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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회 유병천 교우-도깨비감투 봉사활동

[ 중앙일보 2월 2일 25면..]


어린이 마음잡는 '어르신 그림연극'
송파구 도깨비감투 봉사단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그림을 보여 주며 매주 목요일 한 차례 공연하는 ‘그림 연극’에 
어린이들이 푹 빠져 있다. [박종근 기자] 
 
 “어떻게 하면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아이는, 강아지를 고소한 
참기름에 목욕시키기 시작했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송파어린이도서관 3층 물동그라미 극장. 옹기종기 모여 
앉은 7~8세  어린이 30여 명이 장난을 멈추고 돌아앉았다. 그러더니 곧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스케치북의 그림을 넘겨가며 들려주는 ‘줄줄이 꿴 호랑이’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야기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은 “할머니, 다른 얘기도 해주세요”라고 떼를 썼다. 
한 시간 동안 몇 편을 들려주고  나서야  그림연극은 막을 내렸다. 서희(7·여)는 
“우리 할머니는 시골에 계셔서 자주 못 보는데 여기서 할머니한테 옛날 얘기를 
들으니까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송파어린이도서관에서 매주 목요일 공연되는 그림연극이 동네 명물이 됐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의 그림연극 공연이 TV나 만화 등에 빠진 어린이들의 정서
교육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주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 공연을 이끌고 있는 ‘도깨비 감투’는 공무원·교사 출신의 60~70대 노인 
10명이 모여 만든 자원봉사 동아리다. 이들은 지난해 5월 구청에서 마련한 
교양 강좌를 함께 들으며 서로  친분을 쌓았다. 마침 송파 어린이 도서관이 
개관을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교양 강좌 강사로 나섰던 최진봉 도서관장이 
노인들에게  봉사활동을 제안하면서, 손자·손녀 뻘 되는 어린이들을  위해 
1주일에 한 번씩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시작됐다.

‘도깨비 감투’의 유병천(67) 회장은 “처음엔 요즘 아이들이 노인들의 이야기
에 관심을 기울일까 걱정도 많이 했다”며 “의외로 아이들이 많이 따르면서 
지난해 12월부터는 그림연극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도깨비 감투’ 회원들
은 더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틈나는 대로 모여 전래동화
책을 돌려 읽고 토론을 한다. 들려줄 이야기가 결정되면 연극을 하는 목요일 
오전에 만나 대본을 쓴다. 이야기 내용에 맞는 그림을 각종 동화책에서 골라 
크게 복사하고 몇 차례 낭독 연습을 한 뒤 무대에 올린다. 
이명자(67) 할머니는 “연극 준비에 피곤하다가도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을 보면 신이 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호응이 커지면서 그림연극을 바라보는 젊은 엄마들의 시각도 
바뀌었다. 노원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는 김현경(33·주부)씨는 “천방
지축이던 아이들이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얌전해지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며 다른 엄마들과  연극 횟수를 더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고 말했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은 그림연극에 머물지 않고 전통 놀이 체험이나 전통 육아 
강의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연극이 없는 날엔 제기차기나 오자미·
윷놀이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지난 동짓날에는 아이와 엄마
들을 데리고 팥죽을 쒀 나눠 먹기도 했다. 정은미(38·주부)씨는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는 전통육아법에 끌려 할머니들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다”
고 말했다.

도깨비감투는 2월부터 송파어린이도서관과 전래자장가 CD를  보급할 계획이다. 
유병천 회장은 “아이들을 통해 우리가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은 나이라는 걸 
깨달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임주리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