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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민족의 南北史를 보면 동북공정을 破碎할 수 있다
<P><A href="http://www.pluskorea.net"><STRONG><FONT size=3>www.pluskorea.net</FONT></STRONG></A> 에서 퍼 왔습니다.</P> <P> 며칠 전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우리 민족사에 큰 획을 긋는 합의를 도출해냈다. 역사상 우리의 남과 북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이번 기회를 빌어 알아보고자 한다.<BR><BR><STRONG>  1. 고구려(북) 와 백제ㆍ신라(남)의 남북시대와 삼국시대</STRONG><BR><BR>신라계인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건국연대가 BC57, 고구려가 BC37, 백제가 BC18로 나와 있다. 신라의 건국 연도가 고구려나 백제의 건국년도에 비해 빠르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이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인지라 그리 적은 것으로 보인다. <BR><BR>그리고 삼국 시대를 남북 시대로 보는 것은 무리라 할 수 있으나, 신라가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실 고구려ㆍ백제보다 훨씬 늦기 때문에 신라의 진흥왕이 즉위하는 AD540 전까지는 고구려와 백제의 남북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BR><BR>필자는 일단<STRONG> <FONT color=blue>최초의 남ㆍ북간의 본격적인 대립은 해양강국 대륙백제를 이룩한 백제의 13대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16대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FONT></STRONG>고 본다. 이때부터 본래는 형제 국가였던 고구려와 백제는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를 벌인다. <BR><BR>13대 근초고왕, 14대 근구수왕 시대가 백제의 전성기였으므로 당시 고구려 왕이었던 16대 고국원왕, 17대 소수림왕은 적수가 되지 못하고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백제의 전성기가 지나고, 백제 16대 진사왕과 17대 아신왕과의 내부 왕위 다툼으로 인해 국력이 약해지자 고구려의 18대 고국양왕은 많은 성을 백제로부터 빼앗는다. <BR><BR>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한 19대 광개토태왕이 등극하면서 저울추는 급격히 고구려로 기울게 된다. 광개토태왕은 관미성에서 대륙백제의 수군기지를 격파하고, 수년 후 반도백제를 공격하여 아신왕으로 부터 백년노객이 되겠다는 항복을 받는다. 또 신라 지방을 침범한 왜구를 소탕하여 신라를 도와주기도 한다.<BR><BR>고구려 20대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를 공격해 백제 21대 개로왕을 죽이고,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유업을 이어 받아 가장 넓은 고구려 땅을 이룩한다. 백제는 24대 동성왕 때가 제 2의 전성기로 고구려의 장수왕ㆍ문자왕과 팽팽히 대립하며, 광개토태왕 때 고구려에게 잃었던 요서 백제를 회복한 왕이기도 하다.<BR><BR>이후부터가 본격적인 삼국시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신라가 고구려ㆍ백제에 비해 너무도 많이 열세에 있었기 때문이다. <BR><BR>신라의 24대 진흥왕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와 신라의 전성기를 열어 영토를 최대로 넓힌다. 진흥왕은 남쪽에 창녕, 서쪽에 북한산, 북쪽에 황초령ㆍ마운령에 순수비를 세운다. <BR><BR><STRONG>2. 신라와 발해(699-926)의 남북국 시대<BR></STRONG><BR><FONT size=3>필자는 일단 신라의 의한 삼국통일이란 단어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왜냐하면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가 역사적으로 볼 때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라의 영토 확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BR><BR>신라의 29대 무열왕 김춘추는 딸과 사위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 들인다. 결국 당나라가 백제를 무너뜨리고(660년), 고구려까지 무너뜨리는데(668년), 신라가 기여를 많이 하나 실제로는 얻은 것이 거의 없다. 당나라에게 이용만 당한 것이다. 나중에 신라까지 삼키려는 당나라에 대항해 영토를 넓히기는 하나 고구려의 옛 땅은 차지 못하고 백제의 땅만 차지한다. <FONT color=red><STRONG>신라의 영토는 대동강과 원산을 잇는 선으로 국한되면서 곧 고구려의 후예들이 발해를 세운다. 이를 신라의 단순한 영토 확장으로 봐야지 어찌 삼국을 통일한 통일 신라 시대라 할 수 있겠는가!