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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계간 시세계 여름호 나의 문학관 10호에 부족한 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나의 문학관 (10회)

- 신성수 시인 편

신성수(시인) 연보




*경북 의성 출생(1960년)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졸업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수료

*월간 『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1993년)

*제12대 의정부문인협회 지부장

*의정부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의정부문인협회 9대 사무국장 역임

*월간 『문학세계』 선정 󰡐한국 문학을 빛낸 200인󰡑 선정 작가(2010~2011, 2013년)

*의정부시 경민고등학교 교사

*저서 『목련, 낮은 곳으로 오다』

 공저 『문과 문 사이』 『아름다운 붕괴』 『지상의 따뜻한 집』 『밤에 우는 바다』 『가던 걸음에 쉼표를 찍고』 『용도․폐기 처분에 관하여』 『秋月』 『등불만 한 그리움을 켜고』 외 다수


■ 문학 부문 수상

2004년 의정부문학상 시 부문 수상

2009년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회 문학공로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의정부지회 공로상

2015년 한국예술문화단체청연합회 공로상

2015년 홍문종 국회의원 표창장(예술문화 부문)


■ 교육 부문 수상

1999년 경기도 의정부교육청 교육장 표창(잘 가르치는 교사)

2000년 경기도 의정부교육청 교육장 표창(잘 가르치는 교사)

2003년 경기도교육청 교육감 표창(으뜸 경기 교육 실천)

2014년 경기도도지사상(21세기를 여는 희망 경기교육 부문)


■ 기타 부문 수상

2008년 경민고등학교 상반기 교내토론대회 지도교사상

2011년 한국경제교육협회 청소년 경제 교육 신문 교사 멘토상

2012년 경기도 교원 단체 총연합회 스승의 날 특별공로표창

2012년 한국경제교육협회 이 달의 멘토상

2013년 관동대학교 입시 자문교사 표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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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낮은 곳으로 오다




<나의 문학관> 원고 의뢰를 받고 여러 날 부끄러웠고 왜 수락하였을까 반성도 많이 하였습니다. 등단한 지 20년이 지났고,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시간도 40년에 이르렀지만 '나는 시인이다.', '시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고 자신이 있게 말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기만 합니다. 


분에 넘치게 월간 『문학세계』에서 시인으로 등단하는 영광을 얻었지만 바쁜 일상을 이유로 첫 시집조차 15년이 지나서야 출간하였고 지금도 두 번째 시집을 상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초고를 겨우 수정하여 보내는 실정입니다. 


제 작품이 실린 지면을 대하고 보면 금세 낯이 화끈거리게 되는데, 그 까닭은 내면의 깊이보다 낱말 위주로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퇴고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지만 다음 작품도 내적인 완성도가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는 시인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재를 찾아 머리가 아닌 가슴을 담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는 힘들어도 시인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동식물도 넉넉한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저 역시 자연에서 소재를 많이 찾았습니다. 또한 '인간, 환경, 사회'를 소재로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명은 발달했지만 인간은 퇴보해 버린 21세기, 이 시대를 사람이 그리운 시대라고까지 말하는데 시는 이 시대의 아픔을 깊이 담아서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지면에 나의 문학관을 밝히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나 제가 시인의 꿈을 갖게 된 고등학교 시절과 등단, 그리고 첫 시집 출판, 의정부문인협회의 추억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우리는 푸른 동산에 뛰어 노는 사슴 떼 생각 깊은 높은 품위에 소박스런 눈빛들. 역사와 전통 속에 자란 문학의 요람. 사랑하는 휘문 문예반.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지성과 낭만을 고루 갖춘 우리. 영원히 역사에 빛나리로다. 사슴의 노래 휘문의 자랑. 휘문 문예반 사슴의 모임. 우리 휘문 문예반.


이 노랫말은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반가입니다. 휘문고등학교 문예반은 한국 근현대 문학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종화, 홍사용, 박용철, 안회남, 이무영, 이태준, 최태응, 오장환, 방영웅, 오세영,  김영랑, 이인영, 홍명희, 이범선, 조흔파(본명 조봉순), 전광용, 정한숙, 박재륜, 박노갑, 권한, 이항구, 전무길, 계용묵 선배님과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인 김훈 선배님에 이르기까지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수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문학의 산실이었습니다. 


