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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에 난 동부지회 회장 제진주(63회)선배님...
불지옥서 중생구하는 ‘현대판 지장보살’
사진설명: 제진주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휘문고 시절 도선사서 청담스님으로부터 ‘보해(寶海)’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는 ‘일체유심조’라는 경구가 적힌 당시의 계첩을 지금도 ‘보물1호’로 간직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강원 고성 대형 산불 때

천은.영은사 보존 혼신

청담스님이 주신 계첩

‘일체유심조’ 보물 1호




# ‘삼계가 화택’ 부처님 말씀 깨달아

2000년 4월 강원도 최북단 고성에서 강릉 동해 삼척과 울진에 이르기까지 영동 일대에 대규모 산불이 났다. 전국이 들썩했다. 산불은 8일간 1만4천 헥타르의 숲을 통째로 삼켰다. 불길이 멎고서야 알려진 소문. 불구덩이 속에 자기 몸을 내던진 사내가 있었다는데…. 그는 당시 강원지역 소방업무를 진두지휘한 제진주(53, 법명 보해) 강원도소방재난본부장이다. 휴전선으로부터 번져온 불길이 남방한계선을 넘어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자, 본부장은 삼척의 두타산과 태백산에 자리잡은 천은사와 영은사를 떠올렸다. 천은사 극락전에서 자신을 반겨줬던 지장보살과 영은사 팔상전의 부처님 일생을 담은 탱화들이 불길 속에서 사그러진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대원들을 별도로 동원했다. 태풍급 강풍이 계속 몰아치는 가운데 본부장은 소방대원들과 함께 혼신을 다하여 고찰에 불이 옮기지 않도록 사전 진화작업에 몰두했다.

“옮길 수 있는 문화재 일부만 안전한 곳에 옮겨놓은 상태지만 유서깊은 건물과 대형 문화재들이 모두 소실될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영은사 대웅보전(강원유형문화재 76호)과 팔상전(강원유형문화재 77호), 천은사 극락전(조선 중기 조성) 등 목조건물과 사찰 주변 산림에 물을 뿌리는 등 만일 사태에 대비했지요.” 강풍을 타고 오는 불길이 다행히 천년고찰을 비켜갔다. 산불이 완전 진화된 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본부장은 극락전의 지장보살전에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이 불타는 집이라고 비유하셨지요. 욕망의 욕계와 인간의 색계, 그리고 순수한 정신적 기쁨의 세계를 말하는 무색계 등 삼계가 결국 화택(火宅)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제 깨닫습니다. 삼계를 벗어나 욕망이나 기쁨에 농락당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본부장은 또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도 찾아갔다. ‘1000여명에 달하는 이재민들이 희망과 자비를 가질 수 있길 바란다’며 향을 사르고 발원했다. 강원도 영동 산불 진화에 공덕을 쌓은 제 본부장은 그 해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 청담스님이 주신 법명 ‘보해’

40대 후반이 돼서야 자기안에 ‘불심’을 발견했다는 제 본부장은 사실 고교시절부터 신심 깊기로 이름난 청년이었다. 1968년 서울 휘문고에 들어간 그는 조계사 도선사 등지를 다니면서 청년회 활동은 물론 수행정진으로 주변에서 ‘인정받는’ 불자였다. 왼쪽팔뚝을 걷어올리며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지금도 생각납니다. 도선사 석불전 올라가는 길에 자리잡은 청담스님의 거처에서 스님께 법을 청하고, 수계도 받았습니다. 스님은 연비를 해주시고, 저에게 보배로운 바다처럼 넓고 자비롭게 살라며 ‘보해(寶海)’라는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틈만나면 절에 찾아가고, 때로는 출가에 대한 상담도 해보았지만, 큰스님은 항상 침묵을 일관하시면서 ‘배운대로 실천하라’고만 하셨지요. ‘행(行)’의 가치를 가르쳐주신 것 같아요.” 지금도 그는 청담스님이 주신 계첩을 간직하고 있다. ‘일체유심조’라는 경구가 적힌 계첩은 그에게 ‘보물 1호’다.

수계를 받은 청년은 그 후로 신바람 나게 절을 찾아다녔다. 당시 도선사에서는 매주 토요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용맹정진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마포에 사는 청년은 토요일마다 버스로 우이동에 와서 어두운 밤길을 뚫고 1시간이 넘는 산길을 따라 도선사에 와서 철야정진에 임했다. “고등학생이 얼마나 수행의지를 가졌겠어요. 스님들께서는 불교교리를 주입시키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질서정연한 생활이 부처님이 가르쳐준 삶의 원칙이라는 설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주말마다 어둠을 벗하면서 부처님을 찾아가고, 이른 아침 예불 올리고 공양 하고 귀가하는 발걸음은 더없이 즐겁고 신났지요.”

