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동아, 모교 100주년 관련 기사 (11월 1일자)
🧑 강복희
📅 2005-11-03
👀 1186
다음은 동아일보사에서 발간하는 <주간동아>에 게재된 모교 기사입니다.
실력과 전통의 \'파워 엘리트\' 산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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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00년 명문高/휘문]
실력과 전통의 ‘파워 엘리트’
자유로운 학풍·인문학적 교양 ‘오랜 자랑’ … 문화·예술·스포츠 분야서도 두각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9월 말 한 중앙일간지가 ‘한국 사회 파워 엘리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 중엔 ‘고교별 파워 엘리트 배출 순위’를 매긴 것도 있었는데, 그중 한 학교의 이름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휘문(徽文)고등학교였다.
‘1950년 이전 출생’ 엘리트 배출 순위는 23위이던 것이, 50년대생 수는 13위, 60년대생은 8위, 70년대생에 이르러서는 3위를 차지한 것. 이렇듯 지속적인 교세 확장을 보여준 학교는 휘문이 유일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개교 당시부터 휘문은 명문 사립으로 명성이 드높았다. 휘문의 모태가 된 것은 명성황후 조카인 민영휘 공이 1904년 학생 30명을 받아들여 자택에서 문 연 ‘광성의숙’이다. 1906년 고종 황제로부터 ‘휘문’이라는 교명을 하사받아 서울 종로구 원서동 옛 관상감 터(현재 현대그룹 계동 사옥 자리)에 교사(校舍)를 신축했다. 그해 첫 입학시험을 치러 1회 130명을 선발했다. 휘문이 1904년이 아닌 1906년을 교사(校史) 원년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제강점기, 휘문은 사립임에도 인쇄부·서적실·각종 과학실험 기기 등 각종 ‘첨단교육 시설’을 갖춰 다른 학교들의 부러움을 샀다. ‘귀족학교’ ‘신사학교’로 불리기도 했는데 자유로운 학풍, 인문학적 교양이 넘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일본인이 많다 해서 공립을 마다한 다수의 명문가 자제들이 휘문을 택했다.
소설가 김훈(58회) 씨는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60년대에도 휘문의 학풍은 자유로웠다. 다른 학교 학생들은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녀야 했지만, 우리는 머리를 길렀고 교복도 여러 종류 중 골라 입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오늘날도 여전해, 김선규 교장은 “우리 학교는 3년 전에야 다시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아마 가장 늦게까지 ‘사복’을 고수한 학교 중 하나일 것”이라 말했다.
휘문을 빛낸 문인들
김유정, 정지용 휘문은 우리 문학사를 떠받치고 있는 대표적 문인들을 여럿 배출했다.
소설가로서는 박용철(1916년 입학), 박종화(11회), 이무영(1920년 입학), 이태준(1921년 입학), 김유정(21회), 최태응(1930년 입학), 오장환(1931년 입학), 방영웅(53회), 김훈(58회), 오세영(65회) 등이 있다. 시인은 더 쟁쟁해 홍사용(10회), 정지용(15회), 김영랑(21회), 이인영(21회) 등이 휘문 출신이다. 정지용 시인은 특히 모교 영어교사로 근무해 많은 학생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임꺽정’의 홍명희, ‘오발탄’의 이범선, ‘얄개시대’의 조흔파(본명 조봉순), 전광용, 정한숙 등도 휘문의 교사로 근무했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 자존심 지킨 학교로도 유명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교사.
그런 교풍 때문일까, 휘문 졸업생 중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유독 많다. 1970년대 이전에는 문인과 한글학자, 이후에는 연극·영화계 및 연예계 종사자들이 도드라진다. “휘문인들은 시, 노래, 연극 없이는 ‘논다’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 매년 열리는 ‘한티축제’는 재학생 예비 연예인들의 ‘1차 등용문’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휘문은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체육 명문이다. ‘응원가’와 ‘야구가’가 따로 있을 정도다. 1907년 야구부, 1914년 축구부, 1918년 정구부, 1925년 농구부, 1928년 역도부, 1930년 아이스하키팀을 창설했다. 옛 사진 속 하얀 유니폼으로 성장한 정구부원들의 모습은 귀공자라 하기에 가히 손색이 없다. 휘문 100년 연표 1904년 민영휘 공 ‘광성의숙’ 개숙
1905년 학부로부터 설립 인가 받음
1906년 고종 황제 ‘휘문의숙’ 교명 하사, 개숙
1918년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로 개칭
1919년 3·1운동 당시 3학년생 김영랑 강진서 거사하려다 옥고
1921년 학교장 임경재 등 교사·동문 힘 모아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 모체) 창립
1923년 창덕궁서 악기 72점 기증받아 조선 최초 취주악대 창설.교지 ‘徽文’ 창간.
