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작가의 병영일기 10회]논산 광주<의무대>
🧑 이율영
📅 2004-10-16
👀 395
<의무대>
의무대라고 써놓고 보니 당시의 암담함이 살아온다.
대열에서 낙오되었다는 열패감이 암담함의 실체였을 것이다.
의무대에 입실된 이틀 동안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내 팔에는 링거액이 주사되고 있었다는 것이 의무대의 첫기억이다.
의식을 되찾은 나에게 다가온 누군가에게 물을 부탁했고,
그는 물을 가져다 먹여주었다.
비로소 양쪽벽에 붙어 도열된 철침대들이 있는 의무실의 풍경 속에서
아무런 무늬도 그려지지 않은 흰 환자복을 입은 청년들이
침대에 누워 주간지를 뒤적이거나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런 환자복 차림이었다.
나는 그들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말을 걸어온 옆 침대의 환자에 따르면 입실 첫날 저녁 때부터
헌병대 하사관들이 찾아와 정신이 없는 듯한 나를
팬티를 벗기고 엉덩이 사진을 찍어간 것이 그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으리라.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입실한 사연을 묻던 그가 내게 담배를 한 대 권했는데,
한 모금을 마시다 끄고 말았다.
지독한 풀냄새였다.
지금도 그때의 담배냄새가 되살아난다면 당장 담배를 끊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다는 보고를 받은 의무관이 병실로 들어섰다.
청진기로 진단을 하며 체온을 잰 의무관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앞으로 일주일 정도면 훈련에 복귀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에 도착한 헌병대 짚차에 실려가 진술서를 쓰고
그 전라도 말씨의 내무반장과 대질심문을 받아야 했다.
그는 굶주린 짐승처럼 허겁지겁 먹는
논산훈련소 25연대 5대대 3중대105기 훈련병들의 밥그릇을
\'동작그만!\'이라는 말 한 마디로 잔반통에 쏟게 하고,
손가락 하나로 자던 훈련병을 깨워 원산폭격을 시키고,
양쪽 침상에 손과 발을 걸치게 하여 인간 한강철교를 만들던
하늘같은 하사는 이미 아니었다.
계급장도 명찰도 이미 뜯겨진 군복을 입은 그는
대질심문을 하는 동안 \'살려달라\'는 애절함이 동그란 눈에 그득한,
도살되기 직전의 처량한 한 마리 짐승일 뿐이었다.
돌아오는 짚차에서 군복에 붙은 계급장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군대를 지배하는 것은 인격이나 지성이 아니라 계급이라는 평범한 군대의 진리였다.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엉터리 중국말로 나를 웃기곤 하던 김 아무개가 병실로 들어섰다.
이제 김 아무개의 이름을 밝혀야 겠다. 김신치!
중대장의 허락을 받고 왔다는 그는
내가 남겨놓고 온 관물함 속의 사물들과 함께
몇 알의 사과와 삶은 달걀들을 내밀었다.
오다가 기간병들만 출입할 수 있다는 소본부 PX에서 사왔다고 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갖다주라고 했다는 누룽지도 있었다.
하하하하하..........
까주는 삶은 달걀을 먹으며,
김신치에게서 소원수리를 쓰게 된 사정을
너무나 맛있었던 사과를 나누어 씹으며
들을 수 있었다.
훈련을 나가지 못했던 화요일에 김신치 훈병은
어머니와 예상하지 못했던 면회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논산훈련소는 훈련기간 동안 면회금지였다)
삼촌이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별 셋인 중장이어서 가능했던 면회였다.
훈련 교장에서 다른 훈련병이 눈치채지 못하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장 근처에 대기한 붉은 별판이 붙은 삼촌의 승용차 안에서 이루어진 면회였다.
서울에서 어머니가 싸온 김밥과 통닭을 허겁지겁 먹으며
김신치 훈병은 내무반에서 있었던 구타사건을 말했고,
삼촌은 훈련소장을 만나 시정을 약속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면회를 마친 김신치 훈병은 다음 토요일에 다시 면회올 것을 다짐하고
돌아갔지만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다음 토요일에 그는 오지 않았고 (못 왔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 다음 토요일에는 내가 이미 의무대에서 퇴실한 다음이었다.
바람결에 들리는 소리에 따르면
월남전에서 산화했다고 하지만
믿지 않는다. 죽지 않아야 어느 우연의 모퉁이에서 다시 만나
그날의 고마움을 소주에 타서라도 나눌 것이 아닌가?
열흘 동안의 의무대 생활을 마치고 나는 훈련에 복귀했다.
찦차에서 내린 곳은 28연대였고,
낮고 우중충한 막사가 아니라 연초록색의 2층 신형막사였다.
28연대의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몇 대대였는지, 몇 중대였는지......
다만 훈련병들이 교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중대본부에서 전학생처럼 낯선 환경을 둘러보는데
한 쪽에서 주간지를 뒤적거리던 상병의 노래 소리와
오고 간 대사가 지금도 귀에 남아 있다.
\"주아안상 하나아 노오고오 마주 앉은 사람아,
술이나 따르며언서 따르면서......아아 18! 여기가 잘 안된단 말야.
술이나 따르며언서 따르면서! 야, 훈병 이 노래 알아?\"
\"그게 뭔데요?
\"이게 요새 한참 히트 치는 충청도아줌마 아니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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