저는 사춘기가 일찍 시작되었고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방황의 시간도 길었습니다. 제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허구의 저를 만들기도 했고 자기 합리화도 많이 했었습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출판업에 종사하셔서 독서는 제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힘을 얻는 곳이었으며 삶의 목표를 작가로 세우는 데 소중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휘문고등학교에 배정을 받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문예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훌륭한 선배 문인들을 배출한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선배님들의 작품을 늘 읽고 외우고 좋은 문장을 베껴 써 보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 갔습니다. 특히 제가 시인이 될 재능이 있다고 격려해 주신, 이미 고인이 된 시인 정의홍 선생님은 제 사춘기를 모두 받아주시고 사랑으로 격려해 주신 분입니다. 첫 시집도 출간해 주시기로 하셨는데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보내드렸던 원고는 선생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져가셨습니다. 선생님의 유품을 정리하던 사모님께서 제 원고를 발견하고 일면식도 없는 제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셔서 긴 시간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때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와 소설을 썼으며 제 방황의 안식처가 원고지였습니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글을 썼고 휘문고등학교의 상징인 󰡐휘문의 밤󰡑이라는 문예 행사 무대에서 작품을 발표하던 날은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비원 옆 원서동 교정을 떠나 강남으로 이사하던 그날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현대그룹에서 공사를 위해 학생 통제 구역을 설치하였는데 그 베니어판에 박인환 시인의 시를 썼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희중당 담쟁이덩굴로 대표되는 그리운 모교, 교목이 목련이었는데 제가 모교 100주년 문화예술제에서 「목련, 낮은 곳으로 오다」라는 모교를 그리는 시를 쓰는 계기가 되었고 제 첫 시집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여러 대학교 백일장에 참가하였고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감히 시조를 써서 입상하여 조선시대 유생과 같은 복장을 하고 시상식장에 섰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리운 선배님들이 떠오릅니다. 고인이 된 심재찬, 이형구 선배님은 생존하였다면 현재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분들입니다. 중견 탤런트인 김학철 선배님도 시적 역량이 뛰어났습니다.


휘문고등학교는 '희중문학상'이란 문학상 제도가 있는데 재학 중 대상인 월탄상을 수상하여 소설가인 박종화 대선배님께 상을 받았던 것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 등단

어둠 속에서 오히려 어둠 저쪽의 밝음을 본다는 것은 마음의 눈을 열어 사물과 세계의 저쪽의 것을 보는 시정신적 '터득'일 수 있어서 신성수 군의 「그림자」를 눈여겨본 터다. "어둠이 올 때마다 밤은 촛불을 켜고 서 있었다."라는 그 밤의 어둠을 밝히는, 즉 어둠 저쪽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려 촛불을 켜는 화자가 바로 그림자로 표현된다.

그래서 어둠의 "대문을 두드리면서" 세계의 저쪽을 투시해보는 마음의 눈이 열려 밤의 어둠과 그 어둠의 문을 두드리는 그림자가 동화되면서 어둠 저쪽의 세계와 일체감을 이루게 된다.


1993년 모지(母紙)인 월간 『문학세계』 3․4월호에 실린 부족한 제 등단 작품인 「그림자」를 심사평을 한 랑승만 선생님과 김원중 선생님의 귀한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는 "시는 영혼으로 쓰고 가슴으로 써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진통하고 고뇌하는 영혼에서 빚어져 나온 언어는 그만큼 보다 진지하고 진실되고 진리의 향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다 진실한 영혼의 음성으로서의 언어창조의 작업으로써 승화되기 때문이라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귀한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영혼과 가슴이 없는 작품을 쓰고 발표한 세월이 너무도 아파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정중한 용서를 빌며 계속해서 작품에 정진하고 제가 살고 있는 경기 북부 문화 허브 도시인 의정부 문학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당선소감에 󰡐서울창작문학회󰡑 동인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는데 여러 사정으로 의정부로 이사를 온 후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 죄송하기만 합니다. 특히 시인 안만식 선생님께 지면을 빌려 죄송한 인사를 올립니다.




