 25. 조선의 유럽인/ 26. 제물포 나들이/ 27. 조선 팔도/ 28. 산업
29. 토산품/ 30. 러시아의 관심과 원산/ 31. 조선의 대외 교역
옮긴이의 말

 

 

세계 일주를 하던 나는 1894년 여름 일본을 떠나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던 조선으로 여행을 시도했다. 조선의 남부 지방은 정부에 대한 봉기가 극심했고, 동아시아의 두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은 조선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전쟁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의 정치적, 문화적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적기였다.……

오랜 역사를 지닌 조선에서는 만주인이 지배하는 중국 문명이 일본 문명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조선을 흥미롭게 만드는 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출판된, 거의 외국어로만 쓰인 얼마 안 되는 조선 관련 서적들은 이러한 상황을 다루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자들이 조선을 직접 방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보고를 읽고 책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 <머리말에서>


오스트리아 여행가 헤세-바르텍,
동아시아를 뒤흔든 1894년 여름에 조선을 누비다

부산에서 제물포, 서울로 여행하며 조선을 직접 관찰
청일전쟁기 조선의 사회, 문화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


이 책은 오스트리아 여행가인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이 1894년 여름에 조선을 다녀가 1895년 독일에서 출간한 여행기를 번역한 것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본 개항기 조선의 사회, 문화 보고서다. 저자는 일본 나가사키를 출발해 부산에 상륙한 다음, 배편으로 서해를 거쳐 제물포, 서울을 직접 발로 누볐다. 185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스위스 루체른 근교에서 타계한 저자 헤세-바르텍이 한반도 땅을 밟은 것은 공교롭게도 1894년이었다.

그해에 조선에서는 안팎으로 큼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1월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6월에는 갑오개혁이 실시되었으며, 8월에는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그러한 정황을 읽을 수 있는데, 호기심 많은 이 여행가는 조선의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것이 조선을 다룬 기존의 책들을 뛰어넘는 점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당시 조선의 제도와 문물에 대한 종합보고서의 성격도 지니며, 그런 만큼 사료적 가치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철저히 직접 보고 들은 사실에 기초한 기록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여행가인 저자는 튀니지, 캐나다, 멕시코, 미국, 중국, 일본, 태국, 인도 등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했다. 1872년 남유럽 여행에 나선 뒤로 1875년에는 서인도 제도와 중앙아메리카로 향했고, 이듬해에는 뉴멕시코와 로키산맥을 거쳐 미국 동부로 갔으며, 1878년에는 미시시피강을 탐사했다. 헤세-바르텍은 이후로도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와 미국 북서부, 아시아 등지를 쉬지 않고 여행했다.

세계 일주를 하던 그가 1894년에 여행을 시도한 조선의 남부 지방은 정부에 대한 봉기가 극심했고, 동아시아의 두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은 조선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 만큼 중국과 일본, 조선의 정치적, 문화적 관계를 이해하기에 적기였던 것이다. 그는 서양에서 당시까지 출판된 얼마 안 되는 조선 관련 서적들은 이러한 상황을 다루고 있지 않다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자들이 조선을 직접 방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보고를 읽고 책을 썼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


“조선인들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 있다”
“조선인들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 있다.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낼 것이다.” 6월 말 부산에 도착한 그에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비교적 깔끔하게 정비된 일본인 거주지였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자마자 그는 조선의 쇠락한 모습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부산을 떠나 제물포를 거쳐 서울에 이르러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500년을 이어온 왕조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서울은 너무도 초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조선이 처한 일반적 조건은 그의 판단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미 중국인과 일본인을 접해본 그의 눈에 조선인은 앞의 두 나라 사람들에 비해 뒤질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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