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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작가의 병영일기 12회]<광주 가는 군용열차>
<광주 가는 군용열차> 수용연대까지 포함하면 7주간을 머물렀던 논산을 뒤로 하고 기차는 1968년 4월 17일, 금요일 밤의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인솔 장교가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으나 광주로 향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기차를 탄 최초의 기억은 6.25 전쟁의 와중인 5살에서 비롯된다.   월남하던 1948년 7월 평양에서 해주까지 기차로 왔다는 어머니의 말씀이시지만 당시는 백일 직후여서 기억에 없다. 피난지인 부산을 떠나 광주보병학교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면회하러 가는 기차가 최초의 기억이다.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람이 많아 후텁지근한 열기 때문에 어느 역에선가 어머니가 창문 너머로 병에 든 음료수를 사주셨는데, 혀를 톡 쏘는 자극과 달짝지근함으로 아껴먹는답시고 한 모금만 마시고 창문가에 세워뒀다. 난생 처음 마셔본 \'사이다\'였다. 그러나 그 \'사이다\'는 한 모금의추억을 남기고 출발하며 덜컹하는 충격으로 창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광주에 도착할 때까지 사이다를 다시 사주지 않으셨다. 그 광주로 가는 두 번째 기차에 나는 타고 있었다. 사이다를 사주셨던 어머니 없는 기차를 타고 낯선 이등병들과 함께 광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는 선로의 크고 작은 모든 기차역을 빠뜨리지 않고 서는 기차의 이름은? \"정답 완행열차!\"   \"비둘기호!\" 틀렸습니다. 정답은 군용열차입니다. 우리를 실은 군용열차는 그렇게 모든 역에 정차하며 스쳐가는 상행선 하행선을 배웅하며 느릿느릿 달렸다. 그리고 11시쯤 도착한 역이 강경역이었다. 강경이라면 생소할지 모르지만 신라와 백제가 최후의 결전을 벌인 곳―황산벌. 당시에 정차해 있는 내가 연상한 강경은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화랑 관창의 이야기였다. 계백은 관창을 사로잡았다. 관창의 어림을 보고 계백은 살려 보냈으나, 살아온 관창을 보고 그의 아버지 품일은 꾸짖어 다시 전투에 내보냈고, 계백장군은 하는 수 없이 그를 시살했고, 신라군은 관창의 용기 있는 죽음을 보고 분노하여 총공격을 펼쳐 결국 계백 장군과 백제의 5천 결사대는 모두 죽고, 백제는 멸망하였다......뭐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즈음 다시 기차가 강경을 지난다면? 결코 관창의 죽음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퇴원한 뒤 자신의 사고 경위를 알아보기 위하여 사고지점에 갔다가 다시 교통사고로 죽은 시인. 초가 지붕에 스레이트 지붕을 올렸다가 시가 써지지 않아 다시 초가를 올린 시인. 수재들만 모인다는 강경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모범생이어서 흠모하는 여학생들이 지나가는 그에게 수없이 잔돌을 뒤통수에 던지며 연정을 호소했으나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수줍음 많은 시인. 술을 끊기로 하고 집안에 모든 술잔을 깨버린 뒤, 달력에 금주한 날들을 색연필로 지워 마침내 한달이 되었을 때 만세!를 부르며 술을 사다가 접시에 마시며 자신의 금주 성공을 자축했다는 시인. \"박 시인은 눈물이 많았다. 그렇게 불러도 된다면 가위 눈물의 시인이 그였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러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이문구 씨가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에서 회고한 눈물의 시인 박용래를 연상하며 그의 시를 떠올릴 것이다. 옥천에서 우리가 시인 정지용을 머리에 떠올리듯이...... <그 봄비>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모스러진 돌절구 바닥에도 고여 넘치는 이 비천함이여. <눈발 털며> 하루는 눈발 털며 털며 마을 안팎을 몇 바퀴 돌다가 하루는 저 눈밭에 흩어져 긴 이랑을 헤집고 헤집다가 하루는 行方不明, 가시울에 찔리다가 돌아오는 길에 까마귀야 가자, 활활 소줏고리 달아오르는 주막거리로 가자. 눈 오는 날.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 밑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雪夜> 눈보라가 휘돌아간 밤 얼룩진 벽에 한참이나 맷돌 가는 소리 고산식물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오리오리 맷돌 가는 소리 <밭머리에 서서> 노랗게 속 차오르는 배추밭머리에 서서 생각하노니 옛날에 옛날에는 배추 꼬리도 맛이 있었나니 눈 덮인 움 속에서 찾아냈었나니 하얗게 밑둥 드러내는 무밭머리에 서서 생각하나니 옛날에 옛날에는 무꼬리 발에 채였었나니 아작아작 먹었었나니 달삭한 맛 산모롱을 굽이도는 汽笛 소리에 떠나간 사람 얼굴도 스쳐가나니 설핏 비껴가나니 풀무 불빛에 싸여 달덩이처럼 오늘은 이마 조아리며 빌고 싶은 故鄕 그리고, 박용래의 시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즈음에는 강경에서 만난 \'이름 모를 고마운 헌병\'을 떠올릴 것이다. 