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아시아의 광야에서...
🧑 최영철
📅 2005-01-23
👀 445
어제 토요일은 매우 바쁜 날이었다.
아침 일찍 내가 회장으로 있는 음악인산악회의 고별 산행을 마무리하러 청계산으로 갔다가 다음 약속으로 인해 결국 산행은 포기하고,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음악계의 원로 교수님께로부터 떠나는 것에 대해 섭섭함이 깃든 변형된 야단을 좀 듣고 겨우 회원들과 하직인사만 나눌 수 있었다.
음악인산악회를 만들고 얼떨결에 회장을 맡고 겨우 석달 만에 하직하게 되니 마음이 산란하다.
오후에 분당의 수현네 집에 도착한 때는 약속시간을 20여분 넘긴 4시 20분쯤.
수현네 부부를 태우고 오늘 세현이와 나를 위해 송별만찬을 준비한 목동 선원네 집으로 향한다.
왁자지껄한 7인의 악당이 부부동반으로 선원네 처가 나누어준 번호표대로 상에 앉았는데,
그 면면을 소개하면,
한상기, 이흥규, 유수현, 차한규, 이세현, 임선원, 최영철과 각각의 휘문여고생들 총 15명이 참석했다.
칠레로 떠났던 세현이가 자기 딸까지 데리고 맨 마지막으로 들어서자,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한다.
“어머 참 예쁘게 컸다!”
“야 탈렌트 같다. 거 이름이 뭐더라? 응 정다빈이 비슷하다.”
“정다빈은 골다빈이고 걔보다 훨씬 이쁜데...”
세현이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고교 2년 짜리 딸은 키도 크고 늘씬하고 이국적인 미가 흘러넘치는 미술 전공학도이다. 큰 애는 남자인데 연대 2학년생이다.
선원이 처의 메뉴판에 의해 정식 코스가 진행되는데 지난 해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저마다 조금씩만 입에 넣는다.
작년에 먼저 나온 음식을 보고 맛있다고 많이 먹었다가 나중에 나온 음식을 먹지 못했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헛소리들을 뱉어대며 분위기는 한참 고조되고, 세현이의 칠레행과 나의 모스크바행에 대한 설명내지는 앞으로 우리 팀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이다.
고교 1학년 때 같은 한 분단의 악당들이 30여년을 별 사고 없이 이제까지 형제처럼 지내왔는데 둘이나 빠지면 휑한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이냐?
들어온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나간 자리는 표가 난다는데...
어디에 있든 서로 이메일과 전화로 안부를 교환하기로 하고 가끔 서울에도 들어올 것이라고 세현이와 나는 얘기했지만 친구들과 휘문여고생들의 얼굴에는 섭섭함이 떠나지 않는다.
후식의 메뉴판이 등장하고 세현이는 나오는 걸 다 먹어보아야 한다고 욕심을 내다가 수현이 커피를 쏟을 뻔했다.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아 이후 길이 추억에 남을 것 같았다.
선원네가 준비한 커다란 윷(길이가 거의 40센티 정도이다.)이 나오고 또 한번 시끄러운 가운데 응원전을 펼친다.
우리 팀이 져서 판돈 만원씩을 뺏겼으나 여론에 의해 나중에 돌려받았고...
한규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나 보고 한 마디 하라고 한다.
“사할린으로부터 시작해서 중앙아시아의 광야를 거쳐 뻬쩨르부르그까지의 대장정을 계획하고 있다. 그 행로에서 우리의 버려진 동포들과 그 수난의 역사를 잠시 체험해 보고 나중에 감상을 글로 남길까도 생각하고... 그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기다리고 있는 동기들과 미국 대륙 횡단을 생각하고 있는데, 기간은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수현이가 옆에서 자꾸 우리 전부의 여행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내가 러시아에 있을 동안 플랜을 세워서 오면 되는데 차차 생각해 보자”
결국 11시가 넘어서야 선원네 아파트 앞에서 각자 아쉬운 작별을 표하고 헤어지는데 아까의 분위기와 달리 침울하다.
분당파들 세 차가 떠나고 성남으로 들어서는 세현이의 차와 서로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가슴 속에서 매서운 겨울 바람이 몰아친다.
“잘 갔다 와라. 앞으로는 이렇게 헤어지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내내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고는 있었지만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야 친구들아! 어떻게든 건강해야 된다...”
중앙 아시아의 광야에서부터 휘몰아쳐 오는 듯한 대륙풍에, 우리 모두 50대로 들어서 차차 녹이 슬어가는 몸의 여러 곳에서 한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운전하는 중에도 속에서는 내가 즐겨 연주하는 나의 음악학교 대선배이신 차이코프스키의 야상곡이 흐르고 있었고...
하지만 영혼은 차창 밖 밤하늘의 총총 뜬 별같이 맑아져만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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