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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비창” 이 연주되던 밤
음악잡지의 칼럼입니다. 최영철 / KBS미디어콘서바토리 교수, 카메라타서울 대표 연일 흐리고 눈보라가 치던 모스크바의 하늘도 오늘은 보기 드문 특별한 연주회를 축하하는 듯 맑게 갰다. 러시아가 나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기념 헌정음악회 시리즈 중 하나로 지휘계의 노장 쿠르트 마주르와 역시 첼로계의 노장 나타리 구트만이 구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일명 : 차이코프스키 오케스트라)과 협연 무대를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볼쇼이홀에서 가진 것이다. 2005년 3월 15일부터 21일까지 시리즈로 열리는 이번 음악축제에는 이외에도 바이올린의 기돈 크레머,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등 세계적인 대가들의 호화무대로 꾸며졌으며 오늘 17일의 연주회는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 b단조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이 연주되었다. 두 대가가 평생을 연주로 다져진 노장들이라 원숙한 테크닉과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는데 역시 꽉 들어찬 객석을 보며 나와 같은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유럽의 연주회장을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감상 중 첫째가 음향이 좋다는 것이다. 연주 전 옛의상을 입고 안내 멘트를 하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때 벌써 그 느낌을 갖는다. 마이크도 없이 평상의 목소리로 연주곡과 출연자를 소개하는데 객석 뒤에까지 무리 없이 잘 들린다. 또한 첼로 연주의 경우 대부분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묻혀 작은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것이 통례인데도 소리의 울림이 막힘없이 귀에 와 닿는다. 옛 건축가들의 소리에 대한 감각이나 습도 등 여러 환경적인 조건들이 결합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아닌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첫째 곡인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b단조는 맨손으로 지휘하는 노장의 손놀림에 따라 조용히 시작되어 폭풍 같은 전주가 끝날 즈음 이어 격정적인 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연령으로 치면 벌써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이며 빠른 손놀림으로 빚어내는 음악은 볼쇼이홀의 알맞은 울림을 타고 이내 객석을 사로잡았다. 두 노장의 원숙한 음악은 빠르고 느림과 강하고 약함을 번갈아 표현하며 듣는 이들의 영혼을 작곡가가 추구하던 작품 이상의 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출연자가 대가들이니 관객도 같이 대가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옥의 티를 들자면 1악장의 경우 노장 지휘자들에게서 가끔 보이는 박자와 관계 없이 흔드는 손놀림 동작으로 인해 단원들의 비트 감각에 약간의 혼선이 보였다는 점이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음정과 솔리스트의 음정이 안 맞는 부분이 가끔씩 나타났던 점을 들 수 있으며 특히 2악장의 제1 클라리넷 주자의 솔로는 첼로의 음정을 감안하여 전 악장 내내 음정을 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첼로의 음정에 맞춰추지 못한 것이 유일한 흠이라 할 수 있었다. 이는 3악장에까지 미처 관악기 특성인 음정의 상승함에 따른 컨트롤 미숙으로 인해 솔리스트는 연주 도중에도 악기의 조율기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또한 3악장에서 솔리스트가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부분과 느리게 숨을 돌리는 부분이 솔리스트와 지휘자 간의 음악적인 감성 차이로 약간의 오차가 생긴 것이 미세하게 나타났으나 객원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서의 한계인 충분한 연습 시간 부족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처럼 대가들의 대곡을 충분히 감상한 연주였다. 후반 연주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 6번 “비창” 이었다. 지구상의 수많은 곳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주되고 있으며,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인 차이코프스키는 음악을 모르는 일반인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러시아 교향악단이 더구나 차이코프스키 곡의 전문 연주단체의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의 작품 연주는 그 깊이와 노련미 배인 음악이 타국의 교향악단 연주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후배인 쌍트 페테르부르그 음악원 출신의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 등이 자기의 작품에 선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관악기의 특이한 배치 등을 잘 나타내고 있었으며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관현 유니손 연주는 광활한 러시아 대평원을 표현해내는 듯했다. 화려한 전개를 거쳐 클라이맥스를 지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4악장에서 고요히 끝을 맺자 그 긴 여운은 러시아의 운명에 대해 탄식하는 듯한 오랜 침묵을 이끌어 내었다. 객석은 환호의 박수 소리로 덮였으며 오랜 동안 기립해 있는 관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오랜 만에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의 진수를 감상하고 늦은 밤 아쉬운 발걸음을 집으로 내딛자 연주자와 관객이 혼연일치가 되어 열정에 싸였던 흥분을 식히려는 듯 어김없이 눈발이 흩날린다. 집에 도착해 채널을 문화 TV인 쿨트라에 맞추어 놓고 오늘의 연주회에 대한 감상을 정돈하려는데, 화면에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반주로 젊었을 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한 흑백필름이 방영되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어린 아이까지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어느 계층이든, 꽃을 좋아하며 음악을 즐기는 이 나라 국민들의 정서가 매우 인상깊게 새겨진 귀한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