강경에 도착한 기차는 종착역에라도 안착한 것처럼 움직일 생각 따위는 잊은 것처럼 정차해 있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려고 해도 손을 들고 인솔 장병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기차가 달리든 서든 우리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대개는 잠들을 잤지만 지금도 그렇듯 차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나는 유일한 독서거리인 팡세를 뒤적이고 있었다. 좌석 배치는 군번순이어서 출입구의 바로 옆 첫좌석의 통로쪽이 내 자리였다. 어느 순간, 출입구가 덜컥 열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올려 쳐다보니 화이버를 쓴 헌병이었다. 그가 처음에 외친 말은 \"동작 그만!\"이었다. 논산훈련소에서 길들여진 대로 우리의 모든 행동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목! 대학교 다니다 온 사람은 손을 든다!\" 그러나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객차 안을 둘러보던 그는 바로 옆에 있던 내 손에 들린 책을 뺏어 확인하더니 \"너, 너!\"를 지적했다. 처음의 \"너!\"는 나였고, 두 번째 \"너!\"는 내 마즌편에 앉은 얼굴이 단무지처럼 길쭉한 김하곤이란 명찰을 단 이등병이었다. 우리가 헌병에게 이끌려 간 곳은 T.M.O(여행장병안내소)란 간판이 붙은 작은 막사였다. 두 평 남짓한 막사에는 책상이 두 개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연탄난로가 피워져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약식\'을 그릴 것을 명령했다. \'약식\'이 뭔지 몰라 우물우물거리는 사이에 그는 서류 양식을 한 장씩 내밀며 16절지 시험지를 건넸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보고서 양식이었는데 한 사람당 50장씩 똑같이 그리라며 잉크와 펜과 자를 줬다. 50장? 그때 한 말은 \"기차 떠나면 어떡해요?\"였다. 헌병은 말했다. \"내가 강경지역사령관이야, 내 명령없이 기차 출발 못하니까 안심하고 어서 그려\" 두 장쯤 그렸을 때부터 그 단순함이 내 숨통을 막는 듯한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그 지루함은 내 머리를 회전시켰고, 나는 송곳을 요구했다. 송곳으로 양식의 모서리부분과 선과 선이 만나는 부분에 구멍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자욱을 눌러 그 자욱들을 잉크가 번지지 않게 자를 대고 그리니 한 시간 정도 걸리리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30분쯤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헌병은 잠시 나갔다가 항고를 들고 오더니 난로에 올렸다. 명령한 50장의 양식을 내밀자 \'이녀석 봐라!\'하는 눈치의 헌병은 명령했다. \"나가서 돌아다녀 봐!\" 서울을 떠난 뒤 최초로 주어진 자유의지였다.   김하곤 이등병은 여전히 양식을 그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역전 앞에는 통행금지인 12시가 넘었음에도 백열등을 밝힌 가게들이 오순도순 나란히 어깨를 나란히 졸고 있었다. 개찰구에는 역무원도 없었고,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도 없었다. 역사 옆에 화물이 들락거리는 철조망 문을 막 나서려던 순간 내 걸음은 멈추어졌다.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는 느낌이었고, 더 이상 나가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 내 발길을 묶는 것이었다. 비로소 나는 훈련소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백열등이 켜진 길 건너의 가게들이 군복을 입은 내가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 문을 나서는 순간 탈영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얼마간 그렇게 서서 이제는 낯설어진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그 헌병이었다. \"나가서 사제물건도 구경하고 먹고 싶은 것도 사먹지, 여기서 뭐해?\"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 그는 내가 나가지 못한 출구로 나갔고 건너편 강경식당이란 간판이 붙은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냄비를 하나 들고 나왔고, 아직도 거기에 서 있는 내게 \"따라와!\"라고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