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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잡지의 칼럼입니다.
문화잡지의 칼럼입니다. \"선생 된 자의 책임이 막중하다.\" 최영철 / 한국첼로학회장, KBS미디어 콘서바토리 교수 마라톤의 경우, 선수 대열에 앞서 선도차가 종착 지점까지 코스 내내 남은 거리와 시간을 알려주어 선수들의 페이스 조정을 도와주게 된다. 선도차의 인도에 따라 선수들은 자기의 페이스와 기록 등을 점검하며, 종착 지점까지의 수많은 언덕과 평지 등 자연적인 여건에 따른 페이스 조정법에 따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끝까지 달리게 된다. 그로써 좋은 기록과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 조절이 가능해지며 또한 종착 지점을 바로 알 수 있어 필요 없는 시간 낭비와 길을 잘못 드는 낭패를 면하게 된다. 각종 콩쿠르나 입시의 경우, 선생은 학생의 컨디션이나 연습량을 정해진 날짜에 맞추어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만일 너무 무리한 연습을 요구하다 보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올 수 있어, 연주 당일 날 충분한 실력 발휘는 고사하고, 참가도 못하거나 과도한 연습으로 인해 중도에 근육 통증 등으로 인한 포기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인 학생은 과도한 연습이나 컨디션 조정 없는 무리한 진행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자기를 제어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무조건 선생의 인도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경우도 있다. 당시의 콩쿠르나 입시에는 성공했으나, 음악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는 심각한 손상을 입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선생의 책임으로 돌아가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돌이킬 수도 없다. 병원의 의사는 환자의 병의 진행상태를 유심히 살피고, 만일 암일 경우 다른 곳으로의 전이에 대해 그때그때 정확한 진단을 통해 환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환자가 마음의 준비와, 만일 불치의 경우에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세상 떠날 만반준비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환자의 경우는 자기의 생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깨끗이 정리하고, 주위의 칭송을 받으며 아름답게 세상을 마감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자기의 생이 몇 달 며칠 정도 남았으며 앞으로 얼마를 더 산다는 일정에 맞추어, 자기의 삶과 주위를 깨끗이 정리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개인적인 예를 들었으나 국가나 사회의 경우에는 매우 심각하다. 한국동란 때의 한 정치가는 국민들을 속여 한강교를 건너던 백성들이 수장되고 납북되고 피난을 못해, 수많은 억울한 백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겼으며, 바로 전 어떤 정치가는 임기 말까지 경제위기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아, 온 백성이 허리띠를 졸라맸던 IMF의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자기의 상태나 앞으로의 상황을 예견하는 능력이 없으면 언제 어떻게 망할지 모르는데, 사회나 국가, 세계를 움직이는 큰 인물이라면 얼마나 큰 책임이 주어질 것인가는 언급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자. 탁월한 인도자 없이, 마땅한 의사의 처방 없이, 이 사회나 국가, 세계가 표류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비단 한두 사람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에서 각자 가져야할 중한 책임은 무엇일까?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어디로 인도하는지도 모르며 대책 없이 따라가다가는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그 때에는 이미 늦게 됨은 자명한 이치이다. 이제는 각자 자기의 길을 자기가 판단하고, 누구에게든 속지 않고 자기의 생을 책임지고, 본인이 이끌고 나가는 능력을 키움이 중요하다. 이것이 매우 피곤한 길이 되겠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자기의 삶도 중요하고 자기 가족, 더 나아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대책 없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영화 25시의 주인공같이 무의미한 삶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그 단순한 이치를 모르니 제 자리에서 빙빙 돌고만 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많은가?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앞에서 인도한다는 선생 된 자의 책임이 실로 막중하게 다가오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