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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 상식이 되는 역사 칼럼 (우리 역사의 진실)
<P>저는 진실을 밝히는 뉴스인 플러스코리아(인터넷 신문 <A href="http://www.pluskorea.net"><STRONG><FONT size=2>www.pluskorea.net</FONT></STRONG></A>의 과거사청산)에서 역사관련 칼럼을 올리고 있습니다.</P> <P>교우님들의 교양과 상식을 위해 즐겨찾기 해 놓으시고 가끔 한번씩 보시면 도움이 될겁니다. 매번 내용을 다 여기에 올려 드리고 싶으나 제 글로 홈피를 도배하기가 싫어 중요한 것만 가끔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홈피에 안 올린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아래 글은 중요한 글이라 직접 올립니다.</P> <P>* 동북아역사재단이 오히려 역사왜곡한다. (고조선의 진실)</P> <P>* 국립중앙박물관은 역사 코미디 그만하라. (한사군의 허구)</P> <P>* 태왕사신기 일본의 의도대로 역사왜곡하고 끝난다.</P> <P>* 강단사학과 민족사학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사학계 진단)</P> <P>* 태왕사신기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했다. (다음 주초 게재)</P> <P> </P> <P><STRONG>제목 : 우리 國祖는 신화, 중국 始祖는 역사상 인물?</STRONG></P> <P> </P> <P> <STRONG>중국과 한국이 다르게 하고 있는 역사의 시조관리 <BR><BR></STRONG>얼마 전 중국 후난성 주저우시에 있는 염제릉에서 중국 정부는 난데없는<FONT color=red>‘시조공정(始祖工程)</FONT>’을 벌렸다. “염제의 정신을 널리 펴서 중화민족의 정신을 단결시키자.” “염황(炎帝와 黃帝)의 자손들은 시조를 잊지 않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우리 시조를 높이 받드는 길이 우리 중화를 사랑하는 길” “염제릉이 있는 곳은 중화민족의 성지이며 중화 민족정신의 고향”“우리는 염황지손(炎黃之孫)이다”이라며 시조를 추켜세웠다. <BR> <BR></P> <TABLE cellSpacing=2 width=478 align=center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src="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711/2007111703378723.jpg" width=478 border=0></TD></TR></TBODY></TABLE>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border=0> <TBODY> <TR> <TD style="FONT-SIZE: 9pt; COLOR: #777777;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bgColor=#e8e8e8>▲  중국정부에서 만든 높이 106m인 염제와 황제의 조각상 (코 크기만 8m)</TD></TR></TBODY></TABLE></TD></TR></TBODY></TABLE> <BR>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5제부터 오제본기로 적어 역사로 인정했고, 삼황은 선사시대의 신화의 인물로 기술하였다. <BR><BR>삼황(三皇)이란 태호복희, 여와, 염제신농을 이르는 말이며, 오제(五帝)는 황제헌원,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순임금을 말한다. (3황에 여와 대신에 황제헌원을 넣고, 5제에 신라 김유신의 조상인 소호금천을 넣은 기록도 있다.) <BR><BR>최근에는 삼조상(三祖上) 또는 삼성상(三星像)이라 하여 염제신농, 황제헌원, 그리고 우리에게 친근한 치우천황를 자기네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 <BR><BR>족보를 따져 본다면, 삼황의 태호복희는 배달국의 5대 태우의 환웅의 아들이며, 여와는 복희와 남매/부부이며, 염제신농은 8대 안부련 환웅이 파견한 지방행정관 소전의 아들이다. <BR><BR>5제의 황제헌원은 소전의 또다른 후손이며, 소호금천은 황제헌원의 아들이며, 전욱고양은 소호금천의 아들이며, 제곡고신은 소호금천의 손자이며, 요임금은 제곡고신의 아들이며,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신하 유호의 아들이다. 이는 <환단고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서도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다. <BR><BR> <TABLE cellSpacing=2 width=284 align=left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src="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711/2007111706548016.gif" width=284 border=0></TD></TR></TBODY></TABLE>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border=0> <TBODY> <TR> <TD style="FONT-SIZE: 9pt; COLOR: #777777;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bgColor=#e8e8e8>▲  중국에서 만든 치우천황의 동상</TD></TR></TBODY></TABLE></TD></TR></TBODY></TABLE>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환웅이‘치우천황’이라고 <환단고기>에서 밝히고 있다. <BR><BR>즉 중국의 3황 5제가 전부가 배달동이족이다. 실제로 1958년 대약진운동 때 황제헌원과 소호금천의 묘가 동이족이라는 이유로 파헤쳐지기도 한 예가 이를 증명해 준다. (당시 같은 지역에 있었던 한족인 공자의 묘는 멀쩡했다) <BR><BR>중국 정부는 이들을 신화 속의 인물에서 역사상의 실존 인물로 만들어 고위관료들이 몰려가 제사를 올리며 중화민족주의(中華民族主義)를 부르짖고 있다. <BR><BR>우리 사학계가 치우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넣지 않자 중국은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켜, 우리는 가장 확실한 우리 조상인 치우천왕을 중국에게 거의 빼앗겼다고 봐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삼황오제라는 모든 우리 조상을 다 중국에 빼앗긴 것이 사실이다. <BR><BR><STRONG><FONT color=red>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워 국민들에게 중화의 깃발아래로의 대단합을 호소하고,‘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이 갖도록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번의 이‘시조공정’인 것이다.<BR></FONT></STRONG><BR><STRONG><FONT color=blue>그런데 우리는 우리 국조를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BR></FONT></STRONG><BR> <TABLE cellSpacing=2 width=290 align=left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src="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711/2007111709283652.gif" width=290 border=0></TD></TR></TBODY></TABLE>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border=0> <TBODY> <TR> <TD style="FONT-SIZE: 9pt; COLOR: #777777;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bgColor=#e8e8e8>▲  붉은 악마의 상징 치우천황</TD></TR></TBODY></TABLE></TD></TR></TBODY></TABLE>치우천황은 그림책의 신화와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단인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치우천자는 실존 인물로 능이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에서 발견되었다. <BR><BR>중국 사서에도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 “천자의 호칭은 동이족에서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고, 불패의 전쟁의 신으로 받들어져 한고조 유방이 사당을 세워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항상 치우사당에 제사를 올렸다. <BR><BR>아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하여 정부가 만든 기구인 동북아역사재단의 홈피에 있는 글로서, 우리 국조인 단군 신화에 관한 내용이다. <BR>(인용) <BR>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로서 (중략) 단군조선을 신석기시대, 예맥조선(기자조선)을 청동기시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략) <BR>환웅이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부르고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중략) <BR><BR>이 때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가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가 이것을 먹되 햇볕을 100일 동안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먹으면서 스무 하루 동안 금기하였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BR><BR>그런데 사람이 된 웅녀가 이번엔 신단수 아래에서 결혼할 상대를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고조선의 건국자인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즉위하였는데, 백악산 아사달 등에 도읍하였다가, 나라를 다스린 지 1,500년 향년 1,908세에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인용 끝) <B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