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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4대 서예가 원로 선배님 여초 김응현 타계
  <P id=tcp>2007년 2월 2일 (금) 19:06   <A class=bd_11_555555 href="http://news.media.daum.net/media/khan/"><STRONG><FONT color=#555555>경향신문</FONT></STRONG></A><BR></P> <P id=newstitle>‘神品’의 서예대가 여초 김응현 별세</P> <DIV id=newsbody><!--기사본문--> <DIV id=news_content style="FONT-SIZE: 15px"><!-- 사진 Start --> <TABLE style="CLEAR: both" align=center> <TBODY> <TR> <TD style="PADDING-BOTTOM: 10px"> <TABLE width=380> <TBODY> <TR> <TD class=d_11_000000><IMG src="http://photo-media.hanmail.net/200702/02/khan/20070202205406.630.0.jpg" width=380 border=0><BR></TD></TR> <TR> <TD height=2></TD></TR></TBODY></TABLE></TD></TR></TBODY></TABLE><!-- 사진 End --><!--Img_Src_1-->한국 근현대 서예사의 4대가로 꼽히는 서예계의 원로 여초(如初) 김응현(金應顯)씨가 숙환으로 1일 저녁 7시 별세했다. 향년 80세.<BR><BR>전서와 예서·행서·해서·초서 등 오서에 두루 능통하고 특히 육조해서가 뛰어났던 고인은 창문여고 설립자인 김윤동씨의 3남으로 지난해 11월 타계한 서예가 일중(一中)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1%E8%C3%E6%C7%F6&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김충현</FONT></A>(金忠顯) 선생을 형으로, 백아(白牙) 김창현(金彰顯)씨를 동생으로 두었다.<BR><BR>고인은 1927년생으로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C8%D6%B9%AE%B0%ED&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휘문고</FONT></A>와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해 신학문에도 밝은 지식인이었지만 한학자 집안에서 자란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붓을 놓지 않았으며 서예와 한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50년부터 10년 가까이 국회보 주간을 맡고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1%B9%C8%B8%B5%B5%BC%AD%B0%FC&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국회도서관</FONT></A>에서 일했다.<BR><BR>그 사이 숙명여대와 홍익대, 성균관대 등에서 문학과 서예, 한학을 가르쳤다. 56년에는 이론과 실기를 겸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서예연구교육기관인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5%BF%B9%E6%BF%AC%BC%AD%C8%B8&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동방연서회</FONT></A>를 설립해 수천명의 제자를 길러냈다.<BR><BR>지금은 폐간됐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서법 연구잡지인 ‘서통(書通)’을 창간해 삼국시대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옛 글씨를 조명하는 시리즈 등을 기획, 한국서예사의 체계를 세우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밖에 국제서법예술연합을 만들어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국제교류전을 활성화시켜 한국서예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도 기여했다.<BR><BR>여초는 지난해 광화문 현판 교체론이 대두될 당시 현역 서예가 중 1순위로 오를 정도로 신품(神品)의 경지에 오른 서예가였다. 예술의전당 서예관의 이동국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C5%A5%B7%B9%C0%CC%C5%CD&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큐레이터</FONT></A>는 “여초는 소전 손재형(1903~81), 검여 유희강(1911~76), 일중 김충현 (1921~2006) 선생과 함께 근현대 서예사의 4대가로 꼽히는 인물”이라며 “소전은 전서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서법을 열었고 일중은 정통서법에 강했다. 여초의 경우는 이 두 분이 하지 못했던 금석기가 두드러지는 육조해서를 토대로 독자적인 서법을 만들어냈다. 한글과 한문을 두루 잘 썼고 전각에도 뛰어난 독보적인 존재였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또 “서예 하면 늘 중국의 것이 최고인 것으로 아는 상황에서 한국적 서예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실천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BR><BR>경북 김천시 황악로에 설치된 ‘영남제일문’ 현판과 김천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C1%F7%C1%F6%BB%E7&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직지사</FONT></A>의 현판, 공초 오상순 시비 등이 그의 작품이다. 고인은 주요 서책과 비문에 근거해 각종 글씨체를 재현한 ‘동방서범’이라는 30권짜리 서예교본을 10여년에 걸쳐 냈고 ‘동방서예강좌’ ‘서연기인’ 등의 책을 통해 서법을 연구해왔다.<BR><BR>96년부터 설악산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9%E9%B4%E3%BB%E7&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백담사</FONT></A> 부근에 ‘구룡동천(九龍洞天)’이라는 집을 짓고 자연과 벗삼아 지내며 글씨를 수련했다. 그러나 10여년전 당뇨병을 시작으로 중풍과 파킨슨병 등 합병증이 겹쳐 투병해왔으며 99년에는 교통사고로 오른 손목에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당시 몇달간 수련 끝에 왼손으로도 글씨를 쓸 수 있게 돼 왼손으로 쓴 글씨들을 모아 2000년과 2001년 한국 및 중국에서 ‘좌수전(左手展)’을 열기도 했다. 회복 후에는 다시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 쌍수(雙手)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2003년에는 가로 6m, 세로 5.3m에 이르는 필생의 역작 광개토대왕비문을 완성했지만 이후 건강이 악화돼 붓을 들지 못했다.<BR><BR>한 달 전 당뇨 합병증이 악화해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BC%AD%BF%EF%B4%EB%BA%B4%BF%F8&nil_profile=newskwd&nil_id=v15603242" target=new><FONT color=#0b0bcd>서울대병원</FONT></A>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형년(동방연서회 상임이사), 차남 항년(개인사업), 남희(부산외대 교수), 주희(주부), 삼희(니베아 서울 차장)씨 등 2남3녀가 있다. 발인은 3일 오전 9시. 장례식은 동방연서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 10호실. 장지는 경기 용인의 선영. (02)2072-2016<BR><BR>〈윤민용기자〉<BR></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