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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홍건(63회)교우, 육사 3대 집안 탄생 (안영규선배님께서 올린글)
[이 가족이 사는 법] <31> 육사 3대 박홍건 대령네
\"군인정신은 우리집 뿌리\" 식구끼리 인사도 경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패튼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는 박정인(74)씨는 “전쟁, 그리고 전쟁이나 다름없는 우리네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고의 무기는 원자탄도 수소탄도 아닌, 군인정신”이라고 말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걷는 이 노인은 ‘귀신도 무서워했다’는 제3사단 백골부대장 출신의 예비역 육군준장. 한국전쟁 때 박힌 파편 4개를 훈장처럼 몸에 달고 다니는 그는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치는 걸 가장 큰 영예로 아는 군인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최고의 직업”이라고 말했다.

▲ 내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손자 선욱씨(오른쪽)에게 아들 박홍건 대령(가운데)의 생도 시절 모자를 씌워주며 행복해하는 박정인씨. 그는“지금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군인으로 나가 싸울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전기병기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박홍건(49·육군사관학교 관리처장) 대령이 군인이 된 것은 아주 당연했다. 갓난아기 적부터 “아비보다 훌륭한 군인이 돼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고, 초등학생 때 이미 태권도 8장, M1소총 16개 동작을 익혔다.

외출할 때는 언제고 별 4개 달린 미니 군복을 입었다. 아버지가 특별 주문제작한 일명 ‘대장옷’.

“어렸지만 군복을 입고 있으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스스로 의젓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6시 기상에 밥알 하나 흘리지 않고 먹어야 하는 엄격한 교육에 익숙해서 아버지 앞에선 어리광부린 기억이 거의 없죠. 한국전쟁 때 사망통보를 받았을 만큼 사지로 들어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당신처럼 저 역시 강한 사람으로 커주길 기대하셨습니다.”

▲ 전쟁의 사선을 함께 넘나들었던 할아버지 박정인씨의 자랑스런 군모들. 이 집의 가보 1호다.

대장옷은 선욱·신욱(17) 쌍둥이 손자들에게도 그대로 대물림했다. 손자들 사이에서도 할아버지는 ‘악명 높은’ 군기반장이다. 부정부패한 인물이라면 그게 대통령이고 대기업 총수라 해도 “저 놈은 군법회의감” “저 놈은 영창감” “저놈은 총살감”이라고 거침없이 욕설을 해대는 할아버지 앞에서 행동 하나, 말 한마디 비뚜로 했다간 싸리나무 회초리로 불벼락을 맞기 때문이다.

이 집안만의 독특한 인사법은 그래서 생겨났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며느리든 손자든 힘차게 “백골!”을 외치며 거수 경례를 해야 한다. 큰 절은 그 다음이다. 할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하는 재롱 역시 당신이 현역시절 직접 쓴 ‘백골용사 선서’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드리는 것. 그러면 전(前) 백골부대장의 훈시가 쩌렁쩌렁하게 집안에 울려퍼지는 것이다.

“결론은 늘 하나예요. 영예로운 군인가족이 되자는 것이죠. 공무원과 군인이 돈을 알면 그 나라는 망한다는 게 아버님 지론이에요. 대한민국이 굳건한 나라로 생존하기 위해선 명예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군인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아버님은 후손들이 그렇게 돼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계십니다.”

맏손자 선욱씨는 그런 할아버지의 소망을 이뤄드렸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다.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지 않는 철저한 성격으로 남편보다 더 군인 같다는 평을 듣는 박 대령의 아내 김순실씨 역시 아들의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반대했다가는 시아버님께 쫓겨나게요?(웃음) 군인 부인들이 자기 자식들은 고생 안 시키려고 모두 돈 잘 버는 곳으로만 보내는 통에 이 나라가 요모양이 됐다고 툭하면 화를 내시는데 무슨 수로요.”

그런 며느리가 마음에 쏙 드는 박정인씨는 자식들 신세 안 지려고 분당에서 혼자 산다. 신부전증으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기죽는 법이 없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기체조를 하고 직접 시장을 봐서 밥을 지어먹는다.

“간다, 하면 가는 것만 생각하지,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게 군인이에요. 일제시대 우리 아버지께서 도박하지 마라, 돈 거래하지 마라, 남의 것 넘보지 마라, 공부 잘해서 나라를 되찾으라고 주문하셨는데 아직 통일은 못 이뤘어요. 내가 못 했으면 우리 아들이, 또 손자가 도전하는 겁니다. 그게 한 집안의 전통이고, 진정한 장인정신이에요.”

(김윤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