3. 
목련, 낮은 곳으로 오다


첫 시집 『목련, 낮은 곳으로 오다』에 귀한 서평을 해 주신 시인․문학평론가인 이끌림(정유지) 선생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두 부분으로 격려해 주셨는데 첫째는 <과학보다 더 정교한 시선, 자연을 흡입하다>라는 소제목의 평으로,


자연에 몰입한 신성수 시인의 시각은 달관의 경지에 다다른 자아성찰의 완숙미를 갖고 있었다. 그 시선 속에는 과학보다 정교한 이미지로 자연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그 시선 속에 흡입된 자연은 넉넉한 활유(活喩 : 무생물(無生物)을 살아 있는 생물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일)의 공간을 넘나들며 인간의 존재의의에 대한 사유의 흔적들이 묻어나고 있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자기 존재인식과 소통의 미학>이라는 소제목의 평에는


시인은 존재론과 인식론을 폭넓게 점유하고 있었다. 마치 봄날 만개한 꽃과 별빛의 이중주를 통해 자연과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새벽이슬의 신비를 갖고 있었다. 그 소통의 궁극적인 대상은 바로 인간이기도 하고, 화자 자신이기도 하다. 그 소통은 한 마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소통의 연결고리는 화자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에 귀결된다는 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귀하게 격려해 주신 선생님을 바쁜 일상을 핑계로 찾아뵙지 못했으니 고개를 들 수도 없으며 월간 『문학세계』에는 더욱 드릴 말이 없습니다. 




4. 
의정부문인협회 


제가 "시란 이런 것이다."라고 조심스럽게 표현하게 된 것은 의정부문인협회 9대 사무국장과 11대 운문분과장으로 봉사하며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천상백일장과 의정부의 상징 통일예술제 백일장(현 의정부예술제) 및 의정부문학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의정부 시민부터 경기 북부 지역 및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함부로 읽거나 심사할 수 없어 평소 가지고 있던 부족한 문학관을 적용하여 입상자를 선정하였습니다.

이십여 년 의정부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직장 일을 이유로 늘 적극적이지 못하여 최근에는 주어진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여 의정부 문학 발전에 미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의정부문인협회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지역 동인활동을 하였는데 늘 죄송하고 감사한 분이 새벽시의 시인 임영희 선생님과 창작촌의 시조시인 홍정덕 선생님이시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것을 약속을 드립니다.  





5. 
글을 마치며


글을 마치며 언제나 제 문학의 중심에 있는 소중한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후배님들께 치기 어린 행동으로 너무도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작품 수준도 뛰어나지 않으면서 후배들을 다그쳤던 것이 지금도 가슴 깊은 회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원히 좋은 작품을 창작하여 휘문고등학교 문예반의 명맥을 잇는 것이 조금이라도 후배님들께 용서를 비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선생님이 시인이라고 드러냈던 수많은 날들을 사과하면서 6년 전부터 의정부혁신지구사업 드림하이 동아리인 경민고등학교 솔수펑이창작반 회원들에게 문학을 사랑하고 부족하지만 습작에 충실하여 우리나라 미래 문학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되어 주길 간곡하게 기도합니다. 또한 제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읽고 격려해 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제가 시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는 사랑하는 한 사랑 경민 솔수펑이 장학회 제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문학의 재능을 갖게 해 주신 부모님께 늘 불효하여 죄송하며 하늘에 계신 장인, 장모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드립니다. 






그림자




어둠이 올 때마다

밤은 촛불을 켜 들고 서 있었다.


어둠이 살아나면서 

촛농이 떨어질 때

또옥 또옥 대문을 두드리면서

그림자가 일어서고 있다.

밤바다에 그물 걷히는

소리

싸아 싸아,


그림자가 파도를 밀어내고 있다.




*N1993년 월간 『문학세계』 등단작.







