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밸얘 69 - 투 써 위드 러브 I
🧑 김개석
📅 2004-02-19
👀 493
If you apply reason and logic to this career of mine, you’re not going to get very far. The journey has been incredible from its beginning. So much of life, it seems to me, is determined by pure randomness. - Sidney Poitier
만약 당신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내 인생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의 이러한 (다양한) 경력에 대하여 이성과 논리를 적용한다면, 당신은 별다른 성과를 못볼 겁니다. (나의 인생) 여정은 애초부터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란 대체적으로, (적어도) 내게는, 순전한 무작위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 (얼굴은 비록 검지만 엄청난 강인함과 엄청난 겸손함을 겸비한 보기 드문 영원한 신사) 씨드니 포이티어
지난 일요일 늦은 밤 이곳 실리콘 밸리에서 무심코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고 있던 나는 한순간 호흡을 멈춰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반가움으로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관심있는 개인들이나 잘 나가는 각종 업체들의 순수한 자발적인 후원금에만 의지하며 그 오랜 세월 동안 매년 철저한 공공의 이익만을 위하여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 미국의 대표적인 공영 방송인 PBS에서 미국의 대가들(American Masters)이라는 고정 프로그램을 통하여 마침 낯익은 얼굴 하나를 집중 조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타오르며 진솔하게 꿰뚫는 눈길(Piercing Gaze)과 하나도 꾸밈이 없이 순간적으로 던져지는 절제되고 매력적인 미소(Magnetic Smile) 뒤에서, 독특하고 강력하고 포용적인 인간적 커리스마를 감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도록 적시적소에 내재적으로 발산하는 씨드니 포이티어는, 그 옛날 내 어릴 적의 휘문 단짝이었던 양인명과 함께 (1967년작) 투 써 위드 러브(To Sir, With Love)를 서울의 어느 유명 극장에서 단체 관람한 직후부터 이날 이때까지 늘, 나로서도 알 수 없는 대단한 개인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수십 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와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항상 필수적으로 다소 심각한 개인적 고뇌의 과정을 거친 듯한 그의 신중한 평소 일거수일투족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고 미국인 전체 그리고 더욱 나아가서는 이 지구상의 현대 인류 전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그가, 이제 자신의 값진 삶을 느긋하게 종합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철학적 위치에서, 남들이 그간 피상적으로 느껴왔던 것처럼 늘 그렇게 순탄하고 화려하지만은 않았던 그의 인생 역정 전반을 하나하나 회고 형식으로 손수 자상하게 총정리하고 있었다. 그날 그의 흥미진진한 인생 얘기가 끝날 때까지 나의 숨막힘 증상은 물론 계속되었다.
지난 1929년의 미국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 직전인 1927년 2월 20일, 자신들이 직접 온갖 정성들여 수확했던 토메이도(Tomato)를 단 한 푼이라도 더 좋은 값에 팔아치우기 위하여 수백 리 뱃길을 마다 않고 미국 흘로리다주의 마이애미를 찾았던 자그마한 섬나라 바하마(Bahamas)의 한 가난하고 못배운 흑인 농사꾼 부부는 계속되던 힘든 여독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않게 거기서 겨우 한 줌 밖에 안되는, 그러나 속지주의 원칙 하에서의 어엿한 미국 시민인, 미숙아(Premie)를 낳게 된다.