야구부·정구부 조선대표로 일본 갑자원대회 출전
1930년 광주학생운동 관련 학생 400여명 시위
1933년 우리나라 최초 도서관 개관
1938년 ‘휘문중학교’로 개칭
1944년 일제가 설립자 동상 공출
1951년 ‘휘문중’ ‘휘문고’ 분리
1955년 영자신문‘Whimoon Times’창간
1958년 교내신문 ‘휘문’ 창간
1961년 희중문학상 제정
1964년 제1회 ‘휘문의 밤’ 개최
1978년 종로구 원서동 ‘볼재’에서 대치동으로 교사 이전
1996년 제49회 청룡기야구 우승
2002년 제12회 SK대입학력경시대회 대상
휘문의 운동부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전 분야에서 ‘동급 최강’의 실력을 발휘했다. 특히 야구부의 활약은 눈부셨다. 1911년 11월7일 황성기독교청년팀과 첫 경기를 치러 17대 8로 승리했다. 이 뉴스를 다룬 ‘황성신문’ 보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경기 기사였다. 1923년에는 일본 원정을 떠나 오사카고교를 완파함으로써 조선인들에게 큰 기쁨을 주기도 했다. 1996년 청룡기 우승과 2001년 황금사자기 우승은 동문들에겐 ‘대사건’이었다. 2001년 황금사자기 우승 때는 교우회보 호외를 발간하기도 했다. 농구 역시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으며, 역도부에선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왔다.
휘문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학교로도 이름 높다. 권혁홍 교우회장은 “조선어학회를 조직한 국문학자 이병기·권덕규 선생은 휘문의 교사였고, 최두선 선생은 졸업생이었다.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 선생도 휘문 출신”이라 설명했다. 일본말만 쓸 것을 강요당했던 일제강점 말기에도 교사들은 꿋꿋이 우리말로 강의하고 우리 역사와 문학을 가르쳤다. “일본말 교가만 부르라”는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에서 징병으로 끌려가는 선배들을 환송할 때도 휘문인들은 우리말 교가를 목 터져라 불렀다.
80년대 말부터 ‘입시 명문’ 새 명성 … 공부 외에 다양한 동아리 활동 강조
휘문고 사람들 분야 기수 이름(연령) 현직(혹은 전직)
정·관계
3회 최두선(작고) 국무총리
18회 백두진(작고) 국무총리
28회 이한기(작고) 국무총리 서리
32회 최영희(84) 전 국방부 장관
44회 서정욱(71) 전 과학기술처 장관
54회 길형보(63) 전 육군참모총장
학계 36회 백낙환(79) 인제학원 이사장
44회 장충식(73) 전 단국대 총장
52회 김정배(65) 전 고려대 총장
경제계
41회 김성수(83) 오양수산 회장
52회 이재욱(64) 노키아TMC 명예회장
53회 권혁홍(64) 신대양제지 사장, 휘문교우회 회장
58회 오남수(57)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
58회 이문원(58) 풍산금속 사장
81회 정의선(35) 기아자동차 사장
언론계
43회 임택근(73) 방송인
55회 차인태(61) 방송인
67회 손석희(49) MBC 아나운서국장
문화계
8회 전형필(작고) 간송미술관 설립자
26회 정진숙(93) 을유문화사 대표
37회 유현목(80) 영화감독
46회 임영웅(71) 극단 산울림 대표
47회 김재형(69) 드라마 연출가
50회 박근형(65) 연기자
58회 김훈(57) 소설가/언론인
61회 김종학(54) 김종학프로덕션 대표
65회 이만희(51) 극작가
67회 송승환(48) PMC프러덕션 대표
67회 이용(48) 가수
70회 김학철(45) 연기자
76회 이승환(40) 가수&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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