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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箕子東來說 (윤여성)
東夷族이 中原에 세운 殷이 600년 만에 망할 당시의 최고 지식인 箕子는 바른 말 한 죄로 옥에 갇혀 있었다.  은을 멸한 周武王이 찾아와 禮를 표하고 말 하기를, "기자여!  나는 백성 다스릴 줄을 모릅니다.  그들을 위하여 나를 도와 주오." 하였다.  이에 기자는 洪範九疇를 내려 주고, 선조들의 고향 遼西의 朝鮮國을 향하여 떠나가니 流民들이 구름처럼 따라서 이동하였다.  이런 사실은 書經, 史記, 漢書에 나와 있고, 傅斯年은 "은의 유민이 고조선에 정착한 사실은 마치 金이 망한 후 혼돈강 주변에서 여진족이 세력을 보존한 것이나 元이 망한 후 사막 북쪽에서 몽고족이 세력을 보존한 것과 같다."고 고증하였다.  書經 洪範篇에 箕子曰,

無偏無黨하면 王道蕩蕩하고
無黨無偏하면 王道平平하며
無反無側하면 王道正直하리니
會其有極하면 歸其有極하리라.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면 정치는 탄탄할 것이요,
기울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면 정치는 평평할 것이며,
반대로 않고 삐딱하지 않으면 정치는 바르고 곧을 것이니,
진실한 자들을 모으면 진실하려는 자들이 따르게 되리라.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기자신앙이 있었으니, 기자가 文化創始의 敎化를 일으켜 八條禁法을 시행하니 백성들이 믿고 따랐다는 것으로, 삼국사기와 제왕운기에 적혀 있다.  또 조선초기 유학자들은 고조선과 고구려가 강성하여 중국과 맞서는 大帝國이 된 것이 기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식하여, 평양에 箕子廟를 세우고 극진히 제사지내게 하였다.  율곡선생은 箕子實記를 저술하여 중용정신을 정치에 구현하고자 노력하였고, 英祖는 탕평의 기치를 내걸고 마침내 180년간의 당쟁을 종식시켰으니 이땅에 홍범의 정치를 구현한 聖君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徐氏, 奇氏, 선우씨 등은 기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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