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여름, 호랑나비와 무궁화를 보다71회 시인 신 성 수
1.짐작이지만 녀석은 제 무리들보다 훨씬 몸집이 컸음에 틀림없었다.
제 혼자서 힘겨운 날개 짓으로 가파른 언덕 위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외톨이거나 버림받았음에 틀림없었다.
우연하게 녀석을 발견하고 나서 나는 녀석이 어디서 가쁜 숨을 고르는지 궁금하였다.
녀석은 소나무며 살구나무 등에 몇 번 눈짐작을 해 보고 나서는 고개를 흔들더니
키 낮은 무궁화 한 그루에 두 발을 내리는 것이었다.
무궁화 꽃잎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멈추었고 안도의 숨을 내쉰 나비는 깜빡 잠이 들었다.
2.
나는 무궁화가 저 큰 녀석을 어쩌는지 궁금하였다. 무궁화는 제 몸에 남은 새벽이슬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털어내면서 저를 찾아온 손님의 단잠을 도우는 것 같았다.
하기야 소나무며 살구나무 등 그늘이라도 넉넉해야 새들이며 벌레들도 모이는 것이지 꽃잎조차 햇볕만 들면 움츠러드는 무궁화야 외면하기 일쑤였고, 그런 까닭에 나비는 참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었다.
3.
그만 자고 나를 내려다보라고 무궁화가 말하였다. 화들짝 놀란 나비는 눈을 한 두번 굴려보고는 고개를 숙여 무궁화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무궁화라고 해. 그래, 나는 호랑나비야. 서로 손을 맞잡기는 쉽지 않았지만 금세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비가 잦았지만 올 여름은 볕이 강해 늘 나는 목이 말라. 그래, 나도 꿀을 먹기가 쉽지 않아.
나비는 제 무리에서는 별스럽게 날개도 큰 축에 들었지만 햇볕으로부터 무궁화를 가려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괜찮아. 나는 네게 꿀을 주지 못하잖아. 내 몸에 남아 있는 벌레들이 남긴 상처들을 보렴. 꿀을 주지 못해서 얻은 것들이지.
나비는 제 날개를 접어 무궁화 꽃잎을 닦아주기 시작하였다. 무궁화는 꽃잎을 한껏 벌려 나비가 남은 꿀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보았다.
4.
나비가 돌아오기를 무궁화는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낮에 소나기가 한 줄기 지났고, 무궁화는 나비가 어디서 비를 피하는지 몹시 궁금해 하였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나비는 더딘 날개 짓으로 돌아왔다. 그늘이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하였고, 비가 한 줄기 지나 한결 더위를 잊기 좋았다고 무궁화는 말하였다. 나비는 꽃잎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털어내기 시작하였고, 무궁화는 간지럽다며 연신 웃어대기 시작하였다. 소나무며 살구나무들이 두리번거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5.
다시 날이 밝고 나비는 무궁화의 도움을 받고 훌쩍 제 키만큼 높이 날아 올랐고, 무궁화도 제 발돋움으로 고개를 들어 사라져 가는 친구를 배웅하였다. 다시 올 때는 혼자 오지 말라고 메아리가 사라질 때까지 혼자 소리를 전하였다. 하늘로 힘을 모아 날아오르던 나비가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리더니 햇볕을 딛고 조금 더 높이 올랐다.
어느 여름 저물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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