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의 포퓰리즘은?”
🧑 최영철
📅 2004-11-13
👀 440
음악잡지의 칼럼입니다.
“예술에서의 포퓰리즘은?”
최영철 / 한국첼로학회장, KBS미디어 콘서바토리 교수
요즘 사회에서 유행하는 증후군 중에 명품을 선호하는 명품족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매체를 통해 전해지며 실제로 주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품격, 지위나 부에 관계 없이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이유가 다양하겠기에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단순한 사치병이거나 열등감에서 오는 신분 상승 욕구의 이그러진 형태 등의 자기 만족을 떠나서, 어떤 사람은 명품의 품질에 반해, 또 어떤 사람은 사회의 쉽게 변하는 유행을 싫어하여 선택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그 자체가 경제적으로나 경제외적인 면에서도 이익이 된다는 판단일 것이다.
음악계를 살펴보자.
한동안 붐이 일 듯 크로스오버가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져서 그런지 이것도 뜸한 것 같다. 아마 전보다 큰 이익 창출의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의 클래식 포퓰리즘의 시초는 아마 열린음악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로 인해 발생된 효과가 여럿이 있겠으나 우리 독자들이 더 잘 알리라 생각되어 넘어가기로 한다.
정치나 학문에서도 포퓰리즘이 한참 유행했었는데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성취 동기도 없이 대중의 입맛에 맞는 많은 공약들이 선거 때마다 범람하는 것이 그런 표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뒤가 어떻게 변하든 우선 대중의 입맛에 맞추자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대중의 입맛이란 언제나 달고 좋은 것을 선호하게 되어 있다.
그 단 것이 배에 들어가서 쓰게 될 때 쯤이면 후회하게 되지만 인류 역사로 보아 언제나 그 일은 반복되어 왔고 앞으로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클래식 교육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나이나 실력, 타고난 재능과는 상관없이 일단 무엇이든 되고 보자는 발상으로 몇몇 학교와 콩쿠르 등에 전력을 쏟는다.
마치 그것만 이루면 음악 인생은 다 산 것마냥 부모와 학생이 같이 목숨을 건다.
하지만 평생을 놓고 볼 때 잠시 잠깐의 성과와 우월감의 도취가 그렇게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더구나 예술이라는 문학, 철학 등 정신 미학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긴 세월과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이 요구되며 그 여정 자체만도 예술의 경지라고 보아야 할 정도의 쉬임 없는 배움의 연속이다.
그러니 대중을 의식한 잠깐의 성과를 위해 평생을 바꾸는 무리한 발상이 결론에는 무슨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열매 없는 빈 껍데기, 빈 수레 소리만 요란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결과를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랜 전통의 문학, 미술, 음악의 명품을 감상한다.
그 명품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당시 포퓰리즘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음악 분야만 해도 명작을 남긴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불우한 환경과 그 당시의 대중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생활을 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생활 속에서야 명작이 나왔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배가 고파야 예술이 나온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학문이나 예술, 심지어 정치까지도 깊이 들어가면 공통선에 이르게 된다.
그 결과를 간단하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것이 아닐까 싶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쉬운 것은 반드시 함정이 있다”
잠깐의 성과에 전력투구하고 그 성과에 의존해 평생을 쉽게 살려는 예술 지망생들은 시초부터 잘못 끼워진 첫 단추라고 단언하니 제발 예술을 욕되게 하며 자기를 속이며 아류 음악인으로 음악계에 누를 끼치는 자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진정한 명품족이 되어 품격과 인격이 고루 갖추어진 자가 후세에도 예술가로서 추앙받을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하다 못해 우리 사회가 좋아하는 명품의 일개 소품을 만드는 장인들도 예술가의 경지에서 만들지 않는가?
명품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첫째, 희소가치가 있어야 한다.
둘째, 변치 않는 연속성이 따라야 한다.
대중의 입맛이나 유행 따라 변해가는 명품은 명품이 아니다.
다행히 예술성 없이, 깊이 없이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감성으로, 또한 그 한 순간의 결과로 일생을 재단할 수 있지 않다는 데에 커다란 안도감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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