목련(木蓮), 낮은 곳으로 오다




봄 신명이다. 기특한 녀석

어제 시샘 바람에 곧 쓰러져 누울 것 같더니

신통하기도 하지

아침에 안부를 물었더니

점잖게 헛기침 한 번 하고

하늘을 우러르다.

넘치는 신명이다. 대견한 녀석

그 찬란한 자태 어디 숨겼다가

활짝 드러내는 것인가.

목련(木蓮),

네 잎사귀 넉넉하게 덜어내어

부끄러운 내 낯이나 씻을까

야윈 속살이나 닦아볼까.

아니면 그림자며 발자국이나 가려 볼까.


순백(純白)의 향연 금세

낮은 곳으로 자리하고 마는데

떨어진 자리마다 네 더운 숨결이 살아

땅은 더 씩씩한 생명을 탄생하는

놀라운 신비여,


거기 무릎 꿇지 못하면

나 일어서지 못하리라.

그 자리에 손 모아 기도하지 못하면

나 용서받지 못하리라.


목련(木蓮)이여

기꺼운 낮아짐이여

나를 가르치다. 






까치와 목련(木蓮)




봄 사월 아침 

까치 한 마리 내려온다. 

날갯짓으로 기지개 켜는데 

그 소리에 목련이 놀라 떨어진다. 

바라보던 까치가 재미있다는 듯이 

종종걸음으로 땅도 쿵쿵 울려 본다. 

가여운 목련이여 

그렇게 쉽게 더운 목숨을 내주고 마는가. 

큰 가지를 휘이 저어 까치를 타악 한 번 내려치면 될 것을 

……

까치가 웃는다. 날씬한 부리를 벌리고 까르르 웃는다. 

야윈 발목으로 목련을 짓누르고 있다. 

가지에 남은 목련들 

일제히 잠에서 깨고 서로 단단히 어울린다. 

까치 다시 날아오르는데 

목련은 어디서 오늘 한 날을 살까. 




*N총신대학교 주성희 교수님 작곡으로 가곡으로 발표된 작품.






전철 안에서 피에로를 만나다




그 젊은이는 왜 피에로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려고 했을까.

서울 나들이에서 돌아오던 전철 안

곁에 젊은 사내 한 사람이 검정색 큰 신발이 달린 피에로 기구를 들고 앉아 있었다. 

한 갈래로 묶은 긴 머리, 동그란 금속 안경테 사이로 나이에 비해 고단한 일상이 가득 배어 있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큰 신발이 자연스럽게 몸에 어울리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이 있었을까.

보조 기구가 균형을 잡아 준다지만 휘청거리는 상체를 바로잡기까지 고단한 일상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젊은이의 얼굴을 곁눈질하면서 몇 번이나 분장을 지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삶이란 온몸으로 이겨내는 거룩한 노동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코 외면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시선을 못 느낀 채 잠든 젊은 사내 곁에 큰 신발이 보조 기구에 매달린 채 전철과 같이 말없이 흔들리고 있던 가을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앞좌석에 앉은 또 한 사람의 사내를 보았다.


󰡐미래의 주인공 자리󰡑에 앉은 사내

그 뒤에 걸린 광고 문구

󰡐당신의 가치를 믿습니다.󰡑


전철 문이 열렸다. 





그날 통영에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저무는 겨울 인사라고 생각하였다.

다가오는 봄의 설익은 인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거기 통영에 청마와 초정, 

김춘수께서 살아 계심을 몰랐다.


백석이 머물렀고 정지용께서 남긴 발자취가 있음을 

참말 몰랐다.


비는 나를 꾸짖는 준엄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통영을 담으려 왔느냐고 

발만 들여놓으면 되는 줄 알았느냐고


함부로 쏟아 낸 말이 얼마나 되는지

아끼고 또 조심한 낱말들은 얼마나 되는지


그것부터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그리고 왔어야 한다고


그날 통영에서 나는 우산을 쓸 수가 없었다.

얼굴과 속살이 씻겨 나가는 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히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릎도 꿇지 못하고

여린 동백이 젖는데도 가려 주지도 못하던

어느 날 밤.


청마 유치환, 초정 김상옥, 김춘수, 백석, 정지용을 우러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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