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秋斷想\"
🧑 최영철
📅 2004-11-09
👀 400
늦가을 산을 오른다.
산이 깊어갈수록 생각도 깊어간다.
나는 얼마나 내 삶의 의미를 찾았는지, 내가 남기고 갈 분량은 얼마인지, 어떤 것인지...
낙옆이 무수히 발에 밟힌다.
그들은 한 여름 내내 푸르름으로 자기 본분을 다하고 이제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삶의 가치를 가지려 한다.
바스락거리며 발에 밟히는 낙옆 소리가 여간 정겨운게 아니다.
덩달아 저멀리 추억 속에 쌓아 두었던 따뜻했던 기억들도 마음 속에서 밟힌다.
누구도 엿볼 수 없는 창고에 간직한 채 소가 되새김질 하듯 고달픈 세상사 중간 중간에도 혼자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한참을 오르니 몸에 땀이 나며 숨도 가빠지기 시작한다.
이동용 작은 의자를 배낭에서 꺼내 철퍼덕 무자비하게 몸을 걸친다.
산하를 내려다 보니 옅은 산안개 속으로 속세의 집들이 작디 작게 보인다.
요 근래 세상을 뜬 CF 감독네, 새 목조주택을 멋지게 짓고도 뚜닥뚜닥 매일 무언가를 고치고 만들고 있는 앞집, 한 여름 밭에 이것저것 많이 심고 물을 주던 옆집 할아버지 이번엔 배추를 심으셨지? 정년퇴직하고 농사나 지으시겠다며 세월을 낚는 선생님 부부네 집...
다시 의자를 접고 산행을 계속한다.
옛 추억부터 잡다한 세상살이의 여러 생각들이 머리 속을 교차해 간다.
산이 깊어가는 데 따라 머리가 맑아지고 맑아지니 빈 공간 안에서 보이는 사물이 한없이 덧없게 느껴진다.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원래 장기판도 옆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 법이지...
유난히 벌겋게 달아오른 단풍이 눈에 뜨인다.
아무 치장도 안했는데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가지고 다니는 디카에 한아름 가득 담고 또 걷는다.
정상에 올라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때묻은 속마음까지 훨훨 털어버리는데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올라와 옆의 벤치에 앉는다.
나는 이내 자리를 접고 일어서고...
며칠 전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고래고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던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시험 잘 봤니? 왜 컨디션이 안 좋았어? 네가 못 봤으면 다른 애들은 더 못 봤겠구나. 나 운동하고 갈테니까 시간 늦지 않게 학원 가라... 아 미안해요 누구 엄마 애하고 전화하느라구 못 받았어. 잘 다녀왔수? 모기한테는 안 물렸수? 굉장히 더웠을텐데...”
보성 녹차 농원의 레스토랑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니던 애들 생각도 난다.
외국 손님들도 있는데 그 부모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한데 이런 기억들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할 수는 없지...
얼른 집에 두고 온 진돌이 생각으로 돌린다.
혼자 집을 빠져나오는데 진돌이가 산 중턱을 오를 때까지 특유의 불러대는 소리를 못 들은 체 올라왔었다.
아무런 방해 없는 자유로운 생각의 나래가 그리워서였지...
다른 집들과 달리 나는 사철 푸른 색을 보고 싶어 소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사철나무 등을 심었다. 겨울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죽은 것 같은 나무들도 별로 눈에 담고 싶지 않기도 해서이고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흙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우리네 운명을 벗어나고픈 인간의 숨은 염원이라고나 할까?
변치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역으로 요즘 세상에서 유행하는 안 변하는 것 또한 따분한 일일지 모른다는 일말의 생각과 함께 하산 길에 접어든다.
한 주인만 죽도록 충성하는 진돗개. 그래서 영리하지만 군견으로 쓰지 못한다는 충견, 사철 변치 않는 푸른 빛을 간직한 소나무, 거기다 계곡을 타고 가끔 부는 산바람에 향을 풍기는 측백나무... 그들은 볼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올 겨울에도 우리집 소나무 가지 가지에는 소복히 눈이 쌓여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마당에 소복히 쌓인 눈 위를 진돌이가 신나서 뛰어 놀겠지?
물론 크리스마스 트리 용으로 심은 구상나무에 둘려있는 반짝이는 불빛들도 고요한 산골마을 전원교회 종탑의 십자가와 함께 빛을 발할 것이다.
따스한 군불에 감자도 익어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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