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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풍경"
<P>얼마 전 갑자기 내 스튜디오로 들이닥친 친구의 강권에, 잔뜩 밀려있던 일들을 제치고 일탈을 감행했다.<BR>오랜만에 그린 위도 거닐고, 여러 잡다한 스트레스가 담겼을 법한 공을 애꿎은 하늘을 향해 휘두르며 피곤한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다가 그만 그 날의 바람이 진짜 바람이 되어 온몸에 구멍이 난 듯 오한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BR>하지만 이미 잡혀있는 스케줄은 어쩌지 못하고 최소한의 약속만 뒤로 미루며 겨우 겨우 지탱해 나갔는데...<BR><BR>중요한 상의 심의위원회 최종 모임에도 혼자 늦게 도착하여 나머지 바쁜 위원들에게 매우 큰 실례 범하지를 않나, 마침 몇 달 전부터 잡혀있던 협연의 리허설 때도 독감 걸린 모습으로 비실비실 나타나 그 쪽 지휘자가 불안에 떨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 앙상블 송년음악회 악보를 준비하다가 정신없이 몇 개의 악보를 빼놓아 몇 연주자를 마냥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BR>또 연말이면 사방에서 연락 오는 각종 모임에서 어떤 이는 거의 스토커 스타일의 전화를 새벽에도 울려 가뜩이나 피곤한 몸을 더욱 오그라들게 만들기도 한다.<BR>옛날 같으면 상응하는 대가를 연구해내느라 잠을 설쳤겠지만 그럴 기운도, 가치도 못 느꼈다.<BR>핸드폰의 매뉴얼을 뒤져 스팸 처리하는 기능을 찾아낸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 정도였지...<BR><BR>가을 들어 부쩍 바빠진 음악계 일들 가운데서 건강을 조심해야 했는데, 스트레스 해소한다며 날아가는 공의 재미에 흠뻑 빠지는 일탈을 택했다가 결국 지독한 몸살로 녹초가 되었다. <BR>며칠을 끙끙 앓다가 겨우 추스르고 횅해진 얼굴로 거실에 누워 쉬는데, 넓은 거실 창을 통해 건너편 강둑 위의 초겨울의 스산한 풍경이 들어온다.<BR>이미 산과 들에는 추수 뒤의 황량함 위로 낙엽이 뒹굴고 있었고, 나무들도 잿빛 옷으로 갈아입어 다가오는 동장군에게 자리를 내주며 한껏 예를 갖추고 있었다.<BR>나의 어깨는 곳곳에 난 구멍들 사이로 찬 바람이 맹렬하게 기세를 피우면서 견딜 수 없는 오한을 일으키고 있었고...<BR>할수없이 가을에 한 차 들여놓은 참나무를 몇 개 집어다 페치카에 넣고 태워본다.<BR>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느덧 오한이 가신다.<BR>천정으로 연결된 이중연통에서 맹렬하게 타는 장작 소리와, 하늘을 향해 빨려 올라가는 참나무 타는 냄새에 온 집안이 푸근해지자 먼젓번 살던 문형산 산속 마을의 기억이 참나무 향과 함께 진하게 떠오른다. <BR>함박눈 내린 흰 눈밭 위를 신나게 뛰놀던 진돌이와의 추억들과...</P> <P>무거운 눈으로 휘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아담하게 보이던 전원교회...<BR>불현듯 얼굴이 달아오르고 입안이 마르는 것 같아 옆에 타 놓았던 따뜻한 꿀차로 입안을 추긴다.<BR><BR>그때 거실에 길게 널브러져 공상에 잠긴 나의 눈 안에 보기 드문 희한한 풍경이 들어온다.<BR>건너편 강둑 위로 자전거 세 대가 지나가는데,<BR>맨 앞에는 중간 정도 사이즈의 자전거가 앞장을 섰고,<BR>두 번째에는 아버지 자전거가 유유히 간다.<BR>그리고 맨 뒤에는 세 발 자전거를 탄 아이가 뒤질세라 바쁘게 양발을 내젓고 있었다.<BR>크기가 각각 다른 자전거 바퀴의 회전하는 풍경이 얼마나 정겹고 재미있게 보이던지...<BR><BR>“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BR>그건 아니지. 더구나 지체가 부자유한 노인 보고 비키라고 하면 안 되지!<BR>바로 이것이다.<BR>세 자전거에 탄 각각 키 다른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한 곳을 향해 같이 나아가고 있었다.<BR>뭐라 분주하게 떠드는 순진한 아이들의 소리와 함께...<BR><BR>그날 자전거 탄 정겨운 풍경과 참나무 장작 타는 향긋한 전원 향에, 마당으로 향한 구조물 탑들 사이를 지나는 황량한 겨울바람 소리가 아무런 위세를 떨치지 못했다.<BR></P><BGSOUND balance=0 src="http://music.m-letter.or.kr/music/music_5/시월애OST-피아노 연주곡.wma" volume=0 loo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