토요정진뿐만 아니라 휘문고내에 결성된 휘문불교학생회서 참선법회를 주도하기도 했고, 당시 대한불교중고등학생회로 불렸던 조계사학생회 활동도 적극 참여했다. 신행과 봉사를 위주로 활동했던 그는 일손이 부족했던 불교신문에 발송업무를 돕는 자원봉사 활동도 했다. “1960년대 후반에 불교신문은 불자들에게 불법을 알리는 유일한 언론창구였지요. 신문을 전하는 것이 전법이고 포교라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한 것인데…아, 벌써 40여년 전 일이군요.”


# 병마 이긴 아내와 손잡고 수행해 행복

그는 1977년 소방공무원이 됐다. 서울시립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하면서 ‘시험삼아 본 시험’에 합격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직장에서 내 청춘을 바칠 수는 없다’는 짧은 생각에 처음엔 거쳐 가는 직장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소방공무를 수행하면서 소방공무원이 단순 화재현장에서 불을 끄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터득했다. 화재진압은 물론이지만 화재예방이나 소방시설 분야에도 상당히 많은 인력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대원들을 상대로 한 소방교육에 전념하기도 했다. “소방대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굉장합니다. 따라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구조된 인명보다는 희생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소방대원들을 원망하는 경우가 잦지요. 하지만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소방관을 바라보는 사회 시선이 많이 좋아졌지요. 시민들의 관심과 격려 한마디가 힘이 되어 30여년에 걸친 소방공무원으로 긍지를 갖고 삽니다.”

“공직에 있으면서 별탈없이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부처님을 만나 불법을 나름대로 전하면서 살아왔던 업보”라며 겸손해하는 그는 10여년 전 부인이 난치병에 걸렸을 때를 회고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건강한 아내에게 어느날 심방중격결손이라는 난치병 판정이 내려졌지요. 좌, 우심방을 가르는 심방중격이라는 벽에 구멍이 난 질환인데, 수술을 하면 성공확률이 매우 낮고, 하지 않으면 2~3년의 시한부인생이라더군요. 그때 아내 나이 45세, 아이들은 초등학교 5,6학년이었지요.” 당시 송파소방서장이었던 본부장은 가망없는 수술을 택한 부인을 수술실에 보낸 뒤, 인근의 불광사 법당에서 목놓아 울었다. “이제 살만하니 아내가 떠나려합니다. 사랑하는 당신 다음생에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길 바라오. 미안하오…” 반나절간 지속된 수술은 기적처럼 성공했다. 불교에 다소 낯설어했던 부인은 모진 병마와 싸워 이겨낸 뒤, 이제는 남편보다 먼저 사찰을 찾는 불심 깊은 ‘보살’이 됐다. 건강이 회복됐어도, 일반인과는 달리 상처와 아픔이 남아있지만, 주말마다 남편 손을 붙들고 산따라 계곡따라 부처님을 찾아다닌다. “우리 부부가 아픔을 함께 겪은 뒤 밀려오기 시작한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내를 생각하면 뿌듯하고 감사하고 너무나 고맙기만 합니다. 불자로서 수행이나 신행생활을 충분히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린시절부터 행했던 전법의 공덕이 인생 말년에 저를 감싸주는 듯 푸근하답니다.”

‘삼계가 화택(火宅)’이라는 말처럼 삶은 타는 불 속이나 마찬가지다. 30여년간 숱한 불구덩이 속을 넘나들면서 중생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오열을 잠재워준 그는 오늘도 삼각산 도선사에 오른다.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옥의 지장보살님,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끝없이 정진하겠습니다.”        

수원=하정은 기자 jung75@ibulgyo.com



제 본부장은 누구…

강원 산불 진화로

대통령 표창 받아


1953년 부산서 출생. 1958년 상경해서 서울 휘문고, 서울시립대학을 졸업했다. 1985년부터 동대학 도시과학대학원에서 도시계획과 방재공학 도시행정 등을 수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2년 중앙소방학교 교학과장을 거쳐 서울남부소방서장(1993년), 서울 송파소방서장(1998년), 서울 동대문소방서장(1999년) 등을 역임했다. 행정자치부 구조과(1999년), 방호과(2002년) 등지에서 소방업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