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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개안>을 쓰신 자유로운 경계인에게!
글을 읽어보고 송두율 같은 경계인이 멀리 있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글을 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또는 알고 싶지도 않지만) 저 분의 논리는 자유로움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원칙이 선입견에 점령되어 있음을 보고 놀라움을 억누룰 수가 없군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고전적인 법의 권위는 무시하더라도 우리는 지금도 60만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대비하거나 억제력으로써 이 추운 겨울에도 전선에서 후방에서 경계 근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고생스러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을까요? 국민의 새금이 남아돌아서 일자리 없는 젊은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선처로 해석하셔도 그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사시는 그대의 자유겠지요. 그리고 대선 때마다 왜 후보나 가족의 군경력이 토론의 쟁점이 되고 후보의 자질을 따지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걸까요? 전쟁 따위는 없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낙원에 안주하고 계실 것으로 예견되는 그대가 과거에 너무 매달리는 치졸하고 옹졸한 국민성이라고 단언함도 그대의 자유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육이오란 비극적인 민족사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는 치졸하고 우매한 우리 국민은 우리의 국토가 지금도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고   전쟁의 위협이란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믿고 있답니다. 하긴 미국이란 나라도 \"리멤버 펄하버!\"란 소리에는 자유롭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남한을 배신하고 국가의 적 1호인 북한의 최고위층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자금을 받아가며 감사장까지 받은, 그러한 공로로 우리의 국익에 많은 상처를 입힌,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간첩의 임무를 띄고 내부의 적들과 공모하여 입국한 것이 분명한 적을   우리의 법으로 처단하는 것이 세상의 웃음거리라고요?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롭게 안주하시는 경계인에게 이런 말하는 것도 아깝기는 하지만 왜 송두율이 말하는 내재적 접근이 북한에는 통용되면서 남한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유엔이 걱정하고 세계가 경악하는 북한의 인권 상황은 인정하면서 우리의 반공법 적용은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야 떳떳한 학자의 양심이란 말입니까? 좀 심한 예가 될런지 모르지만   어떤 마누라가 처녀 시절에 수많은 청춘사업으로 뭇남성의 오락거리였다는 사실을 결혼 후에 알았다면? 물론 미국은 더욱 사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미국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중용시되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적에 양공주를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미국사람들과 국제결혼을 해야 하는가? 그들은 말하더군요. 미국인들은 사랑하면 과거는 필요없다. 그러나 한국남자들은 과거가 밝혀지는 순간 이혼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국제결혼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다. 치졸한 내셔날리즘이라고 비웃어도 할 수 없군요. 내셔날리즘을 바탕으로 한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저는 아직도 순진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내셔날리즘이 오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오는데 큰힘이 되었다고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이 결혼한 부인이 과거의 양색시라고 해도 더욱 사랑할 속 넓고 큰 사람이라고 믿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서민인 우리의 현실인식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논현동에서 역삼동으로 가는 택시 기사가 말하더군요. \"성조기를 꼽느냐. 인공기를 꼽느냐는 선택만 남은 나라 아닙니까?\" 65회 이정재군도 함께 들은 말입니다. 조선이란 말을 지웠다고요? 한반도란 단어도 그와 같이 일제가 열강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이라는 걸 기억하시고 사용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개안하지 못한 옹졸한 내국인이 한마디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