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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邦人 斷想”
인천공항의 입국장을 들어서는데 어찌나 고향의 하늘이 정겨운지... 보이는 곳곳마다 정경마다 그렇게 가슴이 설렐 수가 없다. 마치 오랜 연인을 만나러 온 듯한 느낌이다. 마중 나온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서울로 들어가는데 좌우로 펼쳐지는 깨끗하고 푸근한 정경에 타향에서의 조조한 마음이 편안함을 되찾아간다. 잠시 오랜 여행 끝에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을 찾아가는 이방인의 신세가 되어본다. 온 김에 남해의 외딴 고도에 은거하는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몇 시간 달려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해 보길도행 카페리호를 타려 하니 마침 고장 수리 때문에 한 시간여를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매표원이 일러준 다른 보길도행 방법대로 일단 노화도행 배표를 끊었다. 거기서 차로 보길도행 작은 카페리가 움직이는 항구로 내달린 후 그 배를 타면 된다는 것이 그 새로운 방법이었다. 그 방법대로 해서 예상보다 삼십여 분 앞서 친구의 집에 들어섰다. 먼 여행 끝에 들른 친구를 위해 항구에서 사온 생잡어들과 멸치를 한 냄비에 가득 넣고 끓여 주는데 조미료 안 친 원시적인 맛이 어찌나 신선하고 좋든지... 가뜩이나 외국의 맛없는 음식들로 허기졌던 배가 계속 신호를 보낸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잠시 쉬는데 동네 유지분이 오셔서 같이 바다로 나가자 한다. 무슨 일인가 호기심이 동해 따라나섰더니 배를 타라고 한다. 먼저 왔을 때에도 저 배 한번 타보았으면 했는데 잘 되었다 싶어 얼른 배에 오른다. 유지분은 노를 저으면서도 배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신다. 하지만 워낙 사투리가 심해 가뜩이나 여러 외국 방언때문에 머리가 복잡했었는데 여기서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나 하며, 친구한테 눈짓으로 무슨 뜻인가를 물어보는데 이 친구는 잘도 알아듣는다. 설명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바쁘게 전복을 캐신다. 먼 나라 여행으로 허해진 나의 건강을 염려해 친구가 먼저 부탁해 놓았나보다. 살아 꿈틀대는 전복을 그냥 통채로 먹기도 하고 구어 먹기도 하며 둘이서 실컷 영양 보충을 한 후 텔레비전을 켰는데, 이 친구 그 마을의 풍습이라며 8시가 넘자 강제로 잠자리에 들라고 하여 할수없이 잠을 청했다. 며칠을 묵으며 심신의 건강도 회복하고, 처음으로 서툰 바다낚시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등산도 하고 지내다 서울로 다시 향했다. “친구야 잘 먹고 잘 쉬고 간다...” 이번엔 같은 고교 동창생들이 주말에 부부동반으로 변산반도를 가자고 하여 따라 나섰다. 서해의 낙조와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예약했던 격포항 주위의 펜션을 찾아들어갔는데 밤이라 바다 풍경을 보지 못했으나, 아침에 일어나 푸르고 맑은 바다를 보니 한 폭의 그림이다. 바로 옆에는 성웅 이순신 장군 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한 전라도 좌수영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좌수영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옛 임진년 흉악한 왜구들을 일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고요히 그러나 비장하게 서 있는데,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바다를 향한 웅장한 자태가, 그 옛날 결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과 장수들, 조선 수군의 결연한 의지를 생각케 하며 처절함에 어느 순간 가슴이 미어져 온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천에 취하여 상념에 잠긴다. “세상 어디에다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와 산천이구나!” 외딴 절벽에 세운 수루에 올라, 이곳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 처연한 달빛 아래서 잠 못 이루고 시조를 읊던 수루를 재현한 곳인가 생각해 본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앞에 놓고 얼마나 탄식하셨을까!” 그 비장함에 잠시 숙연해진다. 장성의 선운사를 들러 유명한 풍천장어 원조집을 찾아들어가 그 고장의 특산물인 민물장어로 맛나게 배를 채우고 복분자술을 한 잔씩 맛보고 귀경길로 들어선다. 서울로 오는 차 속에서 잠시나마 잊었던 우리 나라의 부동산 투기 왕국의 소식을 접하며 온 나라가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들썩이고, 졸부들 복부인들의 투기바람에 대한 얘기를 귀가 솔게 듣게 된다. 누추한 천민자본주의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날치는 모습을 보면서, 현 세태를 옛 장군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또 다른 왜구가 온 나라를 침범했는데 이번엔 정신까지 앗아가는구나...”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는 법이지... 잘못하면 재앙까지 함께 들어올 수도 있어...” 혼자 속으로 뇌까리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 얼마 전 지구에서 가장 큰 복권에 당첨되었던 사람의 비참한 말로를 전했던 뉴스가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남해의 외딴 고도의 수려한 아름다움과 전라 좌수영의 깊은 감동이 바람에 날려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