한편, 고향에서 아내의 출산을 지겹도록 많이 당해 봤던 남편은 여덟이나 되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중 막내로 태어난 그 사내 아기가 정상아의 절반도 안되는 너무나 조그마한 핏덩어리였으므로,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금방 죽을 것이라고 지레 예상하여, 일단 땅에 묻을 관을 구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으나 미국의 관값이 너무나 비싸서 포기하고 대신에, 쓸 만한 구두 상자 하나를 어디서 구해 온다. 그러나 그게 과연 누군가. 백만 천만에 하나 반드시 하늘이 특별히 점지하셨을 우리의 씨드니 포이티어가 아닌가. 그 때의 초보적인 의학 수준으로서는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후, 계속 무럭무럭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영국령 바하마의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고양이섬 즉 캣 아일런드(Cat Island)의 모든 경제적 환경은 철저하게 열악했으나, 사회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다수(Majority)인 동네 흑인들 사이에서 그는 아무런 구김살 없이 떳떳하게 평범한 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의 바로 이러한 너무나도 평범한 점은 나중에 그의 복잡한 내면 정신 세계에 결국 엄청난 인종적 정의감(Racial Justice)의 지렛대를 일으켜 세우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줄곧 소수(Minority)라는, 특히 선조가 거의 모두 하찮은 노예(Slave)였다는, 상대적 멸시 개념을 등에 업고 살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의 일반 흑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리, 전혀 다른 세상 즉 다수와 소수라는 산술적 개념이 아예 없는 올바른 세상을 그것도 다수의 일원으로서 만끽할 수 있었던 고귀한 산 경험의 결과로 인하여, 그는 나중에 혹독한 흑백 인종 차별 문제에 관한 한 다분히 비판적인 날카로운 안목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떳떳하게 후천적으로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대체적으로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인지 이곳에 있는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들과 외국에서 온 흑인들과는 뭔가 어딘지 모르게 정신적으로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함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하여튼, 열한 살 때 부모를 따라서 바하마의 수도인 나쏘로 이사하게 되었던 그는 생애 처음으로 전기와 자동차를 대하며 드디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한 편의 영화를 인상깊게 보게 되고, 공식적인 학교 교육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감수성이 한창 예민했던 열세 살 때 그만 지속되던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말미암아 애지중지하며 다니던 초등학교를 단 1년 반 만에 아깝게도 중퇴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지적인 내면 세계를 항상 지배하고 있는 불타는 학구열에는 결코 변함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이날 이때까지 밑도 끝도 없는 끈질긴 독학을 성공적으로 계속하고 있다. 그의 두번 째 마누라인 현재의 백인 아내에 의하면, 그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서 엄청난 독서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현재 그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해박한 지식은 철저한 체계적인 자습의 결과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한번 시작한 것은 어찌해서든 끝을 보고야 마는 철저하게 꼼꼼하고 꼬장꼬장한 성격이라서 다소 딱딱한 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생각할 줄 아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교양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이므로,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너무나 즐겁다고 한마디 강조한다. 인간의 교양이란 역시 한낱 학교에서 편하게 주워 담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또 한번 보기 좋게 증명된 셈이다.
너무나도 찢어지게 가난하던 집안 형편을 돕기 위하여 그는 열다섯 되던 무렵 손위의 형 한 명과 함께 미국의 흘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소위 무작정 상경을 한다. 그 당시 가난한 바하마에서 부유한 미국으로 배를 타고 간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누구든지 일단 미국에 가기만 하면 천지에 깔려 있는 금덩어리를 주워서 커다란 편지 봉투에 넣어 고향인 바하마로 부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착한 마이애미의 1941년 현실은 그런 금덩어리 천국이 절대로 아니었음은 물론, 곧바로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이어졌고, 나름대로의 구겨지지 않았던 철학적 주관이 뚜렷했던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말도 안되는 온갖 기발한 인종 차별 제도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금덩어리 구경은 커녕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너무나도 답답한 나머지 그 당시 마이애미의 여기저기서 줄곧 닥치는 대로 입바른 말을 하고 다니게 된다. 그러나 과연 계란으로 혼자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 결과 급기야는, 눈과 코입 부분에 똥그란 구멍이 세 개 뚫린 높은 원추형의 하얀 모자와 하얀 두루마기를 걸치고서는 그 당시 평소에 뭘 모르고 함부로 까불거나 이래저래 한번 찍힌 흑인들을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괴롭히거나 아예 쥐도 새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죽여버리기 위하여 허구한 날 밤만 되면 이글거리는 횃불을 들고 떼지어 몰려다니던 큐 클럭스 클랜 즉 KKK(Ku Klux Klan)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는 형의 긴박한 언질을 전해 듣고서는 그 즉시로 단돈 3불 만을 잔뜩 움켜쥔 채로 뒤도 안돌아다 보면서 혼자서 드디어 아무 연고도 없는 대망의 뉴욕으로 향한다.
기막힌 천신만고 끝에 겨우 열여섯의 새파란 나이로 혈혈단신 겨우겨우 도착한 1943년의 뉴욕은 생존경쟁은 아주 치열했지만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우선 급한대로 늘 번잡한 버스 종점에서 매일 잠을 해결하다가 한번은 떠돌이 부랑자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론 같은 피부빛의 흑인들이 왕창 몰려 사는 할렘이었으므로 무엇보다도 수적으로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어떤 조그만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청소하는 뻐스보이(Busboy)로 취직한 그는 정말 뼈빠지게 열심히 일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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