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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짓말 공화국-2


거짓말 공화국-2 (원 글에 붙은 댓글모음)



자식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부모가 밖에 나가 거짓말 하고 출세하고 사기쳐 돈 벌고

학생에게 정직을 가르쳐야 할 선생님이 ,거짓을 심판해야 할 법조인,판사 검사가
정직한 심성을 전도해야할 종교인들이 모두 앞에서 열거한 대통령 들의 거짓 못지 않으니
한마디로 총체적인 거짓 왕국..'

 

앞에서 지적한 일본과 달리 우리는 왜 이렇게 거짓이 판치는 나라가 되었는가?

이 문제는 한일 간의 역사적인 정치구조의 차이입니다.

일본은 19세기 명치유신 때까지 봉건국가였고 우리는 그 보다 1,400년 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중앙집권 국가를 형성한 역사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일본은 다이묘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평시에 논에서 농사를 짓다가

외적이 쳐들어 오면 쟁기대신 칼을 들고 나와 싸워주어야 봉건군주도 살아 남을 수 있으니

다이묘와 주민들은 일종의 계약관계, 땅을 주고 (give) 칼로 보호 받는(take) 상호 의존적인 관계입니다.

이 정신이 현대 기업에서도 '종신고용제'로 정착되었던 것이지요.


대신 우리는 계약관계가 아니고 중앙집권 체제에서 집권자는 착취,일반 백성은 피착취 계급이 됩니다.

그 DNA 때문에 아직도 법대가서 고시 통과하기를 출세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 심서를 보면 (금장태 저,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다산이 1800년 대 초기에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당하여 백성들의 고초를 실감있게 맨 정신으로 시를 쓸 수가 없어

술을 한 잔 하고 쓴 "애절양(哀絶陽)"이란 시가 있습니다.

 

"哀絶陽"이 무슨 뜻인가? 남자가 자기 물건을 칼로 자르면서 애통해 하는 시입니다.

 

그는 농민이나 어민의 힘겨운 생활에 파고드는 서리들의 혹독한 착취의 실상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있다.

이 시대는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죽은 아비와 갓난 아이까지 군적軍籍에 올려 세금을 긁어들이는

가혹한 착취가 만연하였다. 강진에서 갓난 자식을 군적에 올려 생존의 근본까지 박탈당하는 착취를

견디다 못해 어떤 백성이 자식 낳은 것을 후회하여 자신의 성기를 잘라낸 사실을 그 자신이 직접 듣고

그 극한의 참혹한 정황을 〈애절양哀絶陽〉이라는 한 편의 시로 처절하게 고발 한 것이다

 


"한밤중에 책상 치고 별떡 일어나

높은 하늘 우려러 길이길이 탄식하네...

곳곳에서 하늘을 부르며 울부짓누나 

 

너무나 억울해 양근을 잘라버리기까지 하니

생각할수록 속이 끓어올라

술이나 들이키고 무심으로 돌아가 버릴까

 

어찌하면 일만 개 대나무로 

천길 되는 큰 빗자루 만들어내어 

쭉정이 티끌 먼지 싹싹 쓸어내어 

바람에 한꺼번에 날려버릴까

 

깊이 생각하면 애간장만 타기에 

부어라 또 술이나 마신다네 "

 

 

조선왕조 500년가운데 정조 시대가 가장 태평한 시대였고 선군이 다스리던 시대의 참상이 이 정도였으니

제도와 법을 바꿔 보아도 이미 관청은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 아니라 백성을 착취하는 것이

그 생리로 굳어진 상황이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苦政益於虎). 라고 하지 않았던가.

관청이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호랑이처럼 사납고 무서운 존재일 뿐임을 밝히고 있다. 

 

문창극이 총리에서 낙마하게 된 주 원인이 된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 중 '비숍'여사의 얘기가 생각난다.

조선의 양주마을에서 본 조선인들은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문란하였는데

러시아의 안치혜 마을의 조선인들은 한 마디로 부지런하고  당당하고 부유한 영국 남자 같았다고.. 

 

이 마을의 지도자는 유명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그의 아버지는 함경북도 양반집의 머슴이었다.

흉년에 마을 주민들이 굶어 죽게 되어 양반집 앞에서 곡식을 구걸 했으나 이를 거절하는 것을

보다 못한  최재형의 아버지가 곡간 문을 열어주고서는 가족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하여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로 간 것이다.

 

그러나 최재형은 어린시절 배가 너무 고파 가족을 버리고 혼자 울라디보스토크로  새 삶을 찾아 갔으나

굶주림에 실신 한 것을 러시아의 한 선장이 이를 발견하고 집에서 간호하여 양자로 삼았다.

그는 선장을 따라 세계 일주를 하면서 흑해로 지금의 센트페테스부르크까지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장사하는 법을 배운다. 거기서 얻은 상술로 부를 축적하여 러시아에서 조선인 마을을 이루었을 뿐아니라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하도록 필요한 이또의 만주 방문 일정 정보와 거사에 필요한 권총,

그리고 실탄사격 훈련도 그가 지원한다.(이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임)  

 

조선왕조 말기에 고종이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최재형을 지금의 재무부 장관에 임명하고자 하나

최재형은 본인이 천민 출신인데다가 러시아 국적을 이유로 사양한다.

여기서 최재형의 얘기와 비숍여사의 얘기를 자세히 하는 이유는

바로 거짓말 왕국의 폐쇄를 위한 해답이 여기에 있지 않나 하여 부언한 것이다.

 

그 이유를 비숍여사는 양주에서는 양민 숫가락 까지 일일이 다 세는 양반들의 수탈과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있었던 반면 러시아에서는 조선인들이 이러한 가렴주구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양반들의 수탈이 민족성마저 인간성마저 변하도록 한 주범"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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