<BR></STRONG></FONT><BR>고구려의 후예 대조영이란 영웅이 나타나 699년 발해를 세워, 발해와 신라는 남북국 </P> <TABLE style="WIDTH: 363px; HEIGHT: 277px" cellSpacing=2 width=363 align=right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style="WIDTH: 365px" height=287 src="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710/2007100850523984.jpg" width=578 border=0></TD></TR></TBODY></TABLE>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border=0> <TBODY> <TR> <TD style="FONT-SIZE: 9pt; COLOR: #777777;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bgColor=#e8e8e8>▲ 발해의 영토     </TD></TR></TBODY></TABLE></TD></TR></TBODY></TABLE>시대를 연다. 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도로 다 찾고 오히려 영토를 더 넓혀 중국으로부터 海東盛國으로 불리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고, 남쪽의 신라와도 큰 반목 없이 지낸다. <BR></FONT><BR><FONT size=3><STRONG><FONT color=blue>얼마 전 남북간의 두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합의를 했듯이, 발해와 신라는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 371년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이후 실로 오랜만(300여년)에 찾아 온 남북 화해 시대라 할 수 있겠다.<BR></FONT></STRONG><BR>신라시대 말기 신라의 땅은 신라ㆍ후백제(892년)ㆍ후고구려(901년)의 후삼국시대로 다시 갈라진다. 918년 왕건에 의해 고려가 건국되고, 926년 해동성국 발해가 요나라에 의해 멸망되고, 935년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바치고, 936년 후백제가 항복해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다.<BR><BR><STRONG>3. 고려와 신라의 후예가 세운 금나라(1115-1234)와의 남북국 시대</STRONG><BR><BR>936년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했으나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발해는 요나라에 의해 망하고, 그 땅에는 발해의 소속이었던 말갈족이 여진으로 있으면서 요나라에 소속되어 자치적으로 지방정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생여직(生女直)은 임금을 太師라 불렀다. <BR><BR> <TABLE cellSpacing=2 width=221 align=left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src="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710/2007100800453264.jpg" width=221 border=0></TD></TR></TBODY></TABLE>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border=0> <TBODY> <TR> <TD style="FONT-SIZE: 9pt; COLOR: #777777;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bgColor=#e8e8e8>▲ 금나라 영토    </TD></TR></TBODY></TABLE></TD></TR></TBODY></TABLE></FONT><FONT size=3>여진족은 나중에 金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그 金나라의 시조는 신라 귀족의 자손인 김준으로 그 후손인 金태조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우게 된다. (아골타는 마의태자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FONT><BR><FONT size=3> <BR><STRONG><FONT color=blue>金태조 아골타는 조상의 나라인 신라를 슬기롭게 흡수한 고려를 매우 후하게 대했고 한 번도 침범을 하지 않았다.</FONT></STRONG> 金태조 아골타는 요나라를 무찌르고 국호를 대금(大金)으로 하며 황제의 위에 오른다. <BR><BR>金나라는 고려와는 같은 민족끼리라 아주 친하게 지냈으나, 중국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전쟁을 많이 했다. 1127년 중국의 송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개봉을 점령하고 송나라 황제인 徽宗과 欽宗을 연행해 金태종 앞에 무릎을 꿇린다. 金태조 아골타의 동생 태종은 휘종에게 昏德公, 흠종에게는 重昏侯라는 칭호를 내리는데, 이 칭호는 두 황제가 얼마나 혼미한 황제인가를 느끼게 한다. <BR><BR>이러한 치욕적인 수모는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중국 왕조인 宋나라의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써 9대 168년(북송시대)을 이어오던 송나라는 망하고 흠종의 후손이 남송시대를 연다.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인 金나라는 중국 대륙의 북쪽 반을 지배하다가, 몽고에서 일어난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BR><BR><STRONG> 4. 조선과 후금(청나라 1616-1912)과의 남북국시대</STRONG><BR><BR>조선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한반도에 새로운 국가를 세웠으나 옛 고구려ㆍ발해ㆍ금나라의 영토를 수복하지는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